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리니지2 바츠 서버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1,2차 바츠 해방전쟁의 중요한 사건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글일 뿐이며, 결코 바츠 해방전쟁에 대한 모든 사실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내 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 자료들의 링크때문에 글이 다소 산만하게 보일 지경입니다. 그러나 다소 산만할 정도의 링크를 각오하고서라도 근거를 제시함으로서 이 글을 읽는 분들 스스로에게 판단 여부를 맡기고 싶습니다. 또한, 객관적이라고 우길 생각도 없습니다. 객관적이려고 노력만 했습니다.)
0. 리니지2 이전의 DK.
좋 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리니지2라는 게임 속에서 5년에 걸친 긴 시간동안 계속되었던 바츠 해방전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역 중 하나가 DK(Dragon Knight)혈맹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리니지 뿐만 아니라 다른 온라인 게임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DK혈맹의 단결력은 어느 한 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DK혈맹의 기원은 리니지1 시절의 데포로쥬 서버에서 시작되었다. 리니지2에서 보인 DK혈맹과 마찬가지로 리니지1의 DK혈맹 역시 데포로쥬 서버의 모든 성을 다스린 지배 혈맹의 위치에 있었으며 훗날 리니지2에서 바츠 해방전쟁의 발발 계기가 된 사냥터 통제와 같은 배타적 독점 시스템을 강행하여 서버 내 타 유저와 혈맹들에게 많은 반감을 불러일으켜 수 많은 전쟁을 치뤘다. 바츠 해방전쟁 당시에 보여줬던 특유의 단결력이 이 시기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냥터를 둘러싼 전쟁이 격화되던 시기에는 서버 내에서 반 DK의 세력 중 가장 강력한 Man of Oneway혈맹 및 그에 동조하는 구 DK혈맹을 탈퇴한 세력인 LK와 타 혈맹 연합과의 전면전(1, 2)을 치루면서도 흔들리는 일이 거의 없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었다.
온 라인 게임에서의 전쟁에서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캐릭터 간의 레벨이나 무기의 성능도 한 몫을 하지만 현실 세계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한 전투에 동원될 수 있는 인원(캐릭터)의 숫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의 전쟁과 달리 물리적으로 참여를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게임 상의 전쟁에서는 평소 혈맹원들과의 끈끈한 관계의 유지나, 오프라인 모임 등을 통해 단결이나 유대감을 강화하여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이런 온라인 게임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을 DK혈맹은 이미 리니지1 시절의 오랜 전쟁을 통해서 이미 어느 정도 구축해놓고 있었다. 그것이 리니지2의 시작과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DK 혈맹이 전투 혈맹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데포로 쥬 서버의 모든 성과 사냥터의 정복에 성공한 DK혈맹의 장기 독재가 심화되고 그에 따른 유저들의 불만과 당시 온라인 게임 상에서 일어나는 PK(Player Kill) 행위에 대한 문제 의식의 대두로 인하여 개발사인 NC소프트의 무형의 제제가 가해지자 당시 DK혈맹을 이끌던 수뇌부들이 대거 리니지를 떠나 막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개시된 리니지2로 자리를 옮겨 다시 한 번 DK혈맹을 창설하게 된다.
1. 클로즈 베타 서비스.
리니지1에서 압도적인 세력을 과시하던 DK 혈맹이었지만 막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시작된 리니지2에서는 다른 혈맹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리니지1에서 막 넘어온 DK혈맹은 엘프 케릭터를 선택하여 엘프 마을을 본거지로 세력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했는데, 클로즈 베타 서비스 당시에는 다른 종족의 캐릭터가 타 종족의 마을이나, 대륙으로 넘어가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웠기 때문에 똑같은 마을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플레이하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대부분의 DK혈맹원들이 엘프 마을에서 세력을 키웠기 때문에 인간 종족의 본거지인 '말하는 섬'에서 성장하여 클로즈 배타 서비스 내내 DK혈맹과 전쟁을 치르게 되는 LOK(Legend Of Knight)혈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했고 이는 이후 '최초의 3레벨 혈맹 달성'의 위업을 LOK혈맹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거 의 대등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DK혈맹과 LOK혈맹 양측 간의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LOK혈맹이 최초로 3레벨 혈맹을 달성한 일이 DK혈맹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런 와중에 얼마 지나지도 않아 DK혈맹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리니지2를 플레이하던 유저들이 많이 모여있던 플레이포럼 사이트의 메인 뉴스로 DK혈맹이 최초로 잡은 여왕 개미를 LOK혈맹이 최초로 잡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기사가 올라온 것이다. 더구나 그 뉴스를 작성한 기자가 LOK혈맹 소속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이 사건을 계기로 DK혈맹은 LOK혈맹과 전쟁에 돌입했다.
그 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DK혈맹과 LOK혈맹의 기싸움이 왜곡된 기사로 인하여 폭팔한 싸움으로 비춰졌지만 실상은 DK혈맹과 LOK혈맹 간에 여왕 개미가 트롭하는 (당시 기준으로) 양질의 아이템을 독점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으며(1, 2, 3) 결국 이 전쟁 이후 타 혈맹원들이 여왕 개미를 잡기 위해서는 LOK나 DK혈맹 양측의 양해를 구해야 했기에 LOK혈맹과 DK혈맹의 강력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다.
결국 여왕 개미를 둘러싼 통양측의 전쟁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는 일반 유저들의 항의가 게임 뿐만 아니라 플레이포럼 게시판을 가득 채우자 얼마 있지 않아 DK혈맹 측에서는 전쟁 종료와 일반 유저를 대상으로 한 사과문을 올려 일을 마무리지었으나, 사과문이 무색하게도 며칠 후 엘프 던전에서 DK혈맹원과 유저간의 사냥터 자리로 인한 싸움이 벌어졌다. DK혈맹의 군주인 산하는 자초지종을 확인한 후 사과 및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밝혔으나 얼마 전에 있었던 여왕 개미로 인해 벌어진 LOK혈맹과의 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나빠진 DK혈맹의 이미지와 일반 유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반론으로 인해 유저들은 공공연히 DK혈맹과 군주인 산하를 비난한다. (1, 2, 3) 산하는 이 일이 있은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리니지2를 그만두게 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그 후, DK혈맹과 그 휘하의 여러 혈맹들은 공성전 시스템의 등장 후 첫번째로 선보인 글루디오 성의 공성을 성공시켰으며(최초 각인은 DK와 동맹을 맺은 혈맹인 제네시스 혈맹에서 성공) 또한 클로즈 베타에서 등장한 마지막 보스 몬스터인 '코어'를 최초로 쓰러트려 클로즈 베타 서비스 내에서 최강의 혈맹이라는 것을 모든 유저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라이벌 혈맹인 LOK역시 DK혈맹과 함께 연합하여 글루디오 공성전에 참전하거나 DK연합 측에서 100명 이상이 동원되어 힘겹게 쓰러트린 코어를 단지 23명으로 쓰러트려 DK연합 못지 않은 세력을 과시했다. 어느 한 쪽이 한 쪽이 게임 내에서 업적을 이루어내면 다른 한 쪽이 곧바로 따라잡는 식의 기싸움이 계속되었다.
클 로즈 베타 서비스가 시작될 당시부터 라이벌인 DK연합과 LOK혈맹 양측 모두 상대방을 먼저 거꾸러트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건 자신들 쪽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임의 이상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인 클로즈 베타 서비스의 특성상 게임 시스템은 저레벨에 맞춰져 있으며 고레벨이 된 유저를 위한 사냥터가 용의 계곡과 크루마 탑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레벨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을 완전히 쓰러트리는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중 크루마 탑은 좁은 통로를 통해 몬스터가 나오는 방들이 이어진 형태였기 때문에 어느 한 혈맹이 몬스터가 나오는 방을 차지하고 무한히 눌러앉아 같은 혈맹원과 방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권한을 번갈아 넘겨받으면 거의 무한정 사냥이 가능한 형태였는데 DK연합과 LOK연합 간의 크루마 탑을 둘러싼 전면전 역시 이 방의 사냥 권한을 차지하기 위한 세력 다툼이었다. 처음에는 DK혈맹과 LOK혈맹이 아닌 두 혈맹의 동맹 혈의 다툼 싸움에서 시작되었으나(1, 2) 양측의 싸움은 곧 DK연합과 LOK연합의 전면전 형태로 커져나갔다. 초기에는 크루마 탑의 지리적 특징을 이용하여 입구를 틀어막고 좁은 길을 통해서 진격하는 DK연합군들을 하나씩 사살하는 LOK연합이 우세하였으나 DK혈맹도 곧 탑 입구를 봉쇄한 체 장기전을 펼쳤고, 탑을 둘러싼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양측 모두 게시판을 통한 여론 몰이에 집중했다.(1, 2, 3) 그러나 DK연합은 LOK연합 혈원들이 대부분이 잠든 새벽 시간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크루마 탑으로 진격해 들어가 경비를 서고 있던 소수의 LOK혈원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탑을 점거하는데 성공한다.
이 전쟁 이후 기세가 한 풀 꺾인 LOK혈맹은 산발적인 개릴라 활동을 펼치며 저항하였으나 이미 기세가 오른 DK혈맹을 저지하진 못했고, 두 혈맹 간의 전쟁으로 인해 군소 혈맹이나 일반 유저만이 이 두 혈맹의 싸움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1, 2, 3) 그 후 LOK혈맹은 동맹을 재정비하여 6월 들어 패치된 혈맹 간의 공성전에서 중립 혈맹과 DK연합의 견제를 뿌리치고 첫번째로 글루디오 성을 차지하는데 성공하였지만, 두번째 공성전에는 성을 차지하려는 DK혈맹에게 패배하여 성을 다시 내주고야 만다. 이 글루디오 공성전의 승리는 사실상 클로즈 베타 내내 계속되어 온 LOK와 DK혈맹 간의 세력 다툼에서 DK가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을 의미하며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종료된 이후 LOK혈맹은 1서버인 바츠 서버를 선택한 DK혈맹과 다른 2서버 지그하르트를 선택해 DK혈맹과의 교전을 피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후 LOK혈맹은 2서버에서 최강의 전투 혈맹이 되었다.)
클 로즈 베타 서비스부터 DK혈맹은 리니지1에서 조직된 단결력을 바탕으로 위협적인 LOK혈맹과 끈질긴 싸움 끝에 클로즈 베타 서비스에서 유일무이한 최강의 혈맹을 완성시켰으며 클로즈 베타에서 이미 만들어진 리니지2의 경험과 조직된 혈맹 체계로 오픈 배타에서도 사실상 최강의 혈맹의 자리를 예약받은 것과 마찬가지었다. 또한 오픈 배타에서 견제 세력이 될 수 있었던 LOK혈맹마저 DK혈맹과의 교전을 피해 타 서버를 선택함으로서 바츠 서버를 선택한 DK연합 혈맹의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었다. 훗날 보여준 DK혈맹의 폭압적인 정치는 이미 클로즈 베타 서비스가 종료됨과 동시에 예견되었던 것이다.
2. DK 독재 시대.
2003 년 7월 6일. 리니지2의 오픈 베타 서비스가 6개의 서버로 시작되었다. 클로즈 베타 서비스에서 최강의 혈맹으로 자리를 잡은 DK연합은 일부 동맹 혈맹을 제외하고는 오픈 베타와 동시에 1서버를 선택하였는데, 온라인 게임에서 1서버는 가장 많은 유저들이 몰리는 서버이며, 그만큼 게임상의 아이템을 현금화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DK혈맹의 노골적인 사냥터 통제와, 통제에 반대하는 수많은 혈맹들과의 싸움은 바로 이런 현실적인 이익이 되는 아데나(리니지 게임상의 통화)와 아이템들의 독점을 위한 행위에서 비롯된다. 당시에는 아이템의 현금 거래에 대한 인식이나 법안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시절이었으며(현재는 직업적 작업장을 제외한 일반 유저의 아이템 현금 거래는 법적으로 인정된 상태다.) 특히나 아이템 현금 거래라는 시스템을 최초로 확립시켰던 리니지1의 후속작이었기 때문에 신규 유저가 가장 많이 몰리는 바츠 서버의 사냥터를 장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 지만 하나의 캐릭터나 혹은 어떤 혈맹의 힘만으로 하나의 서버를 완전히 장악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클로즈 베타 시절에도 그랬듯 DK혈맹과 같은 강력한 혈맹의 대두는 필연적으로 LOK혈맹과 같은 막강한 견제 세력을 불러오게 된다. 그렇기에 DK혈맹은 게임 초기부터 클로즈 베타 시절부터 이름을 떨친 혈맹원들의 빠른 레벨업을 독려하며, 게임 초반의 우위를 영구적으로 확립시키기 위해 강력한 혈맹과의 공조를 통해 게임 초기부터 바츠 서버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한 시도를 계획한다. DK혈맹에 의해 포섭된 혈맹은 클로즈 베타 서비스 시절부터 공조를 이어온 제네시스 혈맹과 신의기사단 혈맹이었다.
클로즈 베타 서비스부터 있었던 DK연합의 사냥터 통제가 오픈 베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자(1,2,3) 바츠 서버에 존재하던 군소 중립 혈맹이나 일반 유저들은 산발적으로 저항하였으며(일부 유저들이 DS혈맹을 창설하여 대항하기도 했다), 개인 유저들이나 군소 혈맹들은 영웅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클로즈 베타 서비스부터 구축된 강력한 DK연합에게 대적하는 것은 중과 부적이었다. 다만 이 싸움이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전쟁을 통해 뭉쳤던 일부 인원들과 DK혈맹 측의 아키러스 고문(당시)와의 다툼으로 인해 혈맹을 탈퇴한 인물들이 모여 훗날 1,2차 바츠 해방전 동안 DK연합과 맞서 싸우는 구심적 역활을 하게 되는 '붉은 혁명'이라는 혈맹을 창설하는 기반을 닦게 된다.
몇 번의 싸움 끝에 작은 혈맹이나 개개인의 힘으로는 DK연합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유저들은 이때부터 DK연합을 견제할 수 있는 연합 세력을 구축하자는 제안(1,2,3)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 유저들은 DK연합에 대해 눈쌀을 찌푸리긴 했지만 서비스 초기의 저레벨 유저가 대부분인 상태인 바츠 서버의 유저들에게 크루마 탑과 용의 계곡 분쟁은 채감하기 힘든 횡포였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정작 중립 혈맹이 본격적으로 연합 세력을 이루게 된 계기는 DK혈맹이 운영한 일명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의 운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분조위라는 명칭과는 달리 사실 이들이 하는 일은 DK연합과 타 혈맹간에 다툼이 일어날 경우 상대편 혈맹의 캐릭터를 일방적으로 살해하는 DK의 무력 전담반이었다. 리니지2의 게임 시스템 상 일반 플레이어가 타 플레이어를 공격할 점점 카오 성향이 올라가면서 게임상의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이들은 애초에 그런 불이익을 감수한 체 DK연합에 반항하는 세력을 없애는 역활을 전담하도록 계획적으로 조직한 집단이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혈맹 간의 전쟁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반 유저를 무차별 학살하는 등 그 만행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2,3,4) 이들의 횡포는 일명 장학 퀴즈 사건으로 특히 유명하며 (게임상의 중립 유저에게 접근해 일방적으로 문제를 내고 대답하지 못하면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작업장에서 아데나를 버는 중국인 유저'이라고 몰아붙여 죽이는 행위) 이동 속도가 느린 드워프 여성 캐릭터에게 "10초의 시간을 줄테니 도망가라"는 식으로 조롱하며 쫓아가 죽이는 등. 일반적인 유저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행위를 일삼고 다니는 이 분조위는 바츠 서버에서 DK가 벌이는 횡포의 대명사이자 일반 유저들이 DK연합을 적대시 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04년 1월 하순 경 클로즈 베타 서비스 당시의 LOK연합 이래 최초로 DK연합에 맞서 싸우는 거대 연합인 '올포원(All for one)'이라는 연합 혈맹이 창설된다. DK연합과 전쟁을 벌이다 패배한 드림 혈맹, DS혈맹을 비롯한 인원이 참여한 올포원의 창설에 타 서버의 게이머들에게서까지 격려가 밀려오는 등 일반 유저들의 환호를 받았으며(1,2,3,4) 훗날 바츠 대전쟁에서 실질적 전력은 물론 바츠 연합군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바츠 해방전의 상징이 되는 '내복단'의 전신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최초로 생겨나기 시작했다.(1,2,3,4,5,6) 유저들의 지지를 얻은 올포원은 그 기세를 등에 업은 체 DK동맹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이 완전히 점거한 용의 던전에 진격해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러나 혈맹이 창설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올포원 혈맹이 맞서 싸우기에는 DK연합의 위력은 너무나 막강했다. 더군다나 아직 올포원이나 DK연합 중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은 체 중립을 고수하는 혈맹도 많았으며 후에 1차 바츠 대전쟁 당시 연합의 중요 세력으로 떠오르게 되는 Harry Potter(해리 포터)혈맹도 이 당시에는 고집스러울 정도의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중립의 행위에 반발하는 유저들도 많았으나(1,2) 한 번의 전쟁 패배가 곧 서버 이전, 혹은 혈맹 해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리니지2. 그리고 바츠 서버의 현실상 중립을 지키며 사태를 관망하는 중립 혈맹의 행동을 비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시종 불리한 와중에도 버티고 있던 올포원 동맹이었지만 때를 맞춰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올포원 총군주인 '귀존'이 혈맹레벨을 5로 올리기 위해 게임상에서 데이터를 작성하다 실수로 혈맹을 해산시켜버린 것이다. 놀란 귀존은 즉각 GM(운영자)에게 문의하여 수정을 요청하였으나 GM은 그 요청을 거부하였고 (워 낙 어이가 없는 사고라 DK측에서도 GM에게 복구 요청을 했다는 일화가 있으나 당사자의 글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로서 리니지2 오픈 베타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공성전에서 성을 확보해 DK연합을 억제하려던 올포원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야 말았다. 올포원 혈맹이 사라진 DK혈맹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그동안 암묵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해오던 정과 위너스 혈맹을 DK연합에 가입시켜 총 5개 혈맹이 뭉친 거대 연합으로 거듭났으며 결국 공성전이 시작된 2월 15일. DK연합은 왕성인 아덴성을 제외한 모든 성의 공략에 성공한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리니지2의 왕성인 아덴성만은 붉은 혁명을 주축으로 하는 바츠 동맹군이 결사적으로 DK연합의 공성을 저지하여 리니지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성이 모두 DK연합에 넘어가는 일만큼은 간신히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최초의 반 DK연합이었던 올포원 혈맹이 사라진 후 바츠에는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1,2,3) DK에 대항한 혈맹은 무자비한 보복을 받았다. 실제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많은 유저들이 1서버를 이탈하여 타 서버로 이전을 하곤 했는데(1,2,3,4) 그런 암울한 시기에도 단 하나의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과거 연합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일반 유저 및 중립 혈맹, 그리고 아키러스의 방침에 반발해 DK에서 탈퇴한 인원들. 마지막으로 위너스 혈맹이 DK연합에 들어갈 당시 그에 반발해 이탈한 인원들이 주 축이 되어 만들어진 붉은 혁명과, 올포원 시절부터 계속해서 DK혈맹에 저항해 온 리벤지스 혈맹의 놀라운 분투였다. 연합을 구성하지 못한 체 고립되어 절망적인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붉은 혁명과 리벤지스의 분투는 DK혈맹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DK의 악명 높은 무력 집단인 "분조위" 파티와 교전하여 그들을 전멸시켜버리거나 DK가 완전히 장악한 용의 계곡의 깊숙한 곳까지 몰래 침투하여 게릴라를 펼치기도 한 (1) 붉은 혁명의 싸움은 DK연합의 일원조차 경탄을 내지를 정도였다. 그런 인상적인 분투로 인하여 그들은 DK연합의 압제에 신음하던 바츠 서버 유저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는데(1,2,3,4,5), 그 런 성과의 뒷편에는 카오 상태를 불사한 체 싸움에 임하는 붉은 혁명의 군주 soo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캐릭터인 soo가 너무나 많은 카오 수치로 정상적인 전투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자 현금으로 타 캐릭터를 구입하여 DK연합과의 싸움에 임할 정도로 결사적이었다, 붉은 혁명, 리벤지스의 노력과 서버 이전 대신에 끝내 남아 싸우기로 선택한 소수의 혈맹으로 인해 거의 붕괴되어가던 반DK측은 겨우 명목으로나마 세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무도 상황이 호전될거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4월이 가고 5월로 접어들자 상황은 거짓말처럼 변화한다.
(이어집니다.)
참고 : '이인화 저 - 디지털 스토리텔링'
'명운화 저 - 바츠 히스토리아'
'네이버 지식인님'
'디시인사이드 리니지2 갤러리'
'플레이포럼 - (지금은 개발살나서 들어가는데 똥쭐 빠질 뻔 한) 바츠 서버 자유 게시판'
'그 외 많은 사람들'
더 읽고싶으신 분은
http://tbfldk.egloos.com/tag/%EB%B0%94%EC%B8%A0%ED%95%B4%EB%B0%A9%EC%A0%84 이런게 8장이나 있어요 ㅡ.ㅡ;;
게임 내용이 아니라 무슨 판타지 소설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