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군의 쿠마(球磨)급 경순양함 4번함 오오이(大井) 입니다.
쿠마급 경순양함은 텐류급의 후계함으로, 2차대전때는 잉여취급받은 텐류급이지만 취역 당시에는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우수한 배였습니다.
하지만 이 텐류급도 미 해군의 오마하급 경순양함에 비하면 열세라는게 일본 해군의 자체적인 평가였고, 오하마급에 대한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1차대전 후반기에 개발에 착수하여 1920년부터 취역한것이 이 쿠마급 다섯척입니다.
함명은 1번함부터 순서대로 쿠마, 타마(多摩), 키타카미(北上), 오오이, 키소(木曾)로 모두 일본의 강 이름입니다.
4번함 오오이는 3번함 키타카미와 함께 중뇌장순양함으로 개수되어 일본 해군의 특기인 야간 뇌격전에서 활약...했어야 하는게 일본 해군의 예측이었습니다만 중뇌장순양함이라는게 순양함에 유폭하면 X되는 산소어뢰를 잔뜩 실어놓은 막장 군함이라 사실상 활약은 거의 없었습니다.(...)
(중뇌장순양함으로의 개장은 5번함인 키소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만 취소되었습니다.)
일본 해군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지(...) 결국 어뢰발사관을 일부 철거하고 고속 순양함으로 개장하여 호위임무등에 투입했습니다.
뭐 이 배 자체는 그냥저냥 잉여하게 있다가 가토급 잠수함 38번함인 USS 플래셔에게 어뢰를 맞고 격침당했습니다만...(이때 아야나미(綾波 비단물결)급 특2형 구축함 2번함 (혹은 후부키급 특형구축함 12번함) 시키나미(敷波 연속해서 밀려오는 물결)가 오오이를 살려보려고 했습니다면 결국 침몰 했다고...)
이사람은 G4M 통칭 1식 육상 공격기 파일럿으로 전후까지 생존한 타카하시 쥰이라는 사람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누군지도 모르고 쓱 보시더니 "훤칠하게 생겼네." 하고 가시는군요.^_^;;;)
어린시절 비행기를 동경해 18살의 나이로 해군 예과 비행연습생에 지원하여 2년간 교육을 받고 민항기 조종사가 될 예정이었지만 운이 드럽게 없었는지(...) 전쟁이 시작되어 G4M의 파일럿이 되었다고 합니다.
종전 후에는 원례의 꿈이던 민항기 조종사가 되었으며, 노년의 나이에도 활발히 활동하며 비행을 즐기는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하여간 이사람이 92세인 2014년 한 인터뷰 내용 중 재미있는게 있습니다만...
Q: 패전을 직감한 순간은 어느때였나요?
A: 패전을 느낀 순간 말입니까.. 음.. 그렇지요...기지에서 다른 기지로 이동할때, 경순양함 오오이라고 아십니까? 그 연돌 3개가 세워져있던...
그 오오이에 타던 녀석이 제 동기라서요. 한가할때 함교로 들여보내주었습니다. 거기서 제국해군함정표 같은게 있길래 몰래 훔쳐봤지요. 봤더니 모두 줄이 그어져있는겁니다. 어이어이 연합함대 없어져버린거냐.
그때였으려나요... 이 전쟁이 안된다는걸 느꼈을때는...
이렇게 오오이는 한명의 파일럿에게 패전을 실감하게 해 준 군함이었던 것입니다.(...)
92세 당시의 모습. 이때도 비행을 즐기며 열정적으로 살고 계셨습니다.-_-;;;
덤1. 오오이는 기묘한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함명의 로마자 표기가 Oi로 단 두글자 뿐이라 세계에서 가장 짧은 함명이라고 합니다.(...)
덤2. 3번함 키타카미는 전후 1963년, 1500톤급인 이스즈급 호위함 3번함 키타카미가 이름을 이어받아 별다른 사고 없이 평온하게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본 뒤 1993년 퇴역 했습니다.
덤3. 키타카미, 오오이가 개장받은 이 중뇌장순양함이라는게 그 막장 군함이라는 후소급 전함, 이세급 항공전함 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막장을 넘어선 물건인데...
3번함 키타카미의 중뇌장순양함 개장 후의 모습입니다.
저기 갑판에 뭔 김밥말이 같은게 주루룩 올라가 있는게 보이십니까?
저게 전부 어뢰입니다.(...)
고농축 산소를 추진제로 쓰기때문에 일단 한발맞 맞추면 거의 100% 유폭을 일으키는 산소어뢰를 저렇게 갑판에 늘어놨으니 당연히 함재기 입장에서는 폭탄도 필요 없이 기총 소사만으로 순양함 한척을 때려잡을 찬스가 오는겁니다.(...)
키타카미나 오오이에 비해 비교도 안되게 장갑이 튼튼한 최신예 중순양함이던 타카오급 중순양함 4번함 초카이가 스펙상 그냥 무시할수 있을만 한 5인치포의 포격에 용궁에 간 이유도 바로 이 산소어뢰 유폭이었습니다.
중순양함조차 한방에 용궁보내는 유폭 위력을 자랑하는 산소어뢰를 저렇게 갑판에 늘어둔겁니다.(...)
거기다가 고성능이지만 가뜩이나 비싼 어뢰중에서도 겁나게 비싼 축에 들던 산소어뢰를 40발이나 재고 다니는 통에,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하자니 돈이 엄청 깨지고, 일단 어뢰 사거리 안으로 파고 들어야 하기 때문에 운용법 자체가 온몸에 폭탄 두르고 불길로 뛰어드는거랑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지금도 딱히 싼 무기는 아니지만 당시 어뢰는 미국이 열심히 찍어내서 코스트 다운을 시켜도 어지간한 집 한체 값이었다는군요. -_-;;; 서방권 어뢰 가성비 킹으로 유명한 한국 해군의 청상어조차 그거 한발 값이면 지방에서 아파트 한채 한다나 뭐라나...;;;)
결국 위에 적었듯 두척 다 고속순양함으로 재개장 되어 일본 해군의 등골에 추가 데미지를 주고(...) 오오이는 어뢰에 맞아 침몰, 키타카미는 이후 공작함으로 한번 더 개장 받고 하라는 수리는 안하고 종전 후 해외 미귀환병과 민간인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 한 뒤 해채되었습니다.(...)
덤4. 저 타카하시 쥰씨가 종전 후 자위대의 교관으로 초빙되었을때 G4M의 설계를 담당했던 사람을 만난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타카하시씨가 G4M에 탑승 했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반색하면서...
"예? 1식 육공에 타셨다고요? 그거 좋았지요? 좋았지요?" 라고 물었다는데 말이죠.
타카하시씨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덤5. 지금까지 탄 기체 중 가장 좋았던 기체를 묻는 질문에 타카하시씨가 대답 하시길...
"그야 96육공...응? 지금까지? 그럼 파이어 슈퍼커브지요."(...)
96육공=G3M 96식 육상 공격기
P.S. 출처에 인터뷰 번역 전문이 있습니다.
2식 대정같은 걸작기를 뽑아낸 나라가 어떤 막장기체를 만들었는지 봅시다.
참고로 2식대정을 제외한 일본제 폭격기들을 미군들이 부르던 별명은 원 샷 라이터. 이유는 어떻게든 한대만 쳐 버리면 금새 불이 붙어 떨어져서.(...)
칸코레 갤러리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