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늦은 아침까지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내는 직장에,아이들은 학교에가서
텅빈 공간의 쓸쓸함이 밀려왔습니다.가을을 타는지...
오후근무를 가려면 몇시간의 시간이 남았기에 혼자 늦은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나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 무드를
잡아보려고 거실에 있는 몇권의 책을 뒤적이는데 이미 몇번씩 읽었던 책들이었기에
식상해서 뭐 읽을만한 책이있나해서 아들,딸의 책꽂이를 두리번 찾아보았지만
몇권의 동화책,만화책뿐 제가 읽을만한 책이 없었습니다.
서점에나 가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아내가 보관해놓은 책이 생각나서
안방의 장롱문을 열었습니다.
장롱속 깊숙히 놓여있는 분홍색천에 싸인 아내의 추억상자.
16년전 아내와 결혼했을때 아내는 추억상자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아내가 어렸을때부터 학창시절,몇년의 사회생활이 담긴 추억상자.
그속에는 사진첩,편지 한묶음,몇권의 책이 들어있었습니다.
신혼초에 아내는 사진첩을 보여주며
"나도 이런때가 있었어.이뻤지?"
하며 학창시절의 사진을 함께보면서 신기한듯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뱃살이 넉넉한 푸짐한 아줌마가 되었지만....
그리고 학교친구,군대간 친정오빠,고향친구들이 보내온 편지를 함께 읽으면서
지난날을 이야기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몇권의 책을 보여주며 읽고 싶으면 읽으라고 했었는데
그당시에는 제가 독서에 취미가 없어서 안 읽는다고 하자
아내는 그 조그만 상자에 사진첩과 편지,책을 다시넣고 보자기에 싸서
장롱 깊숙히 넣어두고 잠을 재운것이었지요.
몇권의 색바랜 책을꺼내 골라 읽으려고 뒤적거리는데 한권의 책속에서
떨어지는 그 무엇! 단풍잎과 함께 코팅되어 있는 사진한장.
사진속에는 선남 선녀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약간은 뚱뚱했던 아내와 낯선남자.
다정히 손을 잡고 어느산인지 모를 가을산에서 찍은 한장의 사진.
1990.11. 거의 20년전 이맘때쯤의 사진.
긴생머리가 허리춤까지 내려온 아내와 키도 크고 미남인 남자.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햐아 이거 특종인데 ㅎ아내도 애인과 연애시절이 있었네 ㅎ"
10여년전 첫사랑이란 드라마를 아내와 재밌게 보면서
"햐!나도 저런 애틋한 첫사랑을 해봤어야 했는데.쩝!"하면 아내도
"부럽다. 최수종 넘 멋지네. 눈물이 다나네"그러면서
"내 인생 물러달라고 할수도 없고 쩝! 애들 낳기전에 우리도 애잔한 연애시절이
있었어야 했는데 ㅎ에혀"
중매로 만난 우리부부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은근히 부러워 했었습니다.
한장의 사진을 보며 이 사진을 어떡할까 하다가 도로 책속에 고이 넣어두고
상자속에 넣어 보자기로 싸아 다시 장롱 깊숙히 제자리에 놓았습니다.
아마도 아내는 이사진의 존재도,이 사진이 책속에 있는줄 모르는듯합니다.까맣게 잊은듯.
'무뚝뚝한 마누란지 알았더니 여우 마누라였네 ㅎ 그런 시절도 있었고'
지금은 두아이의 엄마로써,아내로써 애들 챙기랴,직장생활하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르게 바쁜 아내.
밤늦게 퇴근을 하고 집에오니 아내는 tv를 보고 있습니다.
"와아! 출근하는데 길가에 코스모스랑 산에 단풍든거보니 맘이 싱숭생숭 하대"
"싱숭생숭? 난 심난 하기만한데.김장철도 다가오지 금방겨울되서 춥고 난방비 걱정되지.에혀"
이제 아내는 어쩔수없는 한가정의 중년의 아줌마가 다 되었습니다.
중학생 아들녀석이 학원을 끝내고 집에 왔습니다.
"울 아들 고생했어 공부하느라.어여 밥먹어.어이구 이쁜 내새끼"
밥상을 차려주며 연신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아내.
책속에 묻어둔 아내의 첫사랑.그냥 자네는 책속에 묻혀 있게.
한때 연애했던 강 여사는 두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바쁘게 잘살고 있으니.....
어제는 정말 아내가 새롭게 보였고 사랑스런 하루였습니다.
-출처: 다음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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