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에 대한 고찰
늘 그렇듯이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내 출신성분(?)부터 밝혀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리 풍족하지도 않은 집의 2남 중의 장남으로 1978년에 태어나서, 지금 알고보니 수많은 민주화 항쟁이 있었던 86,87,88년도에 삼성 라이온즈의 광팬으로 이만수의 폭발적인 타력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에어울프와 맥가이버. 메칸더V와 실버호크와 함께 자라온, 그리고 임수경이 북한을 방문한 것을 보고는 대한민국이 공산화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놈이다.
그런 내가 88올림픽을 보면서 정말 그 웅장한 규모에 놀라고 있을 때에도 바로 그 1년 전에 엄청난 민주화 항쟁이 일어났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고작 생각한다는게 매일 시내만 나오면 최루탄 냄새 때문에 코를 움켜쥐고 다녔던 기억, 그리고 미국 문화원 앞에 도열해 있는 새까만 진압복 차림의 전경들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아련한 어린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그 자리에 피를 흘리며, 최루탄에 괴로워하며 독재타도를 외쳤던 386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을 해보았다. '좌익 불순 세력의 불법 집회'라는 언론보도로 점철되었던 6월 항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386. 그 386이란 과연 무엇일까. 솔직히 나는 386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조차 그 수많은 민주화 투쟁이 있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고작 드는 생각이란게 "그럼 나는 20대고 90년대 학번이고 70년대 출생이니까 297이네"하면서 "그럼 386은 조금 있으면 486되겠네. 업그레이드 되나?"하는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386이란 단어는, 아니 세대는 비단 80년대 학번이라는 숫자상의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
노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에서 한 검사가 나도 83학번이라고 말했다가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맞고 '개떡'이 된 것을 생각하며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럼 과연 386이란 무엇일까. 어느 네티즌 분들의 말처럼 그 시절 이 사회가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독재정권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했던 사람이라면 다 386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촛불시위의 마당에서 그 시절 민주화 항쟁에 앞장섰던 386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이 나라의 민주화의 한가운데에 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6월 항쟁을 완성시키지 못한 일종의 죄스러움이라고 해야 하나 안타까움? 좀 심하게 말하면 한(恨)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몇 달, 아니 작게 보아서 광주항쟁부터 시작되었던 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한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박종철이 있었고 이한열이 있었고 이태춘 열사가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대학생들이 백골단에게 얻어맞고 다니면서 결국은 미약하나마 6.29선언으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의 항복을 받아 내었다.
그런데 양김의 분열과 노태우 당선, 그리고 삼당 합당에 이르는 정치인들의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가 이어지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386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 같으면 아마 사흘 밤낮을 통곡을 해도 모자랐을 거다. 어떻게 이룬 민주화인데... 내 친구들이 어느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나도 언제 잡혀갈지 모르고, 마음고생 몸고생 해 가며, 자신의 일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며 이룬 민주화인데, 하는 생각이 나 같아도 들 것 같다.
2003년 지금, 그 동안 세상에 아무런 불만없이 그냥그냥 살아온 나마저도 이 사회의 썩은 구석구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시절의 386은 그 시절이 어떻게 보였을까. 빛고을에 있던 그 수많은 시민들을 개패듯이 패고,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술취해서 한 말을 가지고 연행되어서는 깨보면 그런 사람들이 교도소에 득시글 득시글한... 나 같으면 아마 미쳐 돌아갔을 거다. 어제까지 같이 술 마시며 풍진 세상을 노래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송장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했던 그 시절. 그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눈물부터 흐른다.
나같으면 아마 그런 시절에 도서관에 '짱 박혀' 있는 인간들은 인간이 덜된 냉혈한쯤으로 비춰졌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386세대들이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공부했다는 그 자체로 검사들을 그렇게 나쁘게 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 386을 비롯한 온 개혁세력들이 지지하고 있는 강금실 장관만 해도 전두환 때보다 더 악랄했던 박정희 시절에 도서관에서 고시원에서 열심히 법전을 뒤졌으리라. 검사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그렇게 친구들 몰라라 하고 공부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후의 행동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백골단에게 두드려 맞으면서 민주화를 외치는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죄를 지은 마음으로 검사로서, 인간으로서 투철하게 고민하고 행동하였어야 할 검사들의 안하무인을 보고는 너무나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김민석와 같은 정치 철새들을 바라보는 기분도 거의 똑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386세대는 과연 어떤 기분이었을까. 20, 30대의 정치혁명이라는 말을 하지마는 그 중심에는 인터넷과 자발성으로 중무장한 그 386이 있었다. 온라인을 넘어선 오프라인의 조직력. 그것이 아마 전대협 시절 취득했던 그 노하우일 거라 감히 장담한다.
지난 12월 19일 그날 386은 일단 그 시대의 민중에게, 아니 역사에게 진 빚을 조금은 갚은 기분일 것이고 후세에 조금은 자랑스럽게 내보일 역사를 일구어 내었다는 승리감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6월 항쟁을 온전한 승리로 일구어 내지 못하고 또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서게 했다는 자책감과 패배감을 지난 대선에 깨끗하게 쓸어버린 기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386은 그 시절 독재정권에 핍박받으며 살아왔던 그 시대의 민중이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왔던 학생들 그 자체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가 나름대로 역사의 한 중간에 서있다는 생각을 한다. 뜨겁게 대한민국을 온세계에 알렸던 월드컵, 미국에 대한 인식을 한꺼번에 뒤엎었던 오노사건과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그리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대한 동등한 입장을 이야기했던, 수구세력의 입장에서의 '빨갱이 대통령'의 당선, 이른바 '딴따라'의 내각 진입, 그리고 지난 정권 이미 이루었던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의 진입.
요즘 나름대로 역사의 한중간에 서있었다고 자부한다. 하물며 386세대의 시절에는 자신이 역사의 한중간에 서서 이 독재정권을 타도하지 않으면 후세에 두고두고 부끄러울 것이라는 생각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불확실한 개개인의 미래를 잠시 접어두고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울 수 있지 않았을까. 혹시 그것 때문에 야당후보 단일화 실패와 삼당합당 앞에서 그렇게 통곡하지 않았을까. 죄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자기 자신에게 짓는 죄와 역사앞에 짓는 죄일 터이니 말이다.
지난 대선 노 대통령의 당선으로 역사에 지은 다소간의 죄이나마 사할수 있게 된 것이 조금이나마 젊은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386세대... 민주화 세대... 그 이름은 이 사회에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우리 민중의 이름으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향해서 내지른 절규 한마디 한마디가 모여서 조금이나마 지금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80년대의 민중. 명동성당의 대학생들에게 도시락을 걷어주었다는 중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명동성당의 학생들에게 계란을 가져다 주었다는 아주머니, 6월 10일 경적을 울렸던 그 많은 시민들. 줄 것이 없어서 던질 돌을 한 트렁크 구해다 줬다는 그 택시기사. 민주화를 열망했던 그 사람들, 민중들 하나하나가 다 386세대, 민주화 세대라는 이름으로 존재함을 너무나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여긴다.
87년 뜨거운 6월과 2002년 춥지만은 않았던 12월 19일의 한중간을 관통하는 386. 그들에게 경배를 보낸다. 세대가 바뀌고 정신이 바뀌고 물질이 바뀌어도 당신의 정신은 남아 오늘도 그 어느 곳에서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니.
/장우식 기자 (
[email protected])
다음에서 퍼왔어요..그냥 386세대 에 대해서 다시 봤습니다.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