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위기 The Crisis of the Seventeenth Century' 또는 '일반 위기 The General Crisis'라는 용어는 에릭 홉스봄, 휴 트레버-로퍼와 같은 몇몇 역사학자들이 17세기 초에서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의 광범위한 갈등, 충돌과 불안정의 시기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주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기후의 관점에서 '17세기 위기'를 설명하는 자료를 주로 수집하였는데, 기후가 '17세기 위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은 대략 1970년대 이후로 보면 되겠다. 그 선구자 중의 한명인 엠마뉴엘 르 로이 라두리(Emmanuel Le Roy Ladurie)는 『축제의 시간, 기근의 시대』(1967)에서 소위 '17세기 위기'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문제는 "단순히 당대의 유럽 사회와 경제에 대한 내적인 분석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기후적인 기원을 갖는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나 그 뒤로도 '17세기 위기론'을 탐구했던 역사학자들은 기후의 관점에서 '17세기 위기론'을 바라보는데 대체로 인색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유럽사를 둘러싼 '17세기 위기론'에서 소빙기 문제를 적극 도입하면서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제 소빙기 연구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역사인문학에서도 상당히 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 IPCC 2차 레포트에 나오는 기온 그래프로 역사적인 사건과는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물론 온난화와 관련하여 논란이 많다.
'17세기 위기' 또는 '일반 위기'는 소빙하기(소빙기, Little Ice Age)의 절정기라 보고있는 17세기와 거의 일치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마운더 극소기 Maunder Minimum'라 불리는 태양 흑점이 거의 소멸한 시기인 1645~1715년와 겹친다는 것이다. 소빙하기의 원인이 태양인지 화산인지 해양의 순환 문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다. 아직 소빙하기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소빙하기는 거의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다만 그 정도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거나 시기적으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소빙하기의 시기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에서는 H. H. Lamb은 1190년~1900년을, Brian Fagan은 1300년~1850년을 소빙하기로 간주한다. 그리고 NASA Earth Observatory에서는 3개의 주요 냉각 시기를 1650년, 1770년,1850년 근처를 언급하였다.
한국의 경우, 『증보문헌비고』나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헌의 천재지변 관련 기사를 통해 소빙하기의 실체를 접근하고 있는 실정인데,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한 이태진의 경우 1490년~1750년 시기를 소빙하기로, 김연희의 경우(석사 논문)는 제1기(1511~1560년), 제2기(1641년~1740년), 제3기(1781년~1850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증보문헌비고』를 분석한 김연옥은 냉량(冷凉)지수를 중심으로 제1기(1551~1650년), 제2기(1701~1750년), 제3기(1801~1900년)으로 구분하였으며, 이 중 1601년~1650년에 가장 극대가 나타나며, 1801년~1900년간에 두 번째 극대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 17세기의 각 나라의 물리적 충돌과 전쟁 등의 대변화
- 30년 전쟁 (1618~1648)
- 신성로마제국의 경제위기 (1619~1623)
- 청교도 혁명 (1640~1660) / 명예 혁명 (1688)
- 명의 이자성의 난 (1641~1644)
- 명이 멸망하고 청 성립 (1644~1662)
- 프롱드의 난 (1648~1653)
- 스페인 왕가에 대한 반란 : 나폴리, 포르투갈, 카탈로니아
-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절정기 및 관련된 여러 충돌들
- 오스만 제국의 수많은 내부 반란들 (특히 1622)
- 러시아 대기근 (1601~1603) / 로마노프 왕조의 등장 (1613)
- 러시아 스텐카 라진의 난 (1670~1671)
- 일본 시마바라의 난(1637~1638)과 쇄국령 공포
- 모리타니 30년전쟁 (1644~1674)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기에 '인조반정(1623)',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경신 대기근(1670~1671)', '을병 대기근(1695~1696)' 등의 사건과 극심했던 당쟁이 있었다. 위키백과의 '경신 대기근'을 보면, 조선 현종 재위기간인 경신 대기근(庚辛大飢饉)은 한국사상 전대미문의 기아 사태였으며, 임진왜란 때부터 살아온 늙은이들이 ‘전쟁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의 무지막지한 피해를 입었다. 경신 대기근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조선 8도 전체의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당시 조선 인구의 1200~1400만 명중 30~40만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