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방향이 엇나갔습니다. ㅎㅎ 지금보니 저에게 의문을 제기하신 분들께 반대표가 하나씩 붙고 있는데요. 이 글을 읽고 객관적으로 다시
판단해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반대를 먹을 글은 아닐꺼라 믿습니다.
너무 제 글을 재밌게 읽다보니. 우리가 삶을 살면서 저렇게 시원하고 선에 맞게 딱딱! 살아온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아마 의문을 제기하신 분들은, 죽기전에라도, 정말 완벽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기를...그런 최고의 사이다를 마셔볼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 최고의 사이다 팬들이라 여깁니다. 그래도 저는 아닙니다. 저는 노대통령님 처럼 될 순 없습니다. 티끌하나 없이 맑은 사람은 아닙니다.
과거 우린 안철수 의원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에 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후에 실망한 부분도 크구요.
제가 좋아하는 유시민 의원님께서 일선에 물러나신거에 대해 분노도 많이 했습니다. 당신이 사라지면 투표도 뭐도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분이 언젠가 대선에 나올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말이죠..
아마 의문을 제기하신 분들이 느낀 감정이 저와 흡사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요즘은 몇년째, 안희정씨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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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저녁에 쓰려 하였으나, 일찍이 키보드를 잡았으므로 다시 가겠음슴체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고, 본인의 스케쥴은 다음과 같았음.
이브 낮에는 공장의 중국 숑디들과 식사.
저녁에는 택시 숑디들과 식사. (여기서 음주를 좀...)
저녁에서 새벽까지는 이혼녀 클럽 누님들과 빠에서 놀기.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낮에는 공장 반장들과 쇼핑..본인에게 선물을 사주었음.
밤에는 본인을 위해 고향에서 돌아온 여친과, 근처 여친의 친구들과 함께 식사.
2차로 클럽에서 놀기.
그들을 마주친건 주로 새벽시간 이었음.
누님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늘 가던 바에 몰려들어갔음. 거기서 낯선 무리를 발견하는데.
정말 우울해 보였음. 남자들끼리 쭈~~~욱 앉아있는데 먹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음.
빠 사장님과 여직원들이 "ㅇㅇㅇ!!!라이 라이 라이!!!!!" 하고 소리를 쳐대서, 그분들도 뭔가? 하고 본인쪽을 쳐다봤음.
나: " 아~~ 누님. 동생들~ 잘있었어? 나 안보고 싶었어?"
직원들: "빨리 와. 제일 넓은 자리 맡아뒀어. 그거하자 그거!!!"
뒤에 미시 누님들 8명을 대동하고, 가장 중앙에 큰 자리로 자리를 잡았음.
그때 본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느꼈음.
"아닐꺼야....그놈일리가 없어.....되게 닮았네......"
하는 시선.
누님들은 시끌시끌 자리를 잡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의미로 본인에게 "싼즈쑝"을 불러달라 그랬음.
"싼즈쑝"이 무엇이냐...무슨 드라마인진 모르겠는데. 어떤놈이 "곰세마리"를 여자에게 불러주는 장면이 있었나봄.
그게 중국 미시들에게는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왔나봄...덕분에 그런 노래를 이나이에 불러야 했음.
"곰 세마리가.....한집에 있어...아빠곰(빠바쑝!!!) 엄마곰(마마쑝!!) 애기 곰(바오바오쑝~)..
아빠 곰은...(팡팡라!!!!)....."
뭐 이런식으로 누님들이 코러스를 샤우팅으로 외쳐댔음.... 본인이 한국노래를 불러대자...그들의 눈빛이 바뀌었음..
먹던 술잔을 내려놓고, 모두들 이글이들 타오르는 눈으로 본인을 응시하기 시작함. 구경꾼이 생기면 신이 난다고 할까...?
갑자기 즐거워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처에 손님들도 헐? 한쿸인이네? 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주목했음.
중국인들은 술자리 게임이 단순함. 컵에 주사위들 넣고 겁나게 흔든뒤에 나온 결과로 술을 마시게 한다던지..
가위바위보 같이 손동작으로 숫자를 외치며 지는 사람을 술을 먹였음. 당시엔 그 오묘한 규칙을 이해하진 못했음.
그래서 본인이 제시한게 대학 신입시절 하던 한국식 술게임이었음.
누님들에게 처음 술게임을 가르쳐 주었을때,, 그녀들이 느낀 신세계... 아..한국인들은 정말 술을 미친듯이 좋아하는구나.. 생각을 했다고 함.
노래도 가르치고...너무너무 좋아하여 누님들도 열심히 노래를 외우셨고,,(발음은 엉망이었지만..)
늘 게임을 가르쳐 줄때는 술집의 종업원들도 자기들 끼워달라고 아우성이었음..
그래서 크리스마스 이브날 다시 술게임을 시작했음.
"눈치게임! 이 - 얼 - 싼 - 쓰 !!!"
" 산 너머산!! 산너머 산!!!"
"도오오오~~~옹 구 밖~~~~과수 원 샷!!!!!!!!!!!!!!!!!!!!!!!!!!!!!!!!!!!!!!!!!"
이미 술집은 미친듯이 시끄러워 졌고, 호기심 많은 다른 테이블 손님들은 이미 우리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헤헤헤~ 거리며 구경함.
중간 중간 할아버지 들이 "그...그게 한국의 게임인가?" 하고 질문을 던져댔음.
특히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게 있었음.
전~~구~욱!!!! 노래자랑!!!!!!!!!!! 빠빠빠 빠빠 빠빰. 빠라바라 바빰빰빰 빠!!빰!!!"
(이 게임 아시죠? 눈치게임 처럼..전국 노래자랑 하면 일어나서 박수쳐야하는데, 제일 늦게 일어난 사람이 술먹기..)
누님들은 이 노래 익히려고 전국노래자랑을 어렵게 어렵게 검색해서 시청했다고 함. 지금도 찾아볼지도...
중국인들은 특히 익히기도 쉽고, 노래도 그냥 빰빰 하면 되니까 엄청 좋아했음.
옆테이블 손님들이 자기들도 알려 달라고~!! 끼워달라고!!! 아우성을 쳐댔음. 그 와중에 부글부글 끓는 눈으로 빠를 나가는
손님들이 계셨음. 그래...제조팀. 역시는 역시 역시군..당신들이 앞으로 할일은 케이티비 가서 돈받고 놀아주는 분들과 노셔야겠지.
누님들과 호텔앞에서 헤어지고 침대에 누웠을때의 그 뿌듯함에 몸서리가 쳐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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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루가 지났습니다.
문제는
피드백 개그.
다음날. 저녁 여자친구가 왔음. 우린 항상 쭈쟈오판을 먹었는데, 처음 그녀를 만나고 본인이 데리고 간 곳이 마음씨좋은 중국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식당이었음.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녀1, 손주 2명. 항상 식당이 활기가 넘쳤음. 중국 마을 식당에 가보면,
학교 갔다온 애기들이 식탁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장면이 자주 나옴. 어떤 엄마들은 옆에 앉아서 가르쳐주고 있지만, 어떤 부모들은
자기들도 잘 모르기에 감독만 하고 있는 경우가 있음.
당시 식당 애기들이 영어시험을 보고 시험지를 들고왔는데, 70점짜리 시험지 였음.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는 점수는 알겠는데,
애기가 뭘 틀렸는지. 이게 뭔지 못알아 보았음. 왜인걸. 시험지는 문제 까지도 영어로 되어있었음.
당시 큰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문제 수준은 우리 중학교 1학년 정도였음. (그때,,아 앞으로의 중국 세대들이 무섭구나..생각했음)
그때 본인이 시험지를 받아서, 검사를 해줬음. aple -> apple, he is -> he was 등등 조금 첨삭을 해줬음.
할아버지는 본인에게 "우리 손녀가 영어를 잘 하는감? 70점은 한국에서 어느정도 수준인감?"
물어보았음. 본인이 중국어를 배울때, 항상 중국인들은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음. 나는 진짜 잘하는줄 알고 신나게 틀린말을 사용해왔음.
무엇보다 언어는 자신감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할아버지. 70점이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애기가 틀린 부분을 볼때, 무척 단순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만 틀렸음. 영어를 쓰고 말하는데는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음. 본인은 중학교때 당신 손녀만큼 영어를 하지 못했음. 얘는 천재임."
그때 할아버지가 손녀를 목마 태우고 좋다고 팔짝팔짝 뛰던 모습은 참 흐뭇했음.
그런 와중에 본인이 여자친구를 데려갔고, 할아버지는 여자친구를 알고 있었음.
" 아니? 매일 찾아오던 꾸냥(아가씨)아니야? 얘랑은 어떻게 알고 같이 온거??"
둘이 사귄다는 말에. 인연이라고~ 인연이라고 자기가 증인이라고 좋아했음.
쓸데 없는 얘기가 길었음.
저녁이 되고, 동네 아가씨들이 다 모였음. 다들 도발적인 옷을 입고 있었음. 허허...좋았음. 각자 남자친구들도 대동하고 나타났기에...
사람이 많았고, 차 한대에 8명이 구겨탄채로 클럽으로 향했음. 특히 욕쟁이 할머니같이 말하는 아가씨 한명이 재미있었음.
클럽 앞에 도착했더니, 클럽 입구에 한무리를 마주침. 역시는 역시 역시군. 제조팀이었음. 입구 지키는 중국 꺼거와 실갱이 중이었음.
법인장님이 우리는 여기 일하러온 한국인 들인데, 크리스마스니까 놀러온거다. 좀 들어가자.
중국꺼거: "그러니까 들어오려면 신분증을 줘봐. 여권."
법인장 : "아니 여권은 호텔 방에 있다고. 몇개는 공장에 맡긴 상태고.."
중국꺼거: " 안됨. 가지고 오셈."
그때 우리가 들어갔음.
중국꺼거: "오~~니하오 니하오~ 엇!! ㅇㅇㅇ!! 오랫만이다!!"
나: " 오~ 하오죠 부지엔~~ 잘지냈지? 오늘 좀 놀다갈껭~"
중국꺼거: " 어 그래! 오늘보니 아가씨들도 예쁜걸? ㅎㅎ 여친임?"
그렇게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음. 돌아보니 대리 한명이 본인을 부른거임.
대리: "야. ㅇㅇㅇ. 우리도 좀 들어가게 이사람한테 얘기좀 해주라."
나: "지금 반말? 언제봤다고 반말이셔. (중국 꺼거에게) 꺼거. 이사람들 뭐임?"
중국꺼거: "몰라. 신분증이 없어서 막고있음. 그러고 보니 한국인들인데. 들여보낼까?"
나: "뭔소리야. 너 한국인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름? 술마시면 개가됨. 조심해야되. 명심해."
중국꺼거: "그럼 들여보내지 마?"
나: "나중에 문제 생기고 책임질 각오가 있으면 들여보내. 나는 모르는 사람들임. ㅅㄱ"
그렇게 그들은 출입이 금지 되었음. 그때 법인장은....뭐지....저놈이 언제 저런 중국어를....??"
회사에서 5년 10년을 일한 사람들도 아직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한 상황이었음. 당신이 보기에 그게 놀라웠나 봄.
후에 본인에게 중국 영업팀쪽으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의했지만, 본인은 전공을 포기하지 못했음.
신나게 놀고 다시 8명이 구겨탄채로 호텔앞에 도착했음. 그때 호텔 정문에서 다시 제조팀과 마주쳤음.
친구들과 빠이빠이 손흔들고, 방으로 들어간 본인은 지금쯤 슬슬...올때가 되었는데.... 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음.
아니나 다를까. 4개월동안 울리지 않던 방문 벨소리가 울렸음. 본인은 가운만 걸친채로 문을 열어봤더니 과거 나를 모략했던 PLC대리가 서있었음.
대리: "야. 너 누구마음대로 그렇게 돌아다니래?"
나: "그러는 님들은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돌아다니는데요?"
대리: "야. 너랑 우리랑 같냐?"
나: "오늘 보니 다르더만요. ㅎㅎㅎ"
대리: "야. 너 진짜 죽을래? 회사고 뭐고 없이 한번 죽여줘?"
나: "진정 하시구요. 그런 말씀은 사표수리 먼저 인증 하시고, 해주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회사 선배로써가 아니고
지금처럼 남자대 남자로 선을 넘어오시면.( 담배한대 물며) 넘어와봐라 씨발라마. 나도 언제 넘어오나 기다렸으니까. 넘어와봐."
대리: "야!!! 내가 그런 의미로 한말이 아니잖아!"
나: (본인 담배를 한대 건네며)" 한대 피시면서 얘기 하시죠."
대리: "그래."
그렇게 우린 오붓한 대화를 나누었고. 앞으로 좋은데 놀러갈일 있으면, 한식구인데 같이좀 움직이자는 말을 듣게 되었음.
그렇게 PLC 대리가 넘어오니, 자연스레 권력을 따르는 무리들이 중립선언을 하기 시작했음.
결국 제조팀에 남은건 꾀돌이 대리와, PM만 남게 되었음. 당연히 밖에서 놀때는 본인과 함께해야 재밌으므로, 항상 퇴근때는
본인을 기다리는 대리들이 생겼음.
그리고 남은 2달동안 본인과 타협한 대리들은 고생하는 와중에도 정말 재미지게 중국출장을 마쳤고.
PM과 꾀돌이 대리는 더이상 본인과 적대할 상황을 만들지 않았음.
당시 동관과 천진에 같은 프로젝트가 동시 진행 되었는데, 검사기로 인해 항상 두드려맞는 천진과는 다르게
동관은 항상 조용했고, 검사기로 인해 사장님까지 천진으로 출동해서 사과를 할만큼 큰 문제점이 터져도 이상하게 동관쪽 검사기는
아무런 컴플레인이 없었음. 그리고 천진보다 빠르게 잔금을 받아낸 PM은 승진을 했음.
그렇게 소프트웨어를 무시하던 당시 제조팀은 우리 팀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었고, 업무에도 협조적으로 태도를 달리하게 되었음.
그 변화를 회장님이 아시고, 본인에게 용돈도 챙겨주시고, 밥도 많이 사주셨음. 회사를 사표내던 그 순간에도
다른 좋은 회사를 하나 소개시켜 주겠노라고, 멀리가지 말라고 부탁을 하셨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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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무리를 급하게 지어봅니다. 좀 끝에는 허술하지요. 사표내기까지 과정을 쓰자면 1달잡고 글써야 해서.. 서둘러 끝냅니다. ㅎㅎ
당시 연봉이 2700 이었는데 1년 동안 2300을 모았습니다. 그 돈으로 1000만원 쪼개서 1년동안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체계적으로 다시 중국어를 공부할 목적도 있었고, 제가 매력을 느끼던 중국이란 나라를 각지방 구경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어딜가나 종이 한장 차이로 위험을 모면한 순간이 있었고, 배드민턴을 같이 치던 아저씨가 공안대장 이던가.
난통 조폐국 국장님 식사에 초대되서 밥도 먹고. 특수경찰 아저씨들한테 옷도 팔아보고, 상해에서 오뎅도 팔아보고. 동관 누님도와서
화장품도 팔아보고.. 1년동안 자알 놀고 다시 취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방향을 잃지않고 끝까지 지켜봐주신 유저분들께 정말 감사함을 느낍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