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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256651
    작성자 : 길을잃다
    추천 : 0
    조회수 : 484
    IP : 124.80.***.71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1/12/26 06:47:42
    http://todayhumor.com/?gomin_256651 모바일
    길을 잃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길이 없었는지 모르겠어요. 
    크리스마스여서 그런지 몰라도 갑자기 울컥해서 새벽까지 멍때리다가 글 쓰네요.

    어렸을 때, 꿈이 고고학자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평범한 꿈을 꿀 때, 저는 약간 다른 꿈을 꾼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이런 저를 똑똑하면서 꿈이 독특한 아이. 영재. 라고 보셨나 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여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사건은 가정불화였습니다. 
    가장이라는 짐... 그 힘들고 무거운 짐을 어머니께서 짊어지셨습니다.

    빠듯한 살림속에 어머니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고고학자라는 꿈 위에 공무원이라는 물감으로 덧칠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저는 그런 기대를 부담스러워했지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때부터 길을 잃었던 거 같습니다.

    스스로가 원하는 길을 못 걷는 상황. 남이 지정해주는 길.
    걷기 싫은 길. 그러나 걸어야만 하는 길.

    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걸을 수 없었습니다.
    길을 벗어나는 순간, 저에게 모든 것을 거신 어머니께서 무너지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길을 걷는 척"했습니다.

    누가 봐도 "그 길을 착실하게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스스로는 눈을 가린...
    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으나 아닌, 어디를 가고 있는지 본인도 알 수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차례로 진학하면서
    기대와 현실을 점점 괴리되었습니다. 언제나 똑똑할 것만 같았던 아들.
    언제나 상위권을 걸어 이름 있는 대학을 갈 것만 같았던 아들은 어렸을 때 사라진 걸 모른 체,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저에게 기대를 하셨습니다.

    그 기대에 부흥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실망시키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기대에 부흥한 척 했습니다. 현실은 그 기대를 부흥할 수 없으니 기대를 부흥한 척이라도 하자
    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습니다.

    성격 또한 이상해졌습니다.
    마치 가면을 낀 듯한 모습. 남들에게 제 약점을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언제나 잘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도 가졌고 남들에게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또한 남들이 저를 바라봐 주길 원했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아이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숙련된, 언제나 잘하고 똑똑한 모습을 보여 칭찬받고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 선생님께, 부모님께 칭찬 받던 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어머니가 원하는 길을 걷는 척하며 스스로도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모를 길을 걸었습니다.
    고등학교 초년 때, 어머니께서 성적표를 보시고 많이 실망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말을 했습니다. 다음에는 더욱 더 좋아지겠다고...

    성적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말의 변화 또한 없었습니다.
    언제나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친구, 선생님, 어머니, 본인을 속이며 시간은 흘렀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매우 슬퍼하셨습니다. 슬픔 그 이상으로 허무해 하셨고 좌절하셨습니다.
    서울권 대학에 갈 것 같던 아들. 적어도 수도권 대학에 갈 것 같던 아들이
    어머니의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편입을 하겠습니다. 
    또 한번 어머니를 속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을 다니고 곧 군대를 가야 할 상황인데도 아직도 저는 어머니를, 스스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미래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은다면 저는 모르겠다라고밖에 대답 못할 것 같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꿈은 있습니다.
    사진작가라는 소박한 꿈. 조그마한 배낭과 사진기만 가지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베게 삼아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제 마음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꿈은 그저 꿈일 뿐입니다.
    성공하길 원하는 어머니. 그 기대에 못 미쳐 그저 외면해버리고 피해버리는 본인.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이 서글픕니다.

    글을 쓰다보니 제가 한심해지네요.
    제게 남는 건 관심 받고 싶어하는 마음, 열기만 하면 거짓말을 뱉은 주둥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그저 움직이는 다리밖에 없습니다.

    울적합니다. 모든게 허무합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 같습니다. 
    주제를 모르고 햇빛을 더욱 더 받으려 잎사귀를 늘리다 쓰러져버린 나무같습니다.

    스스로를 가린 가면을 벗고 싶습니다. 잃은 길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
    인생 선배님들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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