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번도 당이란곳을 입당해본적도... 당적 동지 뭐 이런말이 낯설어요.
나이는 30대 초반에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뭐 내년 이맘때는 결혼해서 매일 싸우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저에게는 친구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한 26년쯤 된 친구녀석입니다.
그녀석 노 전대통령 돌아가셨을때 울며 전화 걸며... 함께 대통령 뵈러 가자고도 했었고... 그래서 출상까지 2번 갔었네요.
물런 이녀석도 사진을 좋아해 노통 살아계실때도 함께 가서 살아계셨던 모습 카메라에 담아와 전에 올린적도 있습니다.
그런 이녀석이 어제 국민참여당이란곳 정당대회란걸 한다더군요.
겁이 덜컥 납니다. ^^; 뭔지도 모르고 친구녀석이 가자는 그 발걸음에 함께 동참해서 다녀왔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85278 이건 관련 기사입니다.
유시민 전장관께서 나오셔서 말씀하시던 내용중 한명숙 전총리 문제에 대한 발언이 있었습니다.
왜 지금 5만달러 줬니 안줬니 이렇게 난리인줄 아냐고?
내년에 뭐하는지 아시죠? 지방선거합니다.
2012년에 국회위원선거하죠. 가장 초석에서 민심을 확인할수 있는 방법이죠.
오세훈시장과 한명숙 전총리가 1:1 판도로 붙는다더군요. 야권단일화가 이루어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실추 시켜야 이길수 있으니까...
오세훈시장 지금 광화문 광장이고 뭐 해서 욕 많이 먹고 있죠. ^^
나머지는 기사 읽어 보시면 알겠지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직장인이 이번엔 정당인이 한번 되어 봤습니다.
이병완 창당준비위원장(전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계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누구든 일어나 정말 좋은 나라를 만들어 10년후쯤엔 우리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겁은 납니다. 제가 해서 바뀌는 건 없겠지만... 우리가 해서는 바뀌는게 있겠죠.
^^
전 말도 잘 못하고 그렇습니다. 궁금하신점은 아래 국민참여당 들어가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handypia.org/
만약 당신이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니까 예를 한번 들어볼께...
흠... 당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원래는 무척이나 부자셨어... 그런데 자신의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버린거야. 분노하시고 터질듯한 가슴을 추스리지 못해 직접 자신의 가계를 들고서 의병을 일으키시고 군자금을 대시고 직접 게릴라전을 하면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셨다.
물런 멋지겠지... 떳떳할꺼고... 그렇죠?
그 여파로 잘나가던 가세는 국가를 위해 다 써버렸고 자신의 부인과 함께 도망다니다 부인은 수차례 경찰서가서 폭행에 고문당하고 아이들은 돈이 없어 배우기는 커녕 밥조차 제때 연명하기 힘든 생활을 했다면...??
당신은 정말 떵떵거리며 그리고 지금 죽은 이후에도 정말 잘~ 살고 있는 친일파의 자손이 되렵니까? 아니면 배울때 못배우고 먹을때 못먹어 아주 낮은 삶을 사는 그런 독립군의 자손이 되렵니까?
갑자기 이런게 자신의 문제로 닥쳐 왔다면... 만약 독립군을 선택한 할아버지께 "정말 밑바닥 인생을 펼치고 있는 자손들의 모습을 보세요. 할아버지께서 괜한일 하셨어요. 이게 독립군 자손의 실상입니다!"라고 얘기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독립된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라고 얘기할래요?
사실... 잘모르겠네요.
저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저런일을 하셨다네요.
독립군의 자손이란게 저였더군요. ^^
어짜피 되돌릴수 있는게 아니잖습니까? ^^ 뭐가요? 친일파로 떵떵거리며 살수 있는 기회를 돌리고 싶냐구요? 아뇨~~!
우리나라가 해방되지 못할께 아니잖냐는 말입니다. 물런 할아버지 같으신분이 계셨기에 말이죠.
사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역사학을 배우는 손자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니 말이죠.
물런 친가나 외가나 다 반씩 피를 물려 받았으니 같게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죠... ^^
할아버지... 전 할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저희에게 아주 좋은 세상을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서 선물하셨으니까요... 
잘살께요. 
그리고 떳떳하게... 독립군의 자손의 이름에 걸맞는... 떳떳한 손자가 되겠습니다.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 2004. 8월 29일 늦은 11시... 외고손 순찬올림 -
권석도(權錫燾) - 1880. 9. 9~1946. 4. 6 
경남 함양 - 의병 
서훈내역 - 독립장(86) 
공적내역 - 경남 함양(咸陽) 사람이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늑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자 크게 분노하여 김동신(金東臣) 의병진에 참가하였다가 고광순(高光洵) 의병진과 합류하였다. 1907년 10월 11일 고광순이 전사하자 남은 의병을 이끌고 계속 활동하였다. 동년 12월 21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박인환(朴仁煥) 의병진과 합류하였으며, 박인환 등의 추대를 받아 의병장이 되었다.
이후 그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동·함양·구례 등지에서 항쟁하였다. 1908년에는 하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동년 6월 26일 하동 일본수비대에 피체되었다. 하동주재소에 구금 중 그는 1908년 7월 9일 탈주에 성공하여 도피하다가 일경의 추격을 받아 흉부에 총상을 입고 산속에 은신하였다가 친척집에서 치료를 받았다.
1909년 3월 그는 다시 이학로(李學魯) 의병장과 합세하여 진주 서면 동양곡(東陽谷)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며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09년 5월 하순 박매지(朴每之)·이학로 등 수명과 함께 진주시 산기동(山岐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수비대와 마주쳐 피신하였다. 그후 행상으로 변장하고 은밀하게 활동을 계속하던 그는 1909년 10월 10일 진주에서 다시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1909년 12월 15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종신징역형을 받고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종신형이 확정되었다. 모진 옥고를 치르던 그는 소위 일황의 특사로 재감 6년 9개월 만인 1916년 6월 24일 가출옥하였다.
그는 1918년 2월 일경으로부터 다시 강도사건의 누명을 쓰고 함양경찰서에 피체되었으나, 10여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12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 당시 그는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일경의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회복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일경의 소위 요시찰인 감시가 극심하자 그는 가족과 함께 포항·울진 등 낯선 고장을 전전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6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註·판결문(1910. 2. 19 대구공소원)
·판결문(1918. 12. 12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진주경찰서장 정보보고(1908. 6. 30, 7. 9, 1909. 10. 11∼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