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인터뷰는 계속된다. 작가는 기자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내용을 되새기며, 자신이 이렇게 진부한 삶을 살았나 슬프기까지 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이야기 해달라고 해도, 없다. 뭐 가끔 친구들과 야자를 빼먹고 피시방에 갔었다는 이야기도 이미 작년 제작년 인터뷰에서 푹푹 고아먹어 국물도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창피했다. 기자가 좀 더 자신의 환상적이고 멋진 작품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물어봐주길 원했다. 내가 3장에서 엮은 인물들의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까?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마지막에 왜 그렇게 해버렸는지 눈치 챘나? 그러나 기자의 입은 작가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묻는다.작가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시끄러운 카페에는 담배연기와 사람들의 수다소리가 흐르고 부딪힌다. 아무도 카페의 벽에 걸린 그림과 싯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예술이란 언제나 배경이니까.
작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신없는 소음 속에 드디어 기자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다! 그가 물은 12가지의 질문중에 작가의 입에 미소를 걸게 한 첫번째 작품이었다. 실로 작가는 그 질문을 '작품'이라 칭할 만큼의 만족감을 얻었다. 기자는 이제 작가의 과거를 벗어나 현재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기둥달린 형제가 몇 있는지 구멍뚫린 부모가 몇 있는지 알게 뭔가! 작가는 생각했다. 그래, 작가란 뭐지? 글을 쓰기 전에 나는 그냥 한글 석자 달린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데 글을 쓰기만 하면 나는 변한다. 작가는 그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백지. 누구보다도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녀의 몸에, 검은색 잉크의 욕정을-정액을 한바탕 흘려버리면 이루 할 수없이 피어나는 오르가즘. 봇물처럼 터지는 희열과 갈망. 정신병.
작가는 위험한 사람들이죠. 정신병자 후보생이라고 해야되나...
기자의 웃음. 멋진 비유네요. 그가 답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작가는 눈을 감고 지그시 생각한다. 불과 몇일 전, 집필하던 소설의 절정부분을 쓸 때의 일이다. 작가가 그날 한 일은 인터넷 웹서핑과 영화 관람이었다. 주제는 해부학과 칼의 절개동선에 관하여. 그날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하고 끔찍하게 죽일 수 있을까? 영화를 찾아보며 좀 더 작가는 몰입했다. 과연, 저렇게 죽이면 더 끔찍하고 극적이네. 사지가 뒤틀리며 꿈틀대는 손가락 마디마디의 관절까지! 작가는 집중했다. 그날 한명의 여자를 죽이기 위해 작가의 눈 앞에서 34명의 사람이 죽었다.
이번에 쓴 소설, 읽어보셨나요?
그럼요. 개인적으로 절정 부분은 머릿속에서 아직도 떠나질 않네요. 강렬했습니다.
그렇죠? 기자님이 보시기에 저는 어떤가요. 살인자처럼 보이나요?
아니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하.
당황한 기자가 손사래를 친다. 작가는 미소를 짓는다. 은제 포크를 쥔다. 케이크가 묻어 얼룩진 끝을 입 속에 넣어 혀로 말끔히 씻어낸다. 입안에 녹아드는 미량의 크림이 작가의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기자는 작가의 분위기가 180도 변한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좀 전의 지루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이곳엔 한명의 예술가가 있었다. 그는 지금 글을 쓰려고 한다. 기자는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눈 속에서 수많은 영감들이 터지고 내려앉은 잿더미가 형형한 광기로 모여 쌓이는 것을.
작가들이 상상하는 시나리오는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일종의 욕구 불만들이 모여서 쌓여버린 거에요. 그것이 글로 옮겨져 해소 됩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에요. 아무도 더 이상 원하지 않죠. 그저 정해진 글의 틀 안에서 사람들은 주제를 보고, 해석하고...정말 더럽게 재미없죠. 그러니 병걸린 환자들은 더 미칠 수 밖에 없어요. 더 미쳐 날뛰어야 좀 더 근원적인 관심을 가져 줄 테니까.
기자는 도망치고 싶었다. 작가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었다. 도화선에 불이 붙은 다이너마이트 같았다. 하지만 기자는 그럴 수 없다. 여기서 벗어나는 순간 작가가 쥔 은제 포크가 자신의 목덜미에 푹 하고 박힐것만 같았다. 체리소스를 품은 치즈케잌마냥 살점들은 덜렁 거리며 피를 뿜어내겠지. 동시에 기자는 작가가 왜 자신에게 이런말을 하는지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가 가진 작가에 대한 지식은 3개의 소설책을 냈다는 것과, 이전에 음악평론일을 잠시 한 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인터뷰를 하며 알게 된 작가의 과거 이야기들-그러나 이건 이전에 다른 잡지에서 수없이 읽은 내용과 같았다-이 전부.
기자님. 작가들은 모두 감옥에 쳐넣어야 합니다. 여기에(작가는 포크 끝으로 자신의 옆통수를 툭툭 건드렸다) 지옥이 있어요 지옥이.
작가가 포크를 놓음과 동시에 기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작가는 홀연 자리를 떠났다. 기자는 작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들려오는 수다소리와 눈앞을 가리는 매캐한 담배연기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기자는 가방에서 작가의 신작을 꺼내 잊을 수 없던 그 부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영미는 반대편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먼저 목과 가슴골을 따라서 절개가 시작된다. 예리하게 비려진 식칼이 가슴뼈를 비껴 내려가다가 말고..................]
수백줄을 이어나가며 묘사되는 여주인공의 죽어가는 모습. 정육점의 고기처럼 해체되며 지르는 그녀의 비명이 메아리가 되어 들리는 듯 하다. 신경다발로 이어진 몸뚱이가 반응하는 관절의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적혀내려가는 살인의 현장. 기자의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기자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잡는다. 다이얼의 번호는 1에서 다시 1, 2로. 귀에 핸드폰을 대려는 찰나의 순간에 기자는 그만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목덜미 살을 꿰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식기의 느낌.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두 손이 조심스레 기자의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다시 맞은편 자리에 작가가 앉았다. 기자는 천천히 테이블 위로 쓰러지고, 작가는 턱을 괴고 벽에 걸린 선배 작가의 시가 담긴 액자를 바라본다. 소음과 담배연기가 카페에 있었다. 잠시 후 작가는 자리를 떠났고, 기자는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아무도 왜 기자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언제나 배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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