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위공포증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이미 이혼한 상태였던 엄마와 아빠 사이에 일 때문인데,
당시 아빠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어느정도 수준이었냐면, 내가 10 살 때 아버지가 교도소에
들어갔는데 그 이유가 도박과 치정문제로 폭행을 일삼다가
결국 사람의 손을 칼로 찍어버려서 징역을 살아야 했을 정도
였다. 가위공포증이 생기게 된 그날도 아빠는 역시 폭력적이었다.
어린 나와 내 여동생은 엄마 아빠 간의 부부싸움의 포로로써
당시에 아빠가 살고 있던 서울 천호동의 작은 방에 갇혀 있었고
엄마는 우리를 되찾기 위해 왔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아빠의 일방적인 폭행이 시작됐는데
엄마의 얼굴이 퉁퉁부어가며 피투성이가 되고 커다랗고 선한 눈가에 시퍼런 멍에가 남아갔다.
동생은 목을 놓아 엉엉 울어댔고 나는 꼴에 사내아이라고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말렸었다.
그리고 내가 손에 힘을 주면 줄수록 아빠는 나를 발로차거나 밀어내며 나 또한 가차없이 공격했다.
난 아빠에게 맞아 피를 흘리며 나가떨어질 때 마다 만화에서 봐오던 주인공들의 힘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때 그 상황을 멈출 수 있는, 아빠를 내가 제압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있길 바랬다.
엄마를 한참 폭행하던 아빠가 갑자기 서랍에서 시퍼런 가위를 꺼내들었다. 무언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감과 공포를
느낀 나는 필사적으로 아빠에게 매달렸다. 아빠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쌍욕을 하며 폭행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부어오른 얼굴로 아빠를
나에게서 잡아 뜯었다.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처지고 끔찍한 순간은 그렇게 찾아왔다.
아빠는 갑자기 엄마를 향해 돌아서더니 주저 앉아 있는 엄마의 하얀허벅지를 향해 가위를 내리찍었다.
더 적어내려가기가 너무 힘들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면 할 수록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공포와 무력함 그리고 위압감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서 써 나가겠다.
왜냐하면, 왜 나라는 인간이 여성 인권 신장을 주장하고
나아가 최근까지 메갈을 긍정적으로 지켜보고 응원했는지
명확하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눈 앞에서 선혈이 낭자했다.
엄마가 내지른 귀를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그 작고 더러운 방안을 울려채웠다. 나는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다. 모르겠다 내가 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공허함? 무력함? 자괴감? 글쎄... 어떤 하나의 단어로 특정하기 힘들다.
아빠는 칼을 가지고 다 찔러죽인 뒤에 자살하겠다며 식칼을 찾다가
칼이 없었는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때를 틈타 엄마가 다리를 절뚝이며 나와 동생을 데리고 도망을 쳤다.
터미널로 가는 택시안에서 허벅지에 피를 흘리며 울던 엄마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나는 가위에 대한 두렴움이 있었었다. 물론 지금은 없다.
내 자아를 찾고 난 뒤부터 가위를 보면 과거의 공포보다 '위험한 물건'쯤으로 생각한다.
가위에 얽힌 이야기는 그저 가위 이야기 하나일 뿐이다.
내가 겪었던 가정폭력의 아주 일부분이며,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와 동생을 버리고 두번이나 새벽같이 도망을 가버린 것 또한 이해하고 엄마의 선택을 존중 할 정도였으니까...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여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약자로써의 이미지가 강했다.
폭력에 희생양인 엄마와 여동생이 있다보니까 '여성'은 지켜야 하는 존재라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언젠가부터 김치녀, 된장녀, 맘충 뭐 이런 단어들이 성행하고 많은 커뮤니티에서 한국의 여성을 비하하고
매도하는 것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역겹기도 했고 될 수 있으면 가서 패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 나에게 '메갈리아'는 굉장히 흥미로운 커뮤니티였다.
나도 처음에는 색안경이 있었다. 과도한 표현과 극도로 싫어하는 그들과 똑같은 언행 때문에 왠지모르게 싫기도 했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미러링'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난 뒤부터 온전하게 메갈리아를 볼 수 있었다.
사실 많은 남성들은 그들이 말하는 '미러링'의 의미를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미러링을 말하자면 이렇다.
1. 한남충, 씹치, 한남또, 애비충 등등의 단어를 구사하고 그것 들로 어떠한 글을 형성 할 때 내가 느끼는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은데'라고 하는 억울한 감정과 답답한 감정
-> 이것이 왜 미러링인가?
당연히 미러링이다. 그동안 많은 커뮤니티에서 김치녀, 된장녀, 맘충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며 비하할 때
그런 프레임안에 해당하지 않은 여성들이 느꼈을 그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2. 나는 6.9cm가 아니다. 대놓고 말해서 큰 편이다. (크기 자랑이 아닌점을 미리 말한다. 어릴때는 왕자지라고 놀림을 하도 많이
받아서 심각한 컴플렉스였다. 자를수만 있다면 조금 잘라서 보통의 크기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지금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그래서 나는 메갈리아의 로고이미지와 그들의 6.9 드립을 보면서 굉장히 불편했다.
왜냐면 나는 그들이 일반화하여 말하는 것에 물리적으로 포함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이것이 왜 미러링인가?
마찬가지로 한국여성들 중에서도 B컵 이상의 가슴을 가진분들이 많다. 발육자체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일상이 서구형으로 변했기 때문에 육체또한 보다 서구적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커뮤니티에서
한국 여성은 유전적으로 가슴이 작아서 A컵 뭐 이런식으로 말한다. 지금도 한국 여성 =A컵이 많이 통용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비꼼을 응용하자면 이렇다.
남 : ~~~해봐야 A컵 년들 주제에 바라는건 존나 많아. 노답 김치녀들 ㅉㅉㅉ
A컵이 아닌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 말은 황당할거다.
'난 아닌데?'이니까. 마찬가지로 나도 황당하다. 나는 6.9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신체적 특성을 비꼬는 것 또한 미러링이 성립 된다.
나는 위의 2개의 사례에서 느꼈던 내 감정을 통해 메갈리아에서 말하는 미러링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행위가 그동안의 탄압에 대한 저항, 표출, 배설이라고 받아들이고 존중했으며 인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급진적인 부분과 과한 표현에 대해서 비난할 때 나는 그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성운동이라는 것이 급진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득으로 대변되는 '남성' 혹은 남근주의에서 말하는 평화적인 저항 혹은 평화적인 시위나 운동이라는 것이 어느정도 의미가 있을까?
기껏해야 '어 그래 알겠어' 수준의 리액션이라 본다. 주목 자체를 받지 못할거다.
그나마 관심이 조금있는 사람들이나 찾아보고 접하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 어떤 영향이나 정보를 행사하지 못한다.
즉, 효율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메갈리아가 선택한 방법은 옳다 못해 지당하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문제를 인정하고 경각심을 가지게 했으니
나 개인적인 관점으로 다른 그 어떤 단체의 행동보다 의미가 깊었다.
난 그렇게 믿었다.
그랬던 내가 근래에 들어서는 메갈리아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오히려 메갈리아 자체를 혐오하게 될 수준으로까지 돌아섰는데,
여러가지 이유 중 몇 가지만 꼽아서 말하고자한다.
1. 댓글들이 정말 가관이다.
분명 메념글에는 미러링을 통해 설파하려는 것이 보이는 게시물이 대부분이지만, 그 댓글에는 의미를 알고 동조하는건지
아니면 그저 혐오만 하려는 것인지 모를 댓글들이 많다. 즉, 커뮤니티 자체에서 '다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혐오동조세력'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이런 주관성 없는 혐오동조세력이 아래에 적어내려갈
무자비한 폭력의 주원인이 되는 광기라고 지목하는 바이다.
2. 똥꼬충? 정말 미친소리다.
동성인권 커뮤니티나 동성지지 커뮤니티가 아니라고 하는데 당연히 그런 주장까지는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똥꼬충이라며 매도해도 되는가? 메갈리아에서 말하는 남성동성애자임에도 동성애자임을
숨기려고 여성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말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분명 도덕적 문제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을 '포옹력'의 심볼이라고 생각한다. 침팬치 연구가인 제인 구달 박사가 기존의 연구방식,
그러니까 침팬치들에게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수단을 학습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제인 구달 스스로가 침팬치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을 보며 '여성'학자니까 가능한 전대미문의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페미니즘의 순기능이자
그 순기능을 통한 위대한 쾌거라고 믿었다. 이와 더불어 많은 여성단체가 성소소주자 단체들과 연대하며 행동 하는 것을 보면서
그 '포옹력'이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똥꼬충이라니 이건 무슨 망언인가?
포옹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해하지만 이것은 매도이자 혐오다. 소수인 그들에게는 무자비한 폭행이자 폭력 일 것이다.
3. 위안부에 대한 메념글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를 성노예로 부각하고 한남충들이 위안부 사건에 분노하는 이유가 자신들이 부려야 하는
성노예를 일본에 빼았겨서 그렇다는 것은 정말이지 역거울 정도의 말이다. 이거 또한 메념글이라는게 당최 이해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담론화 된 것 중 하나라고 한다해도 그 담론의 객관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로도 증명할 수 있는데, 그 정도까지 천인공노할 만한 만행을 저지른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그 규모와 체계면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정밀했다는 것이 사학적으로 증명 됐다.
다시 말하자면, 피해국가가 지극히 제한적인 사항인거다. 동북아, 동남아와 끽해야 네덜란드 미국 정도일까?
피해여성 수는 당연히 한국,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지배와 피지배 상황과는 질적으로 다른 만행이다.
덧붙여서 시대적인 부분까지 말하자면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위안부에 분노를 느끼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은 그럼 성적욕망의
표출로 봐야하나? 이 글에 대한 댓글들은 더 가관이다. 끔찍한 수준이라도 봐도 무관할 정도...
이것 말고도 근래의 메갈리아는 정말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이 되야 한다는 말이 진정 사실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것들이 통채로 배신당하는 기분이다.
물론 성장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키를 한두번 움직여 보듯 기우일 수도 있지만
메갈리아라고 하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자조적 시각과 자기비판적 내용을 바라기에 굉장히 힘든 것도 현실이다.
알다시피 이미 찢어져 나간 사람들도 많고 새롭게 까페를 하나 더 나눈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 메갈들은 일부이고 타 커뮤니티에서 분탕질 하려 온거라고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발상이자 언행이다.
그런 분탕질이 듣베나 오유에는 없었는가? 루리웹이나 와갤, 웃대 등등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없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유나 웃대같이 내가 오랫동안 봐온 곳은 받아들이고 자정을 하기위해 노력했다.
또한 일부라고 치부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메갈리아 자체의 회원수가 만여명 수준의 작은 커뮤니티 규모라고 설파하는데
소규모라고 하는 특수성을 강조했던 이들이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 일 뿐이라고 한다면 이 얼마나 이중적 모습인가?
그리고 사실 그런 주장은 근래의 썩어버린 기독교의 주장과 일맥상통하지 않은가?
제발, 진실로 바라건데 수긍할 것은 수긍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은 인정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것이 여혐에 대한 광기를 가진채 탄생하게 된 여혐혐을 응원했던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더이상 메갈리아에서 말하는 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는다.
일베에서 말하는 애국이 허상이자 민중에 대한 폭력이듯 메갈리아에서 말하는 페미니즘도 허상이자 소수에 대한 폭력이다.
따라서 메갈리아에서 외치는 페미니즘은
일베에서 외치는 애국과 같다.
가위공포증으로 부터 이 글을 시작했으니 가위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음을 하겠다.
만약에 그날, 엄마가 복수를 위해서 혹은 같은 고통을 주기위해서
가위를 들고 아빠의 허벅지를 찍었다면 그 후에 나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존중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그저 아빠가 엄마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정성을 다해서 치료해 준 뒤 평화로운 가정이 되기를 바랬을 뿐이니까.
그렇게 죽도록 맞은 날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 마음속에 간절히 남은 소원은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4명이서
저녁식사 한번 먹는 것이다. 딱 한끼만이어도 좋다. 그렇게 먹고나면 나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