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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인터넷과 관련된 실화입니다."
다음 문구로 시작되는 영상은 2011년 유튜브에 올라온 Internet Story이다.
인터넷에서 대중을 상대로 한 보물찾기가 점차 전개되며 집착과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특히나 동영상의 내용이 진실됨을 보여주는 '객관적 증거'를 기반으로 하여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관객은 친절히 제공되는 객관적 증거들을 통해 내용에 대한 의심을 풀고 깊이 빠지게 된다.
얼핏 보기에 이 영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여 보고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2005년에 생성되었다고 주장된 페이지(클릭)의 소스코드를 보면 생성 년도가 2009년, 작성자는 유튜브 동영상의 제작자와 같다.
-1분 17초 경에 주소창을 보면 youtube가 아닌 yoottube이다.
-8분 1초 경에 시체가 발견된 곳이 uwchmynydd이 아니라 felynamynydd이다.
-유채 꽃밭에서 발견된 시체는 신원 미상이라고 했는데 뉴스 기사에서는 누군지도 모르는 시체의 생존 당시 사진이 실려 있다.
얼핏 보았을 때 내용이 진실하다는 '객관적 증거'로 보이던 것이 하나 하나 뜯어보니 모순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내용이 진실일 리가 없다. 제작자가 만들어낸 가짜 증거에 속아넘어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잠깐, 제작자가 만들어낸 가짜 증거에 담긴 오류가 아니었다면, 속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텐데?
이 영상은 가짜 다큐멘터리(pseudo-documentary), 마치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연출하여 제작되었다.
가짜 다큐멘터리 기법은 정말로 일어난 일과도 같은 자극으로 관객의 몰입을 극도로 높일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반면,
관객을 속이고 이를 밝히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이를 사기로 인식, 거짓말로 독자를 속였다는 반감을 살 우려가 있다.
이러한 반감을 경감하기 위한 기법 중 하나로는 의도적으로 오류를 삽입하는 것이 있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가짜 다큐멘터리이다>
영상을 지지하는 '객관적 진실'을 다시 살펴보자.
영상에서 보여주는 기록들, 영상은 전부 영상 제작자가 올린 것이며,
해당인이 '다른 곳에서 퍼왔다'고 주장하더라도 정작 제작자가 만들지 않은 증거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
이는 해당 영상이 가진 가짜 다큐멘터리적 특성으로 모든 객관적 증거, 즉 영상과 기록은 실제 상황인 것처럼 연출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상이 다루는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벌어진 미해결 살인사건이다.
만일 해당 영상이 완벽하다면 제작자는 관객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살인 사건이 있다고 속이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작자는 의도적으로 오류를 삽입하여 영상의 신빈성을 떨어트렸다.
관객은 영상의 오류를 통해 그들이 보고 있는 내용이 진실이 아님을 추측할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의도적인 오류는 영상의 본질에 대한 복선으로, 영상은 관객에 대한 사기에서 관객과의 두뇌게임으로 탈바꿈한다.
<현지 대학교 출석 증명서>
'러시아에서 북한 간첩으로 몰린 썰'은 필자가 모스크바에서 떠올린 소재를 가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선보인 만화이다.
그러나 기법 성향과 어긋나게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마무리를 통해 작품을 매듭지었으며,
그 때문에 가짜 다큐멘터리를 통해 얻어낸 몰입감이 마지막 순간에 풍선 터지듯 허무하게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연출 실수는 필자의 역량 부족에서 기인한다.
만화는 필자가 러시아에서 온갖 악운이 겹쳐 북한 간첩으로 오해되는 경험담과 이에 따른 긴장감을
생활툰 형식으로 전개시키며 형식의 재연을 위해 생활툰 작가가 하듯 독자에게 댓글로 대응하였다.
또한 이는 가짜 다큐멘터리이지, 없는 경험을 꾸며내 독자를 속이려는 것이 아니기에 오류들을 삽입해서 신빈성을 떨어트렸다.
그러나 이에 더해 필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을 작품 내에 삽입하였다.
-지하철 역마다 엑스레이가 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여권 검문을 한다.
-치안이 상당히 좋다.
-경찰이 지하철 역 내에 2열 종대로 다닐 정도로 흔히 보인다.
-해당 시점(2016년 6월 말) 동남아 계열 소매치기가 기승이다.
-어느 특정 시점(6월 24일)을 기점으로 만화 업로드를 멈추었다.
-필자 자신의 신상정보
이상의 진실을 섞어냄으로써 해당 진실을 이미 알고 있던 독자들에게 내용 전체가 진실하다고 착각시키게 되었다.
의도했던 것보다 더 철저하게 독자들을 속이게 되면서 사실성과 오류의 균형이 무너져버렸다.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이 100%의 거짓말보다 더 큰 효과를 보인다", 독일 나치 선동의 대가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이다.
<99%의 거짓말에 1%의 진실>
<이 무서운 설득력을 감당할 능력은 필자에게 없었다>
또한, 필자는 각종 사진, 그림 자료를 삽입하여 신빈성을 높이려 했으나
해당 자료는 만화와 전혀 상관없는 객관적인 진실이기에 가짜 다큐멘터리 기법에 사용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작품의 신빈성이 지나치게 높아져 대부분의 독자들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내용을 받아들였다.
만화는 단순한 가짜 다큐멘터리 수준에서 벗어나 조작된 자료를 통한 선동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생겨났다.
내용은 러시아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추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필자는 근거 없는 자료로 거대 국가를 비방하는 위치에 놓일 수도 있었다.
이는 전혀 바라지 않던 결과였기에, 필자는 원래 계획하지 않았던 '에필로그 편'을 추가하여 해당 작품이 가짜 다큐멘터리임을 공포하였다.
한편으로 필자는 에필로그 편을 올리지 않고 잠적하여 가짜 다큐멘터리로서의 몰입감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었다.
그리고 독자들이 의도했던 오류들을 눈치챌 때까지 기다린 뒤,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싶었을 때 에필로그를 올렸을 수도 있다.
이 경우가 연출 측면에서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반전은 필자에게 있어 처음이었고, 그래서 필자는 독자를 속인 주작 작가로 평가되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모든 것은 완급 조절과 담력 부족, 스스로의 능력 부족이다.
어쩌면 더 낫게 할 수 있었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인터넷에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믿지 말아라>
<에이브라함 링컨>
개인이 알게 되는 정보는 직접 경험한 것과 간접적으로 취득한 것으로 나뉘어진다.
이 중 간접적으로 취득한 것은 타인의 말, 책, 신문, 방송,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의 매체를 통해 전달된 것이다.
그런데 매체를 통해 전달된 정보는 전달되면서 변질되거나 조작되어 최초의 형태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매체의 특성에 따라 정보가 생략, 첨가되면서 최초의 맥락, 의미가 다르게 해석될 여지도 다분하다.
정보의 전달자와 수용자가 서로의 의도를 잘못 전달, 이해하여 정보가 왜곡될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개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정보는 본질적으로 100%의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성을 추구한다면 개인은 여러 매체를 통해 정보를 비교하여 객관적 증거를 확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화와 함께 올라온 자료들은 필자가 제공한 것 외에 없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장 이 글에 올라온 사진이나 대학교 출석 증명서도 필자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내거나 조작한 것일 수 있다.
오직 필자만을 통해서 제공된, 검증할 수 없는 정보는 비교 대상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필자가 러시아에 여행을 한 정보가 진실이라고 믿을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가짜 다큐멘터리 최후의 보루, '진실이라는 증거가 없는데 관객이 멋대로 믿고 속은 것'이라는 변명을 허용해주는 논리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은 일말의 진실에 너무나도 쉽게 의심을 풀고 태반의 거짓을 주저없이 수용한다.
우리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 오직 한 곳에서만 전파되는 정보, 검증되지 않고 떠도는 정보를 너무나도 쉽게 믿어버린다.
아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그것이고 인터넷 발 루머, ~경험한 썰이 그것이다.
이것이 바로 '러시아에서 북한 간첩으로 몰린 썰'이 바탕에 두고 있는 근본 원리이다.
같은 주제로 2014년에 그린 '푸코의 진자-사메지마 사건의 전말(클릭)'이 있다.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내용 전개와 무능력한 필자의 자기 복제, 명언 제조기 링컨 대통령을 체감할 수 있다.
<모스크바 고리키 공원에서 지인이 찍어준 사진>
<수중에 넣은 몇 안되는 제대로 찍힌 사진이다>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 한국 서브컬쳐 커뮤니티 간에 매우 시끄러운 소란이 이어진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요인 중 하나는 스스로의 매체를 통해 얻은 정보만을 진실로 취급하고
상대방의 매체에서 나온 정보를 파악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치부하는 옹졸함에서 비롯된다.
이에 더해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퍼트려서 매체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자기 자신만을 진실된 자로 여기는 자만을 지닌 자는 필연적으로 편협된 사고관을 품는다.
매체의 특성상 정보가 퍼지기는 빨리 퍼지고 사실 여부는 파악조차 힘든 가상 공간에 내던져진 개인으로서
나 또한 내면에 독선을 품지는 않았는지 경계하는 한편,
나의 진실이 남에게는 거짓일 수도 있음을 알고 겸손해지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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