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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후주 현덕 6년(959), 주 세종이 사망하고 그의 일곱 살 난 아들 공제恭帝가 즉위했습니다. 다음해 조광윤은 황제의 명을 받고 요나라 군대를 막기 위해 북변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황위를 찬탈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군대가 출정하면 점검(조광윤의 관직 전전도점검殿前都点檢을 이르는 말)이 천자가 된다" 라는 유언비어가 나돌았습니다. 이런 소문에 공연히 후주 조정에 찍힐까 두려워진 조광윤은 몰래 집으로 돌아와 떠도는 말을 식구에게 알렸습니다. "지금 성안이 소란스러우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마침 식사로 국수를 밀고 있던 누이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밀대로 조광윤의 머리를 탁 쳤습니다.
"이 사람아, 사내대장부가 주관도 없이 멍청하게 집으로 달려와 아녀자들에게 물어보는가. 식구들 걱정만 시킬 뿐 얻는 게 무어냐?"
누이는 조광윤을 집에서 쫓아냈고, 집을 나선 조광윤은 '비장한 결심'을 합니다.
2.이후 조광윤은 진교병변陣橋兵變이라 불리는 정변을 일으켜 송나라를 건국하고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앉은 뒤 연호를 건륭建隆이라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보존하기란 절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송 태조의 수레가 도성의 어느 다리를 지나는데 갑자기 화살 하나가 날아와 송 태조 머리 위의 황색 깃발을 꿰뚫는 바람에 모두 놀라고 말았으나 조광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황제가 되는 것은 모두 천명에 달린 거지. 한마디로 모든 일이 하늘에 달렸다는 걸세. 당년 주 세종은 머리 크고 귀 큰 군관만 보면 의심해서 죽였지만 난 죽이지 않더군. 천하의 주인이 될 팔자를 타고났다면 해치려 해도 해치지 못할 테고, 그런 팔자를 타고나지 못했다면 문을 닫아걸고도 무사하지 못할 걸세. 알겠는가?"
참으로 기백이 넘치는, 조광윤 다운 말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3.조광윤이 남한南漢을 정복할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남한의 군주 유창은 뚱뚱하고 무능한 동시에 색을 밝혀 나라 정사를 모두 환관과 총희에게 맡기고 자신은 매일 페르시아 여인에게 빠져 살았습니다. 궁정 안에는 환관만 7000명이었을 정도로 남한 궁정은 사치스러운 짓을 일삼았고, 이로 인한 부담은 백성들이 모두 부담해야만 했습니다. 가련한 백성들은 성문을 드나들 때에도 세금을 내야 했을 정도이니 남한은 이제 멸망할 길만 남은 것이었습니다.
970년 송군은 남한의 하주, 소주, 계주, 연주, 소주 5개주를 정벌한 다음 이듬해 2월에는 영주, 웅주를 송의 발 밑에 두었습니다. 유창은 사자를 보내 휴전할 것을 요청했으나 조광윤은 이를 거부하였고, 이에 겁이 질려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배 열 척에 싣고 바다로 도망가려 하였으나 배에 오르기도 전에 내시들이 물건을 모두 가지고 달아나버렸습니다. 남한 군주는 송군에 투항한 뒤 조광윤에게 살려달라 애걸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유창은 송나라의 포로가 되었으나 송태조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던지라 생활에 큰 불편함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유창은 언젠가 송나라 군주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불안해했습니다. 어느날 조광윤이 연못가에 소풍을 왔을 때 유창이 마중오자 별 생각없이 술을 따라주었습니다. 이 술이 분명 독주일 것이라 착각한 유창은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습니다.
"당초 신은 조정을 따라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폐하의 군대에 원정의 노고를 끼쳤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나 폐하께서 이왕 신의 목숨을 살려 주기로 윤허한 이상 신은 이 술을 마시지 못하겠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이 말에 송 태조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이 사람아, 별 걱정을 다하는군. 아무렴 임자를 죽이려고 짐이 독주를 주겠는가?" 송 태조가 술잔을 들어 단모금에 마시고는 다시 술을 주자 그제야 유창은 술잔을 들었다 합니다.
4.송 태조가 처음 황궁에 들어갔을 때 궁녀 하나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누구의 아이인지 묻자 궁녀는 주 세종의 아들이라고 답했습니다. 태조는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묻자 재상 조보는 아예 죽여버리자고 했으나 반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태조가 말했습니다. "남의 황위를 가진 데다 아들까지 죽이고 싶지는 않군." 그제야 반미가 답합니다.
"신과 폐하는 모두 당년 주 세종의 아래서 벼슬을 했습니다. 신이 주 세종의 아이를 죽이자고 하면 주 세종께 미안한 일이 되고 죽이지 말자고 하면 폐하께서 신의 충성심을 의심할 것이 아닙니까?"
"그럼 자네가 저 아이를 조카 삼아 기르게."
그 후 태조와 반미는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5.송초의 재상 조보趙普는 조광윤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신하였습니다.
송 태조는 북주의 명장인 부언경이라는 자를 매우 신임하여 그에게 군권을 맡기려 했지만 조보는 이에 크게 반대하였습니다. 송 태조는 이를 무시하고 부언경에 대한 위임장을 내리려 하였으나 조보는 중도에서 위임장을 가로채버렸습니다. 이에 크게 화가 난 태조는 이렇게 외칩니다.
"왜 그렇게 부언경을 의심하는 거요? 짐과 부언경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오?"
"주 세종과 폐하의 사이는 어떤 사이였습니까? 주 세종도 폐하와 친한 사이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폐하는 왜 그를 저버렸습니까? 부언경도 폐하를 저버릴지 어떻게 압니까?"
그 말에 태조는 묵묵히 어명을 거두었습니다.
6.조보는 나름 훌륭한 재상이었지만 다소 무식한 면도 있어서 좌중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태조 때 연호를 정하는데 이전 왕조들이 쓰지 않은 새로운 연호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건덕乾德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려 했는데 옆에 있던 조보가 참 좋은 연호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대신이 그 연호는 전촉前蜀에서 이미 써먹은 연호라며 태조에게 간하자, 화가 난 태조는 조보의 얼굴에 붓으로 가로세로 금을 그으며 말했습니다.
"재상이면 글을 좀 읽어요, 글을!"
집에 돌아간 조보는 감히 세수도 못 했다 합니다.
7.어느 날 왕사종王嗣宗과 조창언趙昌彦이 서로 자기가 장원이라고 어전 앞에서 다투었습니다. 그것을 본 태조가 말하기를, "어디 한번 싸워 봐. 이기는 사람에게 장원을 주겠네." 조창언은 대머리라 모자를 제대로 쓰지 못했는데, 왕사종이 주먹 한 번 내지르자 모자가 땅에 툭 떨어졌습니다. 왕사종은 급히 어전 앞으로 달려가 소리쳤습니다.
"폐하, 신이 이겼사옵니다."
태조는 웃으며 왕사종에게 장원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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