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학자입니다. 저는 분명 특정 분야에 대해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몇 분야에 대해서 저는 평균 이상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약간은 오만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70%가 제 의견에 반대한다고 해도 저는 제 신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90%라면 생각을 좀 다시 해 봐야겠지만요.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분야에서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정치에 대한 제 지식은 신문이나 TV, 그리고 오유에서 간간히 접하는 지식들이 전부이고, 저는 제가 평균 이상의 정치적 식견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근거가 없습니다. 만약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 70%의 사람들이 저와 다른 의견을 갖는다면, 저는 '아마도' 제가 틀렸을 것이라고 추론해야만 합니다.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의 의견에 5천만 분의 1 이상의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나 전 재산이 오갈 수 있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면 말이죠. 제 질문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경제의 '전문가'인가요? 당신에게는 다른 70%, 아니 51%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경제학적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아버지는 얼마 전까지 은행원이셨습니다. 외환 딜러로 출발하셨고, 지점장까지 올라가셨습니다. 저도 아버지께 주워들은 것들이 좀 있어, 은행 내부가 돌아가는 사정을 남들보다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저는 항상 이렇게 충고합니다. 금융권, 특히 은행에서 파는 각종 파생(?)상품들(증권, 채권, 펀드, etc.)는 절대 사지 말라고요. 이자율이 낮아도 좋으니 그냥 적금을 들라고 말합니다.
단순한 논리입니다. 은행에서는 항상 고객들에게 예금 대신 각종 삼품을 사라고 권합니다. 왜 그런 짓을 할까요? 시중은행의 직원 수는 수만 명이고, 그 중에서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만 추려도 수천 명은 됩니다. 이렇게 전국에서 끌어온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은행의 자산을 이용해서 0.001%라도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대출을 해 주기도 하고, 외환 딜링을 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합니다. 그렇게 한계치까지 노력해서 자산을 운용해서 은행이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수익률의 한계가, 당신이 받는 은행 적금의 이자율입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은행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완전경쟁시장입니다. 은행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돈'입니다. 100원은 어디서나 100원이고, 브랜드 가치가 0.0001%도 붙을 수 없습니다. 고객들은 이자율이 0.1%라도 높은 쪽으로 발빠르게 움직입니다. 담합이요? 가능하면 해 보라지요. 전 세계의 은행이 동시에 담합을 하지 않는 이상 1주일 내로 붕괴할 겁니다.
은행에서 어떤 펀드를 권했다고 해 봅시다. 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렇게 좋은 펀드면, 저는 그냥 예금을 들 테니 그 돈으로 직접 거기에 투자하시죠.' 왜 고객에게 리스크를 지우나요? 은행은 온갖 곳에 분산투자할테니 이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win-win 아닌가요? 원래 은행이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은행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고객에게 그냥 예금 대신 온갖 복잡한 상품을 팔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직원들을 쥐어짭니다. 네. 엄청난 압박이 들어옵니다. 하루 단위로 체크해서 인사고과에 반영하거든요.
펀드는 그래도 꽤 괜찮은 축에 속합니다. '차선' 정도라고 해 두겠습니다. 여러 고객의 돈을 모아 한꺼번에 관리하기 때문에 이들은 상당한 고정 비용을 들여서라도 수익률을 올릴 충분한 동기가 있습니다. 평생을 경제에 몰두한 전문가 중에서도 실력이 검증된 이들을 다수 모아 가능한 한 최선의 선택을 합니다. 이들에게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까요. 그럼에도 이들은 기껏해야 '평균적'인 수익을 냅니다. 이렇게 자산을 운용하는 전문가 팀이 세계에 한두백 팀이 아니니까요.
금융회사들은 당신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수많은 국내의 테마 펀드들, 중국, 동남아, 미국, 유럽, 호주, 기타 등등이요. 그런데, 당신은 경제의 '전문가' 인가요? 평생을 경제에 마친 수많은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보다 당신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자신이 있나요? 이걸 당신이 직접 선택하는 게 현명한 판단일까요? 그냥 당신은 리스크가 제거된 자본을 제공하고, 이들이 줄 수 있는 최선의 평균 수익률을 받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이런 상품들이 분명 있습니다. 시중은행의 '적금' 같은 것이요.
조금 더 나쁜 선택은 개인이 직접 주식, 채권, 외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개미는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없다'고, 아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보셨을 겁니다. 네.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이야기이고, 어쩌면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럴 자신이 있으신가요? 평균적인 국민보다 나은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평균적인 개미보다 나은 것으로도 부족합니다. 전 세계에서 자신의 자본 수익률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는 수십만 명의 펀드 매니저와 경제 전문가들보다 나아야 합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요. (아시다시피 비슷한 수준이면, 자본이 적은 쪽이 집니다.) 이 정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푼돈을 가지고 놀 이유가 없습니다. 당장 미국 월가로 건너가서 해지펀드 매니저가 되야지요. 상여금을 백억 단위로 쓸어담으실텐데 왜 헬조선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나요?
게다가 개인이 직접 돈을 관리하는 것은 굉장한 고정 비용이 발생하며,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금융 기관들은 수천, 수만, 때로는 수십만 명의 돈을 모아 한 번에 관리합니다. 수십 명의 전문가를 풀타임으로 고용해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직접 경제를 공부하고, 저널을 구독하고, 차트를 분석하고, 기업의 온갖 공개 자료들을 읽는 것에는 엄청난 고정 비용이 발생합니다.마치 의류 공장을 버리고 각자 집에서 배틀로 옷을 지어 입는 것과 비슷한 행위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정신 건강에도 썩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비트코인과 비교한다면, 주식은 썩 괜찮은 투자일 수도 있습니다. 견실한 기업들에 적당히 분산투자하고 잊어버린다면 평균은 갈 수 있습니다. 물론 돈을 잃을 수도 있지만, 평균 수익률을 따져 본다면 0%가 넘는 것은 확실합니다. 최악의 행위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평균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도박을 하는 겁니다.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행위죠.
대체 어디서 온 자신감인지, '올라갈 때만 단타로 치고 빠지면 거품장, 하락장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 올라가고 언제 내려갈지 어떻게 아나요? 이게 성립되려면 언제 시장이 반전해서 하락세가 될지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훌륭한 예측 능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런 자신이 있는 사람들 뿐일까요? 대체 무엇을 근거로요? 경제학이나 심리학, 아니면 게임이론 전공자 분들일까요? 아니면 IQ가 150이 넘어서, 뭘 하든 남들보단 훨씬 잘 할 자신이 있는 걸까요? 비트코인에 투자한 350만 명 전부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그러겠지요. 당신은 몇몇 분야에서 특출날지도 모르지만, 절대 모든 분야에서 특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금융 상품에는 여러분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책정한 미래 가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은 그 가치가 잘못 책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 명백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거기에 직접 도박을 걸지는 않기를 권합니다. 아마 51% 이상의 확률로, 세계가 아닌 저희가 패배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