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까페 (Bagdad Cafe, Out Of Rosenheim, 1988)
항상 흥미위주로 SF나 액션 등의 가벼운 영화들만 골라 보는
제게 '이런 영화가 내게 재미와 감동을 주다니!' 하고 놀라움을 준 작품입니다.
심야에 TV를 우연히 틀어보니 이름도 듣도보도 못한 바그다드 까페라는 영화가 시작하고 있었는데..
적막한 사막에서 말없이 투닥거리고 싸우는 볼품없는 두 독일부부. 약간은 그림을 보는듯한 독특
한 색감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지루한 별볼일없는 영화겠거니 하고 좀 보다 자려고 했습
니다만.. 곧이어 끝없는 사막의 도로위를 걷는 장면과 함께 깔리기 시작한 몽환적인 보컬...
지금 흐르는 이 Calling you 라는 곡은 TV 를 끄려던 저의 손을 멈추게 만들었고 어느새인가
저는 적막하고 정적인 영화의 배경속으로 반쯤 취한 상태로 몽롱하게 빨려들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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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도 볼품없고, 장소도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 사막 한가운데에 적막하게 서있는
다 쓰러져가는 나른한 까페 하나가 배경...
첫인상은 정말 '미치도록 재미없을 것 같은' 영화....
스토리도 어떤 커다란 줄기는 없습니다. 그 까페안에서 등장인물들의 희로애락을 그려가는
것이랄까...
뚱뚱하고 볼품없는 독일계 중년부인인 쟈스민은 여행도중 라스베가스로 향하는 사막 도로
한가운데에서 남편과 다툰뒤 차에서 내려 적막한 한 까페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인상도 지저분하고 성격도 불같은 흑인 까페주인 브랜다를
만납니다. 너무나 성격이 더럽고 가까이 하기 힘든 브랜다... 너무나 쓸쓸하고 장사도 안되
고 남편은 무능하며 아이들은 속만 썩이고... 그 어려운 생활에 찌들다 못해 브랜다는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적막하고 손님도 없는 까페를
운영하며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는 듯한 그녀와 아무렇게나 내놓은듯한 까페..
브랜다는 쟈스민을 수상쩍어하게 되고 그녀의 온화한 태도나 친근감에 더욱 불만을 가지게
되면서 그녀와 차차 갈등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까페는 쟈스민이 가지고 온 마술셋트를 이용한 보잘것없는 마술쇼와 함께 차츰
활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을 감싸주고 화합시키는 묘한 힘을 가진 쟈스민..
신경질적인 브랜다도 차차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그들은 점점 가족처럼 소중한 관계가
되어가죠. 그러나 쟈스민은 여행비자로 한시적으로 들어와있는 독일 여행객.. 우정어린
두 사람에게 이별이 찾아오는데..
단순하기 그지없는 배경과 내용..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잔잔하게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을까..
저는 처음의 그 지독하리만치 적막하고 쓸쓸한 배경, 그리고 그 배경이 사람들의 활기로
채워져가는 과정, 흠 투성이인듯한 두 여인의 우정과 사랑의 잔잔한 감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뚱뚱하고 우스꽝스럽고 소심하며 자신이 없는 쟈스민, 역시 너저분하고 성격은 신경질적인
브랜다... 모두 무척 매력없어보이는 인물들입니다. 그럼에도 그 부족해 보이는 두 사람은
서로 만나 변화해가죠. 뚱뚱하고 소심한 외국 부인에서 모두를 보듬어주고 변화시키며
활기를 주며 사랑받는 여인으로, 삶에 지쳐 꾀죄죄한 모습으로 살아가던 드센 아줌마에서
뮤지컬 배우처럼 세련된 노래를 부르며 쇼를 이끄는 '끼있는' 주인으로...
보잘것없어 보이던 두 사람의 만남과 변화로 인해 그 적막하고 쓸쓸한 바그다드 까페도 변화해 갑니다.
너무나 쓸쓸하고 나른한 배경에 고독을 느끼던 시청자 역시 까페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고..
어느새인가 그 적막한 까페에서 사람들의 활기찬 왁자지껄함을 함께 그리워하게 된다고 할까요.
또한 저 위에 썼던대로 이 영화의 독특하고 강한 색채감과 보컬, 정적인 나른함은 보는 사람
을 황홀경 상태에 빠지게 하는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강렬한
색채의 화면과 상징적인 듯한 장면들.
이 영화의 Calling you 라는 곡 역시 너무나 유명하죠. 몽환적인 보컬이 영화 배경의
끝없는 적막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영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꼭 봐야한다고 생각하는 영화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