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왔다.
집근처 버스장 세 정거장 위치에 한 백○사우나.
지하 2층에 위치.
이 추운날 걸어서 갔다.
몸이 약간 으슬으슬했다.
목욕탕에 도착하고
....훌렁훌렁
'드르륵'
아...따듯한 수증기가 내 몸을 감싼다.
42도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구니
언몸이 노곤노곤해지면서
눈이 스르르 풀리고
정신이 살짝 탈영을 시도함과 동시에
몸이 축 처지는것같았고
에흐휴휴휴...라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레알 행복했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인지 더 좋았다.
....
근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평화로운 목욕탕마을에
드래곤이 쳐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등에 용을 새긴
음...덩치는 강호동보다 크고
흔히 아는 깍두기머리...
등에 걸쳐 양 어깨까지 있는 문신...
구리빛 피부에 금목걸이...
문을 열고 들어올때
어허이~하는 기합
딱봐도 형님이시다.
깍두기형님.
아나 레알 조..조.,,,조정훈선수됐네.
탈영했던 정신이 돌아와 각잡고 뇌에 자리앉았고
흐느적거렸던 몸에는 언제든 도망갈준비가 되어있었고
풀렸던 눈에는
"저는 착한학생입니다.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 깍두기 형님 거 참...
탕 자리도 넓은데 내 옆으로 오시더라.
...후로게이같은새끼
아...왜 하필옆이냐고...
눈치보여서 바로 나갈수도없잖아...
오랜만에 때좀밀어볼라카는데 그냥 나가야겠네...
아...시발 조..조할인.....
이러고 있는지 한 2분이 흘렀을까.
...이건 악몽이야...
문쪽에서...
어~~~~ 하는 기합...
아 ㅜㅜ
이건아니잖아...
시발 여긴 깍두기들의 성지 김치공장이냐.
왠 깍두기가 또 왔어.
아나 지금 내가 몸담구고있는 이곳은
목욕탕이 아니라
깍두기 국물을 넣은 고깃국이 되게 생겼다고.
게다가 더 무서운게 뭔지알아?
아까 그새끼는 그래도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약간 뭐랄까...푸근하게 생겼단말이야.
TV에서 자주 접해서 되게 친근했단 말이야.
근데 이번에 온새끼는
진짜 눈에 살기가 가득해.
내 반대편에 앉아서 눈을 봤다고.
분명 사람몇명 죽였어. 내가알아.
내가 예전에 살던 마장동에 있던
축산업자 아저씨들.
맨날 돼지잡고 소잡고 피에 쩔은
그런 아저씨들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고.
단 이 깍두기는 소돼지가 아니라 사람을 잡았겠지.
더 무서운건 뭔지알아?
알리가 없겠구나..
그 깍두기도 등에 문신이 있었단말이야?
용이 똬리를 틀고 있더라고. 똥처럼.
근데...거기에 칼자국이...
수술자국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크고 긴
딱봐도 사시미칼로 대충 허공 휭~휘두르면
딱 저정도 상처가 생길거 같은 상처...
그것도 45도 각도로 오른쪽위를 향하는거 하나.
그냥 가로로 하나.
약간 짧은 대각선 줄 하나.
이렇게 3개의 상처가 나에게 속삭였지.
"이제 너에게도 나와 같은 상처가 새겨질지도 몰라"
아...시발 더블조정훈...
이제 난 이 탕에서 설렁탕의 재료가 되는건가...
아..엄마가 공장와서 일좀 도와달라 할때 갈껄...
내가 여기 왜 온거지...나쁜 도비...(?)
이런생각을 하며 탕에 한 5분쯤 있었을때
...난 봤다.
이상하게 안이 조용하다 했는데
나뺴고 다 나갔더라.
분명 저쪽에 아저씨 이태리타올로 팔밀고 있었거든?
그것도 오른손에 끼고 왼손밀던걸로 봐서
방금 메밀국수를 생산하고있었단 말이야.
아니 근데 타올도 두고 그냥 나갔어.
에이 설마 나 혼자겠어?
하며 봤더니 때밀이도없어 시발.
직업정신도없는새끼 난 어쩌라고.
오직 나와 두 조각의 깍두기들만 있었어.
그렇게 둘러보다가 내 앞에 있는 그 분
주먹싸움보다 더 깊은 어둠의 세계에서
칼을 가지고 노셨을것같던 그분의 시선은
내쪽을 향하고 있었어.
뭐...뭐지...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날 보고있었던게 아니였어.
...그래 내 옆에 깍두기를 쳐다보고 있었던거야.
그래서 난 뭔가 해서 내 옆에 깍두기를 봤단말야?
(지금 생각하는거지만 존나 개념없는 행동이였음
눈마주쳤으면 어떡할려고시밤소름돋네)
아...그새끼도 앞에 칼잡이같은분을 내려보고있는거야.
눈싸움중이였던거지.
...아 진짜 내가 몸담그고있는 이 따끈따끈 42도
신경통과 류머티즘에 좋다는 이 탕이
이제 곧 시뻘건 선지가 떠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대한 물이 튀지않게..
천천히 나갔어.
그래 난 공기다...
지금 난 나가는게 아니야. 공기와 하나가 되는거야.
지금 저분들은 날 인식하지못해...
...근데 너무 탕에 오래있어서였을까.
나가자마자 어지럽더라고.
시계를 봤는데 내가 어느새 20분이나 있었던거야.
안경도 안쓰고 있었고.
쓰러질꺼같아서 옆에 기둥을 잡는다는게 그만
기둥을 손바닥으로 팡! 치고 말았어.
....................니미조정훈.
(조정훈선수와 아무감정없습니다.)
혹시 뒤에서 이새끼들 칼들고있는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뒤를 돌아봤더니
아 시발 지금생각해도 소름돋네
그 둘이 눈싸움을 중단하고 날 쳐다보더라.
그것도 고개만 돌려서 인상이 더 구겨진채로
바로 고개돌리고 빠른걸음으로 나갔지.
몸에 비누칠따위도 못했다.
기껏 사놓은 댕기머리 일회용샴푸도 못썼어.
근데 나 나갈때 분명 들었다.
누가 말한건지 모르겠지만
"아..씨발 요즘 문신은 개나소나 다하네"
...소름이 쫙 돋으면서 으익...
와나....빨리 나오길 잘했다...
3분만 늦었어도 난 저 사이에서...오메
내일 뉴스에 이곳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그저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였어.
수건으로 제대로 닦지도 못했어.
난 그저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였으니까.
하아...그래 난 살아있어.
탕에 둥둥 피를 흘리며 떠있지 않았어도 됐고
드럼통에 장작이 타고있는 폐건물에
밧줄에 묶여 천장에 대롱대롱 그네놀이를 하지 않아도 됐고
참치원양어선이나 새우잡이배에 품앗이를 하지 않아도 되었지.
그래 . 난 살아있어.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나오는데
계산하는 아저씨가 그러더라.
다음에는 평일 2시부터 5시 사이에 오지말라고.
보통 사우나에서 조폭들 오는 시간이라고.
평일 아침시간에도 자제하라고...
...아저씨도 고생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오는데
...남탕과 여탕이 나뉘어지는 복도같은 곳에
붙어있는 표지판
"지나친 문신을 한 사람은 다른 손님들에게 불안감이나 혐오감을
조성할수 있기때문에 업소에 출입을 금합니다♡"
불안감? 혐오감?
시발 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2번정도 내 심장이 운동을 쉴뻔했다. 영원히.
병풍뒤에서 국화꽃과 향타는 내음을 맡을뻔했다.
문신출입금지라며.
근데 왜 받아.
남자들 출입시키기 전에 웃통까고 확인좀 해보라고.
아니면 저 판때기를 때던가.
뭐어쨋든 이제 모험은 끝났어.
난 이제 집으로 가려고했지.
지하 2층에서 1층으로 올라왔는데
...아버지와 7살정도로 보이는 어린아들...이
목욕탕에 가려고 그러더라고.
아...딱봐도 Lv30이랑 Lv3인데
헬게이트던전(출입가능Lv88 이상)에 들어가려하는거야.
아...내가 진짜 착해.
"자..잠깐만 거기 스탑!"
"읭?"
"목욕탕 지금 깍두기 소굴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대신
님들 더블로 입관식하는 수가 있음"
"헐 감사 님좀착함 이거드셈"
그러고 그 둘은 그냥 집으로 갔지.
...박카스D 잘먹었습니다.
그리고 걸어오는 내내
말리지도 못한 머리카락이 얼어
두피가 쪼개지는줄 알았지...
결론: 백○사우나는 조정훈선수다.
어느 사우나건 2시~5시는 피하자.
난 이제 깍두기 안먹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