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충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으로 제출된 내용입니다.
제목은 "미군정기 중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나타난 역사인식"
http://data.riss.kr/resource/Thesis/000008111941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또 까이고 있는 두계마왕 이병도가 해방후 미군정기에 저술하여 사용되었던
중등역사교과서 새국사교본에 그의 식민사학에 입각한 역사서술을 어떻게 했는지 실증적으로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전문은 아래링크에서 확인가능합니다.
1. 단군조선에 대한 기술 ( 35P )
옛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의 개국 시조는 단군왕검이라 하고 왕검의 아버지를 환웅천왕 환웅의 아버지를 천제 환인이라 하며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나려와 인간세계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한다.
너무나 놀랍게도 이병도는 48년도 출판된 중등역사교과서 새국사교본에서 단군조선을 긍정하는 서술을 남겼습니다.
2. 임나일본부설 ( 41P )
미군정기에 들어서 편찬된 국사교과서에는 어느 교과서에서도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더구나 임나일본부설을 기술한바가 전혀없군요.
3. 백제 일본으로의 문화전파 ( 45P )
백제의 완전한 건국은 고구려보다 뒤떨어졌지만 그 나라가 대륙 문화의 영향을 일찍부터 받은 북조선의 流移民 사회에서 일어났으므로 그 문화의 수준은 퍽 높았으며, 더욱 건국호로는 낙낭 대방과 또 바다를 거쳐 남 중국의 제 왕조와 통하여 그 문화를 받아 들임이 많았다.
백제는 이렇게 이뤄진 자국의 문화를 성히 일본에 전파하여 일본 상대 문화를 지도함이 매우 컸었다.
백제가 일본에 대한 문화전파를 한 사안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4. 임진왜란에 대한 서술 ( 57P )
이 때 국내 각처에서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의분에 불타 조헌 곽재우 고경명정문부와 같은 유자들과 휴정(서산대사) 및 그 제자 유정(사명당) 같은 승려들도 의병(의용군)을 일으켜 도처에서 적과 싸워 혹은 육탄으로 장렬한 죽엄을 한 이도 있고 혹은 적을 쳐 부시어 공을 세운이도 있었다.
중략이로 인하여 왜군이 차례로 물러갈 새 순신은 이 틈을 타서 왜군을 섬멸하려 하여 고량(남해도와 하동사이)해상에서 적의 대부대와 어울려 싸우다가 불행히로 적의 유탄애맞어 장렬한 최후를 마치었다.
때는 무술 11월 19일이니 순신의 나이 54세 이었다.
그의 나라를 위하는 지극한 정성과 높고 깨끗한 인격, 위대한 통솔(지휘)력, 또 그 신묘한전략은 모두 세계해전사상에 유례가 드문 것이다.
『새국사교본』에서는 임진왜란에 대해 무려 8면에 걸쳐 사진과 지도를 곁들여 자세히 다루고 있다. 조정의 일 뿐 아니라 국내 각지의 의병의 싸움과 이순신의 활약을 자세히 적으면서 이순신에 대해 세계해전 상유래가 드문 장군이라고 극히 칭송하면서 임진왜란 후의 사회 변화도 언급하고 있다.
5. 조선의 붕당정치 ( 80P )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는 붕당정치라는 역사용어가 안착되기 전까지 당쟁으로 불리며 한민족의 당파성의 주요 근거가 된 역사적 사실이다. 미군정기 국사서술에서도 이러한 영향으로 분량이 다른 역사서술보다도 많고 자세히 서술되고 있다.
다만 『국사교본』과 『새국사교본』의 경우당쟁의 원인을 언론의 자유에서 찾음으로서 다른 교과서들에서 보여지는일방적인 서술에서 빗겨나고 있다.
너무나 놀랍게도 이병도는 당쟁의 원인을 언론의 자유에서 찾는 서술을 48년에 했습니다. 다른 교과서들이 여전히 한민족의 당파성 운운하고 있을때 말이죠.
6. 한일합방 ( 70P )
이러는 동안에 일본정부는 한국합병을 속히 촉진시키려하여 온갖 준비를 다하더니 그이듬해 8월 21일에 신통감 사내정의와 이완용 사이에 합병안이 성립되어 어전회의를거쳐 드디어 8월 29일에 조약이 발표되고 조서가 내리었다.
대한제국의 최후는 마치 사나운 이리에게 물린 양과 같이 쓰려지고 말었다. 조선은 태조 건국으로부터 27애 519년만에 사직을 잃고 우리 반도강산은 잔악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화하여 가진 압박을 받게 되었다.
한일합방에 대하여는『중등국사』,『중등조선역사』의 경우 단순히 합방조약에 의해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으며 『국사교본』, 과 『새국사교본』의 경우 일제의 한일합방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한민족이 핍박을 받게되는 출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전자의 교과서에서보다 진전된 내용으로 보인다.
친일파 이병도는 한일합방에 대해 단 한줄의 긍정적 기술을 한바 없군요. 심지어 다른 교과서보다 더 심화된 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7. 삼일운동 ( 74P )
이때를 당하여 우리 민족은 內外地에서 호응하여 힘을 모으더니 드디어 일본정부 貴衆兩雨, 政黨首領, 조선총독에게 합병후 조선인 일반은 일본정치에 복종치 않으며 그 다스림을 받고저 하지 않으니 국권을 돌리어 보내라는 글을 보내고 미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에 대하여는 평화를 기초로 한 새 세계가 건설되려는 오늘날 조선만이 일본의 압박정치아래 있음을 하소연 하기로 하여 일대독립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8. 삼별초 ( 79P )
몽고의 침입에 대한 고려의 대응은 고려가 몽고의 지배를 받게 된 것뿐만 아니라 몽고에 대한 고려의 항쟁을 주로 서술하여 민족 주체적 입장을 잃지 않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삼별초의 대몽 항쟁에 대해서도『국사교본』과 『새국사교본』의 경우 자세히 소개하면서 삼별초의 항전을 높게 평가하고 있으나 다른 교과서들의 경우 내용이 빠져 있거나특별히 서술하지 않고 있다.
대체 친일파 이병도의 식민사관 기술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미군정기 그의 중등역사교과서는 대단히 민족주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