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저녁 8시, 안철수 후보 선거사무실. 안철수 후보가 실장급 이상 참모들을 긴급 소집했습니다. 안 후보는 상기된 표정으로, 하지만 담담하게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격적인 후보 사퇴, 안 후보는 이 자리에서 "내가 알던 문재인 후보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대선을 뒤흔들었던 '국민 후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안 후보 참모들을 상대로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습니다. ◆ 안 후보 사퇴 결심, 18일? 21일? 안철수 후보가 언제 후보 사퇴를 생각했는지와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참모는 지난 18일 광주 방문 때 이미 사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하고, 다른 참모는 21일 단일화 TV토론 때 자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문 후보를 보면서 결심을 굳혔다고 하고, 또 다른 측근은 하루 뒤인 22일 문 후보와의 담판을 결정적인 계기로 꼽았습니다. 지난 18일 상황부터 볼까요? 이날은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가 전원 사퇴하고, 문 후보가 어떤 단일화 방식이든 안 후보 측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날입니다. 당시 광주를 방문 중이었던 안 후보는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측근은 "당시 안 후보는 사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말하려했지만 사퇴라는 표현을 쓰면 지지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조언에 따라 수위를 낮췄다"고 전했습니다. 21일 밤 TV 토론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당시 토론회를 보면 문 후보는 시종일관 안정되고, 또 공세적인 자세로 토론에 임했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대북 정책을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비슷하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두 후보가 합의했던 국회의원 정수 조정을 놓고도 축소가 아니라며 안 후보를 몰아붙였습니다. 토론회 현장에 참석했던 한 참모는 "안 후보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봤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 이외에는 문 후보에 대한 공격을 자제했습니다. 안 후보는 토론을 마치고 나서 "아휴. 좀 더 했었어야 하는데 잘 안 되네요"라며 웃었다고 합니다. 안철수 캠프 고위 관계자는 "여러가지 공격카드를 준비해 드렸지만 후보가 끝내 사용하지를 않더라.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상처를 줘서는 대선판 전체가 위태로와진다고 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22일 담판에서 사퇴 카드 제시 TV토론에서 단일화 방식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다음 날 오전 10시반. 서울 홍은동의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만납니다. 양자간에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안 후보는 세 가지 카드를 준비해갔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주장대로 박근혜 후보와의 가상 양자대결 방식의 여론조사, 두번째는 문재인 후보의 양보, 세번째는 바로 자신의 사퇴 카드였습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사퇴 카드를 이렇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문재인 후보로는 이번 대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문 후보로 단일화됐을 때 이길 수 있다는 근거가 있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사퇴하겠다". 이에 대해 문 후보의 생각은 달랐고, 담판은 1시간 반만에 끝났습니다. 안 후보는 캠프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시내 모처에서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이날 밤 11시쯤 안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한다는 문자가 안철수 캠프로부터 날아들었습니다. 중대 상황임을 직감한 기자들이 다시 캠프 기자실로 몰려들었고, 잠시 뒤 안 후보가 아니라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정정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캠프에서는 순전히 실무 착오로 기자회견 주체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안 후보가 이날 바로 사퇴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고, 박선숙 본부장이 '가상 대결과 지지도 조사 결합' 방식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면서 후보를 만류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게 나돌았습니다. ◆ 23일 전화 담판 뒤 전격 사퇴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23일, 양 후보 측은 대리인 회동을 통해 막판 절충에 나섰습니다. 문 후보 측에서는 이인영 공동선대위원장이, 안 후보 측에서는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이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후보간 이견을 확인한 마당에 대리인들이 이를 좁히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결렬 소식을 접한 안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핵심 측근은 "안 후보가 저녁 7시 전후로 꽤 긴 시간 문 후보와 통화를 했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문 후보를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전화 담판도 무위로 돌아가자 안 후보는 후보 사무실에서 직접 '사퇴 기자회견문'을 작성합니다. 저녁 8시, 실장급 이상 참모들을 소집한 가운데 안 후보는 전격적으로 사퇴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안 후보는 "선거라는게 사람을 많이 변화시킨다고 하던데 저조차도 많이 변했겠지만 문재인 후보도 제가 알던 문 후보가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 있었던 한 측근은 "안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통 큰 형님이라고 했던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정말 동생처럼 압박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캠프 고위 관계자는 "애초부터 안 후보는 협상을 통해 단일화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유불리를 따지고 서로 다투는 순간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는 멀어진다는 판단에서였다. 문 후보 측과 우리는 문법이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안 후보와 캠프 "끝이 아닌 시작" 안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문에서 "비록 새 정치의 꿈은 잠시 미루어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합니다...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의 역사와 소명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 몸을 던져 계속 그 길을 가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측근들은 안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 직전에도 "절대로 새 정치의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또 안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했습니다. 안 후보의 핵심 측근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철수의 사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사퇴 기자회견 이후 만난 참모들은 "생계를 위해 잠시 안 후보 옆을 떠날 수는 있어도 안 후보가 본격적으로 새 정치의 꿈을 다시 펼치게 되면 무조건 합류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안철수의 '정치 시계'는 언제부터 다시 돌아갈까요? 혹자는 2014년6월 서울시장 선거를, 다른 이들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꼽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낡은 정치를 바꿔달라는 '안철수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한 안 후보의 복귀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