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등산을 다녀왔다.
원래부터 산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었지만, 그간 여유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관악산 등반을 강행했다.
시작부터 재밌었다.
서울대입구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모르는 여자가 나에게 말을 시켰다.
"야!"
"으...응?"
"너 나 알지?"
모르는 여자였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얼굴.
"뉴규..?"
"너 경성여고 나왔지? 홍익여중 나오고?!!!"
경성여고와 홍익여중 앞에서 오래 살긴했다만, 내가 나온 학교는 아니었다.
"아니욤"
하지만 그 여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너 허00몰라?"
몰랐다.
"아닌데욤.."
하지만 그 여자는 쉬지 않고 말을 해댔다.
거짓말하지말라는둥, 00선생님을 모르냐는둥, 너 허씨 아니냐는둥.
하지만 난 한씨였고, 비록 없이 살지만 거짓말을 할줄도 모르고, 00선생님이 누군지도 몰랐기에
"아니라구요.."
라고 단호히 외쳤지만 그여자의 입은 멈출줄을 몰랐다.
누군가를 무시하는 것은 매우 매우 안좋은 일이지만, 더이상 대꾸를 하다간
관악산 등반을 같이할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오랜만의 여유를 망칠 수 없어서 못들은척 이어폰을 꽂았다.
그러자 그여자는 양 볼에 태양초고추장을 바르며 다음정거장에서 내려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도착한 관악산 입구.
그런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전~국 노래자랑!!"
송해아저씨였다.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정겨운 목소리는 내게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라고 울부짖고있었다.
현철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자꾸만 내게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으라며 강요했고,
정주고 마음주고 사랑도줬으면 더이상 남남일 수 없다며 날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의 끈질긴 구애를 뿌리치며 산으로 향했다.
산은 참 좋았다.
색색깔의 미친단풍들이 날 위로했고, 졸졸 흐르는 약수터는 내 발목을 잡았다.
피곤했다.
관악산마저 날 사랑할줄이야.
이런식이면 곤란해. 악산아. 난 이미 만인의 연인인걸
이라고 말하니 그때부터 바람이 휘몰아쳤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나의 냉정함에 관악산은 날 놓아주려는 듯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분명 나는 서울대입구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한 곳은 경기도 안양이었다.
산을 타고 넘은 것이다.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본트랩대령이 국경을 넘듯, 난 그렇게 봉우리를 뛰어넘었다.
그 사이 절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엔 강아지가 세마리나 있었다.
어찌나 사람손을 탓던 것인지 사람이와도 시큰둥했었는데
내가 솔방울을 하나 던져주자 우르르 달려가서 솔방울을 서로 물겠다고 난리쳤다.
난 그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다가가서
"내 사랑을 얻기위해 발버둥 칠 필요없어. 난 지나가는 바람일뿐이니까."라고 말했고,
그 말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강아지들은 각자 제자리로 돌아갔다.
산행은 즐거웠다.
그러다보니 욕심이 생겼다.
산을 더 타고싶어졌다.
난 서울에 도착한 그 길로 백화점에 달려갔고, 등산용품을 샀다.
산을 타본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가장 중요한 장비는 바로 신발이다.
신발을 고르느라 한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마침내 마음에 드는 신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신발은 바위도 탈 수 있는 기능성신발이었고, 언젠가는 안나푸르나를 갈꺼라는 계획이 있었기에 점원에게 싱긋웃어보이며 물었다.
"이거 신고 안나푸르나 등반할 수 있어요?"
그러자 점원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네. 근데 눈올때는 가지마세요."
라고 말했다.
그 후로 나는 꼬박꼬박 일기예보를 챙겨본다.
안나푸르나에 눈이 오지 않는 그날을 기다리며...
등산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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