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장려상을 탄 뒤, 방송 관련 수상까지 무려 12년이 걸렸다. 개그맨이 됐지만, 방송과는 큰 인연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이제는 이 사람을 빼놓고 방송을 논할 수가 없게 됐다. 이쯤 되면 네티즌들은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지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 ‘국민
MC’ 유재석 이야기다.
유재석이
MC계의 최고봉에 올랐지만, 막상 그가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2000년대 초반의 이야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가
MC로서 두각을 나타낸 ‘목표달성 토요일-동거동락’ 때의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도 물론이다. 그래서 당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인물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현재
MBC 예능본부 예능2국 기획제작2부장으로 재직 중인 전진수
CP다.
전
CP는 ‘목표달성 토요일’ 초기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그는 유재석과 만났던 때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PD 초창기 시절 전
CP는 유재석과 손을 맞잡고, ‘동거동락’을 일궈냈다. 특히 전
CP는 현재 ‘무한도전’을 담당하고 있다. 유재석과의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 “유재석, MBC에 아주 새로운 인물이었다”
유재석은 현재 ‘무한도전(MBC)’ ‘해피투게더3’ ‘나는 남자다(이상 KBS 2TV)’ ‘일요일이 좋다-런닝맨(SBS)’ 등 지상파의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국민 MC’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유재석이 처음부터 ‘잘 나가는’ MC는 아니었다. 앞서 말한 대로 그는 대학개그제 ‘장려상’ 수상으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방송에서 비중 있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유재석도 이미 9년여에 걸친 자신의 무명시절을 언급한 바 있다.
유재석을 대중에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2000년 MBC에서 방송됐던 ‘목표달성 토요일’이다. 당시 유재석은 해당 프로그램의 ‘동거동락’ 코너 진행을 맡았으며, 진행능력을 인정받아 타 방송사로 발을 넓혔고, 그 결과 현재의 ‘국민 MC’로 우뚝 섰다.
네티즌들이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유재석이 MBC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알린 코너는 사실 ‘동거동락’이 아니었다. 그는 ‘동거동락’에 앞서 ‘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코너로 전파를 탔던 ‘유·양의 스타챔피언’ MC로 MBC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유재석과 호흡을 맞춘 파트너는 ‘버거소녀’로 유명했던 양미라다.
전 CP는 유재석이 MBC에 왔던 때를 회상했다. 그는 “2000년 초반, MBC의 토요일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며 “새롭고 과감한 움직임이 필요한 그때, KBS에서 좋은 진행능력을 선보인 유재석을 MC로 발탁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재석은 MBC에게 새로운 인물이었다”며 “그의 진행능력 가능성을 보고 데려온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MBC에 오기 전, 유재석이 진행했던 KBS 2TV 프로그램은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이다.
◆ “유재석 첫인상? 굉장히 수줍어해 걱정까지 했다”
전 CP가 떠올린 유재석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샤이가이(Shy guy)’였다.
전 CP는 “처음 만났을 때 유재석은 굉장히 수줍어하던 사람이었다”며 “보자마자 들이대고 친해지는 사람, 시간이 지나면서 친해지는 사람으로 모든 이를 나눈다면 유재석은 후자”라고 설명했다.
뒤늦게 말하지만, 전 CP는 유재석을 만난 뒤 걱정에 휩싸였다. 방송 진행을 맡겨야 하는데, 수줍음 타는 유재석의 모습은 ‘정말 진행을 시켜도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크를 든 유재석의 모습은 180도 달랐다. 전 CP는 “방송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며 “자신이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이 어떤 내용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는 ‘통찰력’이 있었다”고 웃었다.
전 CP는 “녹화 전에는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렵다”며 “그런데 유재석은 그걸 해냈다”고 말했다. 평소 겁쟁이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지만, 운전석에만 앉으면 달라지던 유재석의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방석퀴즈’ 보기 애드리브, 유재석이 즉석에서 만든 아이디어”
MBC ‘목표달성 토요일-동거동락’을 즐겨본 시청자라면 ‘방석퀴즈’를 기억할 것이다.
출연진을 두 팀으로 나누고, 각 팀 멤버가 한 명씩 나와 방석을 깔고 앉은 뒤, 펼친 퀴즈대결이다. 특히, ‘방석퀴즈’는 지난 2011년 8월, ‘무한도전-우천취소 특집’에서도 등장해 오랜 시청자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고, 그 당시를 모르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방석퀴즈’ 진행 당시 유재석이 보기 개수를 4개가 아닌 8~9개로 늘리거나, 해당 보기에 반전을 준 게 즉석에서 튀어나온 그만의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전 CP는 “출연자들이 문제를 쉽게 맞히니 방송 재미가 떨어졌다”며 “그때 유재석이 보기를 갖고 애드리브를 펼쳤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무한도전-우천취소 특집'에서 유재석은 출연진에게 “MBC 어린이 프로그램 이름은?”을 질문으로 던졌다. 그렇다면 답은 ‘뽀뽀뽀’다.
유재석은 이를 ‘뽀뽀뽀 친구’ ‘뽀뽀뽀 뽀뽀뽀~’ ‘뽀뽀로뽀뽀 뽀뽀’ 등으로 바꿨다. 순간적인 재치가 빛난 부분이다.
전 CP는 “제작진이 어떻게 그런 걸 예상했겠느냐”며 “이후에도 비슷한 방식을 계속 사용하면서 ‘방석퀴즈’가 인기를 좀 얻었다”고 웃었다. 좋게 말하면 유재석의 재치가 프로그램 하나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
◆ “유재석, 여전히 보여줄 게 더 많은 사람”
유재석과 전 CP는 ‘동거동락’ 이후 ‘무한도전’에서 14년 만에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전 CP는 PD 초기 시절, 그리고 현재 CP 초년병으로서 유재석과 함께라는 인연의 끈에 묶여 있다.
전 CP가 본 유재석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유재석과 같이 방송하고 싶어한다”며 “출연자들을 빛나게 해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재석은 예능에 처음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쉬는 시간 내내 그 사람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주거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재밌을 것 같다’ 등의 조언을 건넨다”고 덧붙였다.
전 CP는 “가끔 유재석의 진행을 보면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며 “출연자의 캐릭터를 짚어 별명을 짓는 능력,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포장해주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웃었다.
이미 많은 이들은 유재석의 진행능력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를 좋아한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듣는 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전 CP가 본 유재석이 대중의 사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CP는 “아무리 잘 나가도 한순간에 꺾일 수 있는 게 연예계”라며 “유재석은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도 신중하고, 말할 때도 신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도 신중하니 지금까지 롱런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유재석은 처음 만났을 당시 ‘잘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품게 한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전 CP는 유재석이 ‘더 보여줄 게 많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재석을 처음 만난 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앞으로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유재석을 볼 때마다 항상 (생각은) 똑같다”고 말했다.
논외로 ‘무한도전’의 지속성에 대해 물어봤다. ‘무한도전’은 과연 언제까지 방송될 수 있을까.
전 CP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제는 ‘언제까지’ 라는 것 자체를 논하는 게 의미 없는 프로그램이 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이 좋다고 해주시는 동안에는 계속 할 것”이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