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해군 최고의 공순이 명석 센세.
일본 해군의 군수 지원함 아카시 입니다.
1939년 7월 31일에 연합함대(일본 해군)에 인수된 배로 2차 대전중 일본 해군이 운용한 두척의 공작함중 하나 입니다.
다른 한척은 왠지 맛있어 보이는 이름의 아사히.(적고 나니 한잔 마시고 싶군요.^_^;;;)
아카시는 일본 해군이 운용한 군수지원함중 하나로서 일본 해군식 분류로는 공작함으로 분류 되었습니다.
공작함이란 함대의 수리등을 해상에서 지원할수 있도록 한 일종의 움직이는 공장인데, 그에 걸맞게 아카시의 내부에는 기계 공장, 조립 공장, 담금질 공장, 주조 공장, 광물 제련 공장, 제련 공장, 강 공장, 용접 공장, 목공 공장, 병기 공장, 전기 공장, 공구실, 청사진실등이 자리잡고 있었고, 기술자 336명이 114대의 기계를 운용하고 있었고(이중에는 군무원격인 군속이나 심지어 민간인 기술자들도 다수 탑승해 있었습니다.) 114기의 공작기계중 상당한 숫자 혹은 전량을 독일에서 수입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작함의 특성상 갑판에는 총 3기의 중(重)기중기가 배치되었고 디젤기관을 탑재한 2개의 연돌중 전방 연돌이 공작 공장용 연돌이었습니다.
이 아카시의 능력은 말 그대로 대단한 수준이라 평시 연합함대 연간 공수의 40%를 단함으로 소화 해 낼수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개전 이후 남방작전에 투입된 아카시는 전방으로 진출하여 팔라우 제도, 필리핀의 다바오, 술라웨시 섬의 스탈링 만, 몰루카 제도의 암본 항 등 남방 각지를 돌아다니며 많은 함정들을 수리 했습니다.
1942년 8월 23일부터는 트럭 섬에 입항해 이를 거점으로 손상선박의 수리임무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만 그해 11월 13일 과달카날 해전에서 생존하여 귀환 하였지만 20노트로 속도가 줄어들고, 함포가 회전하지 않고, 키를 수동으로 움직여야 하며, 직경 1미터가 넘는 구멍이 32개나 뚫리고, 40개 이상의 파편 자국이 난 처참한 상황에 함장이 직접 자신의 배를 '떠다니는 고철'이라고 자조적으로 말 할정도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카게로급 구축함 아마츠카제를 일본으로 돌아갈수 있도록 수리 하기도 했습니다.
경순양함 빠가노아가노는 1943년 11월 11일에 빼빼로공습을 받고 다음 날 잠수함에 의해 함미를 공격 당해 4개의 추진축 가운데 2개를 상실했고, 굴뚝과 함교 사이에 큰 구멍이 생기고, 보일러 실도 침수, 기타 손상 다수로 함의 포기도 고려할 상황이었습니다만 아카시의 무안단물수리를 받은 뒤 14노트로 항행 할수 있을 정도로 복구가 진행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뛰어난 수리 능력 덕에 아카시는 미 해군의 1순위 공격 목표였고, 1944년 2월 17일, 미군 기동부대의 트럭 섬 공습에 의해 아카시도 큰 손상을 입었지만, 트럭 섬에서 탈출에 성공해서 팔라우로 회항했습니다.
하지만 1944년 3월 30일에 다시 미군 항공기의 공격을 받아 대파되어 좌초 및 착저상태가 되어 모든 기능을 잃어버리며 자신의 전쟁을 끝냈습니다.
아카시의 이탈은 일본 해군에게는 그야말로 뼈아픈 한방이었는데, 아카시가 이탈함으로서 최전선에서 응급 수리를 통해 기능할수 있었던 배들이 일본 본토로 돌아가서 수리를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면서 일선에 혼파망이 펼쳐진겁니다.
1944년 5월 10일 해군함적에서 제적된 아카시는 현지에서 침몰한 상태로 방치되었다가 1954년에 해체처분되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자매함인 미하라와 모모토라가 건조될 예정이었지만 전황 악화로 백지화 되었으며 아카시는 일본 해군 공작함의 정점으로서 혹사당할수 밖에 없었지요.
전후에는 뜬금없이 쿠마급 경순양함 3번함이자 중뇌장순양함이었던 키타카미와 세계 최초의 정규 항공모함(즉 설계 당시부터 항공모함으로 계획되어 건조된 배.)로 유명한 항공모함 호쇼가 공작함으로 개장 되었습니다만 별거 없이 해외의 일본인들을 본국으로 실어 나르는 수송선 임무만 하다 스크랩 처리 되었습니다.
이렇듯 아카시는 일본제 답지 않게(...) 매우 쓸모있고 우수한 배 였습니다만...문제가 있긴 있었습니다.
바로 제대로 된 공작함이 아카시 정도였다는거.(...)
당시 세계 해군력 1, 2위를 커버하던 미국과 영국이 자국의 대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공작용 군수지원함을 10척씩 찍어내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뒤를 잇는 3위의 해군력을 보유한 일본은 제대로 된 공작함이 정말로 아카시 정도였습니다.
아사히가 있지 않냐? 라고 하실수도 있습니다만 아카시의 포인트는 독일에서 수입한 114기의 공작기계인데 아사히에는 일본제 공작 기계가 실려 있었거든요.
당시 일본의 공업 기술력은 미국, 영국, 독일 등에 비하면 상당히 후진 편이라 독일 수준의 정밀한 공작 기계를 만들 기술력이 없었습니다.
좀 다른 예로 독일 크릭스 마리네의 U보트 U-511이 기술 전수를 위해 일본 해군에 양도 되었을때, 일본의 조선공들이 너무나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U보트의 구조를 카피하질 못했다고 합니다.(...)
위에 썼듯이 아카시는 평시 연합 함대 연간 공업 소요의 40%를 단함으로 소화 할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뒤집어 말 해 아카시 하나만 잡아 버리면 연합 함대의 정비 소요를 절반 가까이 날려 버릴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미 해군 역시 아카시를 1순위 공격 목표로 잡고 어떻게든 잡아 내려고 용을 쓴거고...
결국 아카시는 자신의 우수한 능력을 피로함과 동시에 일본 해군의 처절한 군수지원 능력을 보여주는 또다른 반증이라고 보셔야 할겁니다.
덤.
이건 일본 해군의 또다른 군수지원함인 마미야 라고 합니다.
이 배에는 원례 카가급 전함의 보일러가 이식될 예정이었습니다만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아마기급 순양전함의 항모 전환이 중단되면서 아마기의 보일러가 이식 되었습니다.
뭐 중요한건 이게 아니고...이 마미야와 또 다른 배인 이라코는 작전시 호위함들의 경계가 어마무지하게 삼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인 즉슨...
이 친구는 일본 해군의 분류에 의하면 급양함으로 분류 되었는데, 말 그대로 해상에서 식량의 보급을 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배 입니다.
그 때문에 함내에 엄청나게 큰 냉장고를 보유하고 있었고, 일본군 18000명이 먹을 음식 3주 분량을 수송할 수 있으며, 함 내에 장인들이 근무하고 있어서 소와 말의 도축을 통해 스테이크를 만들 수도 있고, 빵과 두부 같은 가공식품도 제조할 수 있는데다 심지어 아이스크림, 라무네(요새도 팝니다. 백화점이나 수입 잡화점 같은데 가니 있더군요. 뭐 그냥...좀 특이한 병에 담긴 칠성 사이다 정도?-ㅅ-;;;), 양갱등의 간식거리도 만들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를 해 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군대라는데가 몸을 많이 쓰다 보니 단 음식이 무지무지 당기는데 아닙니까?
그런 와중에 바다위의 초대형 PX나 다름없는 마미야, 이라코가 격침이라도 당하면 안된다는건 말단 수병부터 고위 장교까지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노트라는 느린 속도 덕에 단독으로 항행 할때도 있었다네요. 보급선단 호위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던 미국, 영국 해군들과는 굉장히 대조적입니다.
결국 마미야는 1944년 12월 20일, 사이공에서 마닐라방면으로 수송중 남중국해 해상에서 미 해군의 발라오급 잠수함 USS 씨 라이언의 공격에 침몰하고 맙니다.(이 씨 라이언은 구축함 우라카제와 순양전함 공고도 침몰시켜 버린 수훈함 입니다.)
구조된 승조원 대부분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고 생존자는 여섯명 뿐이었다는군요. 이후 일본인들은 마미야를 위한 위령비를 세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