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701 백두산함
이 배 이야기는 아마 밀덕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보통 '성금을 모아서 산 배'라거나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 혹은 '한국전쟁 최초의 승리를 안긴 배' 정도의 수식어가 붙지요.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포탄이 100발밖에 없던 배'라거나 '한 번도 사격훈련을 해보지 못했던 배' 정도로 유명합니다만....어쨌거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미 닳고 닳아서 국물 색깔도 변하지 않을 백두산함 이야기가 아니라....
PC-702 금강산
PC-703 삼각산
PC-704 지리산
손원일 제독이 '성금을 모아 백두산함을 사왔다'는 이야기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이 함정 구입비용은 오로지 성금만으로 모인 것은 아니었지요.- 성금 15,000달러장교는 봉급의 10%, 병조장(상/원사)은 7%, 하사관과 수병은 5%를 매월 군함건조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해군부인회에서는 바자회로 모은 기금을 보탰습니다.나중에는 일반 국민들까지도 성금 모금에 동참했습니다.1949년 9월, 성금 15,000달러를 모은 손원일 제독은 경무대에 들어가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군함 구매계획을 보고합니다. 이 때 이승만은 봉투 하나를 손 제독에게 건네주는데, 이 안에는 45,000달러가 들어있었죠. 이제 손 제독의 손에 쥐어진 돈은 총 6만달러.당시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이니, 그야말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손에 쥔 겁니다.1949년 10월 1일에 한국을 떠난 손원일 제독은 미 해양대학교로부터 'Ensign White Head'라는 퇴역 초계정(PC-823)을 18,000달러에 인수합니다. 그런데 이 비용은 사실 무기와 탄약은 빼고 선체 구입비용이었어요. 어쨌거나 PC-701, 백두산을 인수하는데 든 비용은 대략 2만달러.자, 6만-2만 하면 4만달러가 남죠? 그럼 이 4만달러는 어디에 썼느냐?1949년 12월 26일, 뉴욕에서 백두산을 떠나보낸 손원일 제독은 자신도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합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항에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퇴역한 군함들이 수없이 계류되어, 말하자면 '배무덤'을 만들고 있었죠(지금 진해군항에도 이런 부두 하나 있습니다. 퇴역 참수리들을 모아놓고 개도국 해군에 파는거죠). 이 곳을 둘러보던 손원일 제독은 2,300톤급의 PF(Patrol Frigate)급 함정에 마음이 갑니다. 가격을 물어보니 대략 척당 5~6만 달러.
크고 아름답구나!
본국에 배 한두 척을 더 구입하겠다고 건의를 하자 이내 승낙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남은 돈 4만 달러로는 모자라긴 하지만, 대충 미국측과 흥정을 해 보고 정 안되면 본국에서 추가금액을 받으려는 생각이었죠. 설마 1만 달러 정도는 더 받을 수 있겠지.그런데 문제는 '돈'이 아니었습니다.대통령의 재가도 받았겠다, 한국대사관에서 함정 구매신청서도 작성했겠다. 손 제독은 룰루랄라 미 국무성으로 달려가 신청서를 제출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이 양반이
이걸 그어버려서 말이죠 -_-;;
국무성 한국과장으로부터 무려 "돈이 있어도 못 팔겠다"는 무지막지한 대답을 듣고 맙니다. 흥분해 길길이 날뛰다가 장면 대사에게 이끌려 국무성을 나온 손원일 제독은 일전에 PC-701 구입을 위해 만난 적이 있는 미 국방성 관계자를 찾아가죠.그러나 국방성 관계자가 와도 국무성 한국과장의 대답은 똑같습니다. PF 이상의 전투함은 미국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판매가 불가능한 것이죠.어라? 그럼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지 않는 배도 있나?예, 있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 정부는 엄청난 양의 군함들을 무장해제한 후에 민간업자들에게 불하했거든요. 이 중엔 이미 한 척 사서 한국으로 보낸 PC급 함정들도 있었죠. 한국과장은 이 배를 구입하라고 제안합니다. 그것도 '개인 대 개인'으로.국무성에 동행했던 미군 장성으로부터 소개장을 얻은 손 제독은 사복을 입은 채 미국 서해안의 산 피에트로San Pietro 항으로 갑니다. 그런데 보통 민간 불하 함정들을 소유한 선주들은 유태인이었죠. 네, 유태인.보통 남미나 아시아 국가들에서 온 군인, 외교관들이 이 양반들의 주 고객이었는데, 이 '산팔이'들은 무장 다 해제된 배를 엄청난 마진으로 팔아먹은 후에 정비도 인건비가 비싼 미쿡인 기술자들에게 맡겼죠.이제 손원일 제독은 무려 유태인들과 흥정을 해야 하는 겁니다.1.손원일: 이거 얼마? 선주: 2만달러 손원일: 씨익2.선주: 15,000달러 손원일: 1만달러 선주: 난 흙파서 장사하라고? 소개장 가져와서 봐주는거임!자, 이제 손원일 제독의 계산이 들어갑니다. 4만 달러로 잘 하면 세 척은 살 수 있는 상황이 온 거죠.3.손원일: ㅇㅋ. 12,000달러 하면 세 척 사겠심. 선주: .... 콜. 손원일: 대신에 선주: 엥?4.손원일: 롱비치까지 좀 옮겨주셈 선주: 그 배들 스탁톤에 있는데 가져가면 안되겠심?스탁톤이 어딘지는 지도 찾아봐야 알겠지만, 쨌거나 롱비치까지 배 끌어가려면 예인비 ㅎㄷㄷ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당연히 손 제독은 거부합니다.5. 선주: 그럼 척당 1,000달러만 내주셈 손원일: 큰 물건 살 땐 무료배송이 원칙 아니셈? 누가 머리에 총맞았다고 예인비 내겠심? 선주: 뭐 이런....이렇게 무려 3시간을 싸운 끝에6. 선주: 예인비 3천달러 반띵. ㅇㅋ? 손원일: ㅈㄲㅅ. 내가 배값 다 내겠다고 했으면 님하도 예인비 다 내는게 매너 아니셈?엄청난 깡이죠. 어딜 봐서 배값을 다 낸겁니까. 8천 달러를 깎아놓고 -_-;;7. 선주: 알겠심. ㅈㄱ.
아시아에서_날강도가왔구나.jpg
그리하여 손원일 제독은 요전에 18,000달러에 샀던 배를 무려 척당 12,000달러에 세 척이나 사서, 한 푼도 안 들이고 무려 600km 이상을 끌어옵니다. -_-;;
1950년 3월 21일, 손 제독은 해군본부에 전보를 보내 갑판 최효용 소령, 기관 최봉림 소령, 통신 김대륜 대위를 인수 선발대로 뽑아 미국으로 보내도록 지시합니다. 3월 23일에 한국을 떠나 앵커리지, 시애틀을 거쳐 LA에 내린 3명의 인수대원들은 곧바로 손 제독의 차로 롱비치의 한 모텔에 도착하죠.
네, 이 양반들은 무려 모텔에서 먹고 자면서 배 수리에 돌입한겁니다. 아니, 이건 그나마 약과죠.
나중엔 아예 수리중인 배에서 먹고자고 다 합니다. -_-;;
이야기 하나.
배 수리에 필요한 부속품은 보통 유태인이 운영하는 중고품 가게에서 구입했습니다. 최효용 소령이 부속품 목록을 제출하면 손 제독이 직접 구입해 왔죠. 크기가 안 맞는 부속품은 또 선반 공장에서 직접 깎아와야 했습니다.
자, 그런데 우리의 손원일 제독.
이 중고 부속품 가격도 깎았습니다. -_-;;
나중엔 주인이 최효용 소령에게 손원일의 계급을 물었습니다.
참고로 이 때 손원일 제독의 계급은
투스타~!
그렇습니다.
무려
투스타가 물건 값을 깎고 깡깡이질을 했더라....는 이야기 -_-;;
PS: 손원일 제독이 그렇게나 갖고 싶어했던 문제의 PF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