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1817년 ~ 1819년에 걸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29번 (op.106: 해머 클라비어)를
출판 하기에 앞서 런던에서 이 악보의 출판을 담담했던 리이스(Ferdinand Ries)에게 편지를 보내어,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3악장)의 첫부분 제 1소절에 2개의 단순한 으뜸화음의 음표를 추가하여 줄것을
부탁합니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이미 반년전에 완성되었으며 출판하기 위하여 이미 조판까지도
다 끝낸, 무려 41면에 이르는 장대한 이 작품에, 단 두음표를 추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고 의아스러웠던 리이스는 경애하는 마에스트로가 미쳤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실제로 이 두개의 음표가 주는 효과에 그는 실로 아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리이스는 이곡의 연주에 대하여 이렇게 권고하게됩니다.
< ..이미 완성된 작품에 이렇게 단순한 음부를 첨가해서 그것으로 하여금 그토록 무서운 효과를 내게
하거나 강렬한 힘을 솟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이곡에 그 음부가 붙어 있다
하여도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음악애호가 여러분들에게 처음에는
이 아다지오악장의 첫 음표 두개를 빼고 연주해 보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두개의 음표를
추가하여 연주해 본다면 단순한 두개의 음표가 이 악장의 전반에 걸쳐 미치는 효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
또다른 얘기 .....
제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작품중에 D935 '네개의 즉흥곡'중 두번째곡 알레그레토 트리오-8분정도의
짧은 악장이 있습니다. 겨울나그네를 비롯한 가곡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곡 역시 궁핍과 고독 속에서 지내던
슈베르트를 떠올리게 하는 곡이지요. 듣다보면 어쩌면 이 곡은 그런 스스로를 위무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감상적인 이 곡은 영화 'Four Minute'의 주제음악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이주 전, 케이팝스타4에서 이진아의 '마음대로'를 들었습니다.
박진영은 첫소절을 들었을 때 '정신을 잃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저역시 그랬습니다.
심장 저 밑바닥까지 밀고 들어오는 첫소절 아홉개의 음은 그만큼 강렬했습니다.
대체 음악이란, 노래란 무엇일까요? 그건 단순히 말해서 희노애락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청각적
방식이라고 보면 좋은 음악, 좋은 노래란 그런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감동으로 치환시켜 주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직정적인 울림이 되고요. 하지만 이런 멜로디를 얻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지요.
유희열이 '2,300곡을 작곡했지만 이만큼 좋은 곡은 없는 것 같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점에서가 아닐까 합니다.
'마음대로'의 단순한 첫소절 아홉개의음이 주는 감동의 진폭이 커서 나는 대체 이진아가 이 멜로디를 어떻게
길어냈을까 궁금했습니다. 불과 아홉개의의 음으로 이루어 진 이 단순하고도 감동적인 멜로디가 불현듯
써진 것이라면 이진아는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첫소절의 아홉개의 음을 듣는 순간 이 짧고도 감동적인 멜로디가 주는 감동으로 문득 떠 오른 것은
앞서 말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그것이었습니다.
제가 베토벤의 일화를 써 놓고도 깜박했는데요...
좀 뜬금없달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3악장에 관한 에피소드를 인용한 것은...
나중에 생각난 유희열의 이 말에 공감이 가서 였습니다.
유희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진아는 ...한음이다. 무슨말이냐 하면 이진아는 한음 한음을 허투로 쓰지 않는다'
어느 악보에선가 썼듯이'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 한다!'는 절차탁마를 거쳤던 베토벤 처럼 말이지요
다른 한편 D935 '네개의 즉흥곡'중 두번째곡 알레그레토 트리오 첫소절 22개음을 축약한다면
이진아의 '마음대로'첫소절 아홉개의 음이 될거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이 곡은 이진아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만든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반주라인이 너무 좋아서 많은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가 '무언가'스타일의 음반을 내고 있듯이 이진아 역시
음반을 낸다면 'songs without words' 버젼도 동시에 수록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본질적인 이진아의 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서요.
그런데 방송이 끝난후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인터넷에서 이진아에 대한 글을 검색하던 중
적지않은 분들이 이진아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진아의 안티분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하는 요소는 '새새거리는 목소리가 마음에 안든다, 노래도 못부르는
저게 무슨 가수냐' 재즈요소가 가미된 듣도 보도 못한 장르? 인디에서는 흔히 들을 수 읬는 음악이다 하는 따위였지요.
심지어는 순진한 척 한다 라는 글도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진아가 가진 목소리의 음색의 희귀성을 논외로 치자면 가수로는 젬병이지요.
그런데 왜 세 심사위원은 이진아를 극찬했을까요?
고음이 어떻고 음정이, 박자가 어떻고 하는 평 하나 없이 말이지요.
그건 음악, 그 본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진아는 가수라기보다 음악가입니다.
그럼 이런 오디션 프로에 왜 나왔느냐고 하겠지요.
많은 인디 가수들이 이진아와 같은 음악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조명 못받아서 그렇지
분명 뛰어난 음악인들도 있겠지요. 화가들도 그렇지만 많은 뮤지션들이 기회를 얻지 못해 어둠속에 있고
그 중 하나인 이진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 싶어 나왔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진아, 그 자신도 가수로서의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은 '제 목소리를 받아들여 주실지 모르겠어요'라며
조심스레 말했던 장면에서 잘 나타나고 있지요.
세 심사위원에게 극찬을 받을 때, 이진아의 표정에는 어떤 득의도 자만의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그 자신이 말했듯이 '이 꿈이 깨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보여 가슴이 저렸습니다.
이진아의 목소리를 싫어하시는 분들....혹시 재방송을 보실 기회가 있다면 마지막 엔딩부분에서 노래 없이 흘리던
피아노 선률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진아를 가수라기 보다 음악가적인 관점에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진아에게 있어서 가수란 그렇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아시게 되리라 봅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임.,..
베토벤과 슈베르트얘기를 곁들인다 해서 이진아가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와 동급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