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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과연 IT 강국일까. 스마트폰 세계 최대 제조업체가 국내에 있고, 인터넷 보급률이 전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는 2000년대 들어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진짜 IT 강국은 환경과 생태계에 있다. 소프트웨어(SW) 개발 현장에서 상식 이하의 처우로 신음하는 SI(System Integrator) 개발자가 부지기수라는 말이다. 좋은 개발자 없이 좋은 IT 생태계를 꿈꾸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열악한 SI 개발 환경은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누구 하나 나서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된 적이 없다. SI 개발을 주로 하는 이들이 모이면, 그저 술안주 삼아 각종 경험담과 사례가 오갈 뿐이다. “그런 일도 있었다더라.”
다행히 최근 정부가 국내 SW 산업과 SI 개발자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여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IT 개발자를 위한 청책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고, 10월1일에는 장하나 민주당 국회의원이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안(이하 SW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SW법은 SI 개발 현장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는 IT 개발자를 위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더불어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지난 10월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 22만명을 양병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SW 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관심을 내비친 한마디일게다.
현재 국내 IT 업계의 SI 노동자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을까. SW법은 과연 이들의 고충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최문기 미래부 장관의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국내 자바 개발자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 이와 프리랜서로 일 하고 있는 현장 개발자, SW법을 발의한 장하나 의원실 비서관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 현장 개발자는 개인 블로그에 ‘모험회사’라는 웹툰을 그리고 있는 이로도 유명하다. 익명으로 처리했다.
● 일시: 2013년 11월11일
● 장소: 블로터닷넷 소강의실
● 참석: 노상범 OKJSP 대표, 박기일 장하나 의원 비서관, 빈꿈 IT 프리랜서 개발자, 오원석 블로터닷넷 기자
오원석: 각자 하는 일을 설명해 달라.
노상범: 국내에서 자바 개발자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 OKJSP에서 대표를 맡고 있다. 자바가 아무래도 SI 쪽에서 많이 쓰이는 언어이다 보니, 자바 개발자가 곧 SI 개발자이기도 하다. 프리랜서가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고. 모임 운영과 개발자 테크니컬 HR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에 공개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박기일: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 비서관이다. 올봄부터 IT 노동자 실태조사를 시작했고, SI 개발자 증언대회도 개최한 적이 있다. 이분들의 열악한 현실에 제도적인 개선점을 고민해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했는데, 하나는 고용노동부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산업적으로 개선할 부분을 찾아봤다. SW법까지 그 고민이 연장됐다고 할 수 있다. 10월1일 장하나 의원실에서 법안을 발의했고, 국회 일정이 국정감사로 중단됐다가 다시 11월부터 법안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은 이 법을 어떻게 통과시킬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빈꿈: 나는 프리랜서 개발자다. ‘모험회사’라는 웹툰으로 사회 의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오원석: 만화 재미있게 보고 있다. 주로 어떤 것을 그리고 있나? IT가 많은 것 같다.
빈꿈: 규정된 것은 없고, 원하는 대로 그리고 있다.
오원석: SI 개발 시장의 밑그림을 알 수 있을까. 몇 명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지, 매년 얼마 정도의 돈이 SI 개발 쪽에서 오가는지 등 말이다.
노상범: 솔루션 분야와 SI 개발 분야를 규정하기 어렵고, 웹과 퍼블리셔를 SI 분야로 두느냐 마느냐 등 어느 한 가지 분야로 단정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대략 15만명 정도 인원이 종사 중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빈꿈: 현장에서는 전체 IT 인력의 40%가 SI 개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70%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오원석: 경제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노상범: 통계가 파악이 안 된다. 이것도 문제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지표가 없다는 점.
빈꿈: 솔루션과 SI 개발이 서로 걸쳐져 있기 때문에 더 복잡해지는 경향도 있고.
박기일: 정부가 내놓은 통계를 찾아봤는데, 공식 통계이기 때문에 빠져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지난 2012년 말 기준으로 국내 SW산업 전체는 생산액 31조원 정도를 기록했다. 기업 수는 6785개, 인력은 총 17만명 수준이다. 프리랜서는 빠진 수치일 것이다. 보고서가 말하기로는 SW산업 규모가 반도체 시장의 3.7배, 휴대폰의 4.8배라고 한다. 분명 국내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큰 산업이다. 정부에서는 SI 개발과 SW 분야를 분류할 때 IT 서비스로 분류하는데, IT 서비스 비율이 전체 SW산업 중 87%라고 잡고 있기도 하다.
오원석: 거의 90%에 육박하는 숫자 아닌가.
박기일: 국내 SW산업 중 상당 부분이 SW 개발과 SI 개발이라고 봐야지.
오원석: 국내 SW산업이 대기업 위주의 독과점 구조가 형성돼 있고, 불공정한 하도급 구조로 묶여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장하나 의원의 SW법은 이 같은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국내 SI 개발 현장에서 일을 하는 개발자가 처한 현실이 어떠한지 듣고 싶다.
노상범: 그야말로 암담하다. 어떤 병원에서 맡긴 프로젝트를 하러 병원에 파견 간 SI 개발자가 있는데, 그 개발자한테 영안실에 자리를 만들어 줬더란다. 멱살 잡히는 일은 다반사고. 사례는 많다.
빈꿈: 국내 이동통신업체에 프로젝트를 하러 갔다가 서버실에 갇혀 3일 동안 나오지를 못했다던 친구가 있었다. 혼자서 일을 하느라 그랬던 것이다. 계약관계가 얽혀서 나올 수가 없었더라고 하더라. 원래 혼자 할 수 있는 양의 일도 아녔고. SI 개발자 모아두면, 이 같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서로 농담 식으로 주고받는 경험담이나 사례가 무궁무진하지.
노상범: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러면 왜 SI 개발자가 그런 나쁜 대우를 받게 됐는가 하는 점이다. 원인 분석을 해야 하는데, 이게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악순환이 어디서 시작되느냐를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 맨 위에 대기업이 있겠지.
잠깐 한때 좋았을 때 얘기를 해보면, 우리가 2001년에 인터넷뱅킹 프로젝트를 할 때 10명 정도가 갔던 적이 있다. 그쪽에서 원하는 날짜에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정확한 날짜에 철수한 적이 있다. 프로젝트 제날짜에 맞춰 끝내는 일이 요즘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때 그럴 수 있었던 것이 당시 개발자 중 실력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실력이 있으니 업체에서 연봉도 많이 받던 친구들이었고. 그런데 지금은 점점 SI 개발자 실력이 낮아지고 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프로젝트 일 하러 들어가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이렇게 개발자 실력이 낮아진 까닭이 개발자에 대한 존중이 없는 문화 탓은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업 컨설턴트도 파견이고, SI 개발자도 똑같은 파견 근로잔데, 컨설턴트는 존중해주고 대우해주잖나. 하지만 SI 개발자는 그런 거 없다. 그러다 보니 점차 실력 좋은 개발자는 업계를 떠나게 되는 거지. 그래도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생긴다. 그 공백을 누군가는 채워야 하는데, 그게 바로 ‘국좀’이다.
오원석: ‘국좀’이라니 생소한 말인데?
노상범: ‘국’은 국비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말하고, ‘좀’은 ‘좀비’를 뜻한다. 실제 있는 말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SI 개발자는 개발 수준이 높지 않다. 그러다보니 일도 잘 안 되고, 갑 업체가 볼 때는 한심하기도 할 것이다. 다시 근무 환경은 계속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빈꿈: 뜬구름 잡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위부터 아래까지 다 문제는 아니었을까. 아래로는 불법 SW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용자가 있을 것이고, 위로는 싼값에 개발자 고용해서 부려 먹고 싶어 하는 대기업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게 서로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본다.
2000년대 초 닷컴 붐이 사라지고, IT 쪽에 SI 개발 말고는 돈이 안 됐다. 그때는 SI 분야에 사람도 많았지. 그렇게 가격 경쟁이 시작됐다. ‘갑’, ‘을’에서 ‘병’, ‘정’이 이때부터 나왔다.
노상범: 수만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원인을 찾아 거꾸로 올라가다 보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만나게 된다. 재벌을 해체해야 돼. (웃음)
빈꿈: 잠깐. 하지만 지금은 SI 개발에 ‘빅3(삼성 SDS, LG CNS, SK CNC)’ 못 들어오잖나?
노상범: 국내에서 SI 개발을 하려면, 삼성 SDS를 무조건 껴야 한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전체 먹이사슬 중 최고 높은 곳에서 돈을 쥐고 있으니 별 방도가 없는 실정이다.
오원석: 현장의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나온 것이 이번 SW법 아닌가. 법률 얘기를 해보자. 법안을 보면, 표준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박기일: 우선 법안 개요를 먼저 설명하는 게 좋겠다. 법안의 주된 목적은 하도급을 제한하는 것이다. 주요 내용이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정한 표준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고, 하청받은 업체가 다시 하도급을 주는 경우에도 원래 받은 금액 중 수수료를 5% 이상 가져갈 수 없도록 하자는 것 등이다. 이를 업계에서는 통행세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재하도급할 때는 원 발주자에 재하도급 계획서를 내고, 승인을 받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빈꿈: 법안 자체는 굉장히 좋다. 하지만 막상 법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잘 시행될까가 걱정이다. 왜냐하면, 현재 SW 진흥법에 따라 빅3 업체가 정부 과제를 따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안 돼도 다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협력업체가 대신 받는 식으로 말이다.
박기일: 미래창조과학부도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미래부는 산업을 진흥하고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기관이다. 때문에 실제로 불법 행위를 적발하러 다니거나 신고가 들어오면 사법적인 권위를 내세울 수 없다. 이 같은 불법 행위에 관한 문의가 오면, 그러지 말라고만 한다. 그런 문제는 실제 있는 법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지금 얘기와는 조금 다른 얘기다.
노상범: 여름에 서울시에서 박원순 시장이 개최한 ‘IT 개발자를 위한 청책토론회’때도 얘기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제발 법대로만이라도 합시다”이다. 장하나 의원의 SW법도 좋고, SW진흥법도 좋다. 다 좋은데, 이거 말고도 그동안 만들어 놓은 좋은 법이 많다.
빈꿈: 예를 들어 근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노동법만 지켜도 SI 개발자는 행복하지 않을까.
노상범: 그게 안 지켜진다니까. SI 개발자도 문제지만, 업체의 입찰비리도 무궁무진하고. 지나가는 SI 업체 사장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비리에 관해 누구나 쉽게 이야기해 줄 정도다. 이 같은 현상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 밝혀내기도 쉽지 않다. 자기한테 돌아올 부메랑이 무서운 거다.
그러니 미래부도 좋고, 다른 특별 위원회를 꾸려도 좋으니 사법권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쉽게 고발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불태울 수 있도록. 물론 부작용도 있겠지만, SI 개발 담당 부서에서 사법권을 갖고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기일: 사실 법 안 지키는 것을 따지자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수많은 법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법이라는 것은 정부의 의지를 내비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예산도 배정되고, 그대로 시행된다. SW법도 통과된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법이 정착되고 시행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 SW법을 근거로 SI 개발자나 SI 업체가 부당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 SW법을 근거로 처벌도 할 것이고, 그런 사례가 쌓이면, 질서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오원석: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SW법 자체는 현재 SI 개발자가 처한 어려움을 상당 부분 해소해 줄 법안으로 채워져 있다. 앞으로 이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텐데.
박기일: 법을 어렵게 만들기는 했지만, 장하나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의원이 아니다. 하지만 SW법은 미래부 상임위에서 처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하지만 미래부도 SI 개발자 하도급 문제에 관심이 많다. 미래부에서도 SI 개발자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연구기관에 용역도 맡기고, 실태를 파악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미래부는 11월 실태 보고서를 받아보고, 내년부터 천천히 논의하려고 했다는 것이지. 그걸 바탕으로 해서 하도급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만들려고 했는데, 우리 의원님이 SW법을 먼저 만들었으니 이제 미래부도 함께 의논할 시기이다.
그래서 법안을 발의한 이후 미래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미래부 쪽에서는 이 법을 그대로 통과시키기보다는 조금 수정된 버전을 원하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50% 이상 금액으로 하도급 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나 재하도급 수수료를 5% 이상 가질 수 없다는 내용 등이다. 구체적인 숫자가 명시된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더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에는 적극 공감해도 구체적인 숫자는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다.
오원석: 만약 법안에서 그런 구체적인 숫자가 없어지면, 무용지물 아닌가. 숫자가 있어야 금지를 할 것인데.
박기일: 법안이라는 것이 상임위원회에 가면, 절차에 따라 법안심사소위 논의를 통해 수정 과정을 거쳐 국회에 올라간다. 그런데 만약 “이 법에 죽어도 동의 못 한다”는 국회의워이 있으면 통과될 수 없다. 국회의원 한 명의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W법이 법안심사소위에서 수정돼 다소 완화된 이후 미방위 회의에 올라갔다고 생각해보자. 그 위원회에 소속된 의원 중 한 분이 동의 못 한다고 하면 사실상 통과는 어렵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국회 전문의원을 설득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법이 수정되더라도 최대한 적게 수정되도록 하고 싶고. 말 그대로 5% 이상 수수료를 가질 수 없다는 항목에서 숫자가 빠지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으니까.
빈꿈: SW법이 나온 이후 다른 쪽에서 언론플레이도 하는 것 같더라. 우리나라 SW산업은 하도급이 전통이라는 둥 하도급 제한하면 국내 중소기업 다 죽는다는 둥.
오원석: 나도 궁금하다. 만약 SW법이 통과돼 재하도급을 제한하게 되면, 그 많은 재하도급 인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나는 현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에 솔깃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노상범: 현재 SI 개발자 시장 전체 총액을 100이라고 생각해보자. 100이라는 숫자가 앞으로 25나 30 정도로 내려가야 정상에 가까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00이 25나 30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정보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업체의 프로젝트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나머지 75~80이 어디로 갈 것인가. 호스팅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패키지 SW, 솔루션 등 SW 개발자가 SI 개발보다 먹고 살기 더 좋은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얘기다.
단적인 예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하도급 전문 ‘보도방(SW 개발자 일용직 소개소)’이 사라지면, 개발자가 갑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중간에 일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가져가는 사람이 없어지니 말이다.
이건 선순환이다. 그렇게 되면 실력 있는 개발자가 SI 개발 시장에 참여할 것이고, 그러면 프로젝트가 잘 될 것이고, 일이 잘되면 일을 맡긴 갑 업체도 SI 개발을 달리 생각할 것이고, SW 개발이 3D라는 인식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재하도급 없어지면 영세 업체는 망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 보도방은 없어져야 한다.
빈꿈: 내 얘기를 잠깐 하면, 나는 지금 ‘병’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개발자는 ‘임’으로 일하고 있다.
박기일: 그 만화가 사실이었단 말인가?
빈꿈: 사실이다. 그 사람 계약서에는 ‘임’이라고 쓰여 있다. 보통은 계약서가 바뀔 때마다 ‘갑’, ‘을’을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잖나. 예를 들어 ‘을’이 ‘병’과 계약을 할 때도 ‘을’을 ‘갑’이라고 쓰는 식으로. 그런데 그 사람 계약서에는 진짜 ‘임’이라고 써 있어서 나도 놀랐다. (웃음)
그런데 그 사람을 고용한 갑과 나를 고용한 갑이 주는 돈은 똑같다.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과 내가 받는 돈의 액수는 다르다. 내가 만약 갑이 주는 1천만원 중 4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200만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중간에 하도급이 사라지면 그 사람도 400만원을 받겠지.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보도방 때문이다. 보도방이라는 곳이 오피스텔 하나 차리고, 대기업 인맥 갖고 일을 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일을 나눠 먹기도 하고. 그런 연결고리가 없으면 보도방 못 차린다. 일 돌려먹고, 돈 빼먹는 비리의 온상이 바로 하도급이다. 모든 하도급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문제가 많다고 본다. 현장 노동자 처지에서 봤을 때.
△빈꿈 개발자가 그린 ‘임’ 근로자에 관한 웹툰(출처: emptydream 블로그)
오원석: 미래부 장관이 11월 초 22만 SW 인력 양성하겠다고 한 발언에 관해 OKJSP가 공개 질의서도 보냈다. 인력을 양성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취지의 질의서였는데, 구체적인 배경과 의미가 뭔가.
노상범: 양보다 질이라는 얘기다. 제대로 된 산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고. 돈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면, SW 개발자는 알아서 나타난다. 국가가 주도해 인력 22만명 양성해 봐야 전체 개발자 물만 흐리는 꼴이다. 게다가 지금 SW 개발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나. 그래서 두 가지 대안을 얘기하고 싶다. 양보다 질을 위해.
하나는 SW 저작권을 개발자나 개발한 하도급 업체가 가져가는 것이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얘기인데, 예를 들어 A 업체에서 갑으로부터 일을 받아 SW를 개발했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 국내에서는 이 SW 저작권이 갑에게 간다. 그러면 A 업체가 나중에 다른 갑 업체에 똑같은 프로젝트를 받았을 때 어떻게 되겠나. 똑같은 SW를 똑같이 나쁜 대우 받으면서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SW의 질이 높아질 리가 없다.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할 뿐이고. 국내 SW 품질이 좋지 않은 까닭이 여기 있다.
두 번째는 근본적인 얘기인데, 처우개선과 관련된 얘기다. 파견과 야간근무 등도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22만명 양성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다. 지금 국내 SW산업 정말 위기라고 생각한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빈꿈: 동의한다. 정말 위기상황이다. 지금은 꿈이 없다. 국내 SW 산업은 이제 3D가 아니다. 4D다. 드림리스(Dreamless)가 붙었다. 장하나 의원실에서 발의한 법안 그대로 통과됐음 하는 바람도 있다.
박기일: 지금 정부는 산업 구조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직접 SW법을 준비를 해보니 느낀 점이 있는데, 아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관심이 없을 수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더라.
지금은 노동이나 파견과 관련한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근로감독 내용도 포함될 예정이다. SI 개발 직종을 파견금지 일자리에 넣는 방안도 고민 중이고. 그래도 현재 긍정적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 것은 노동부는 노동부대로. 미래부는 또 미래부대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오원석: 왜 일이 여기까지 왔을까. 그동안 정부는 뭐했나?
노상범: 그동안은 의지가 없었다. IT 쪽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MB 정부 들어서 4대강 사업하느라 모든 신경이 강바닥에 쏠렸다. MB 정부 때는 모든 IT 예산이 다 깎였다. 창조경제는 뭐 아직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박기일: 정부는 기본적으로 SW산업을 볼 때 육성 차원에서 본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가 그랬고, 박근혜의 창조과학도 결과적으로는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마인드는 그렇지 않다. 60년대 마치 경부고속도로 건설할 때처럼 돈 투자 해서 일자리 만들겠다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이제 정부에서도 하도급 문제가 전체 IT 업계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국회가 있는 것이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IT 노동자들은 진짜 법안에 관해 하는 일이 없다. IT 노동자가 정말 원하는 것이면 단체를 꾸리거나 인원을 조직해서 의원실에 전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의원실 방이 그날 하루 그 항의 전화 받느라 하루를 다 쓸 정도로 항의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의원실에서 어떤 법안을 발의했는데 그게 반발이 너무 심하다 하면 실제로 그 법안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국회의원이 신경 쓴다는 얘기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의견을 내야 한다. 이렇게 하자 하면 그대로 따라오고, 저기로 가자 하면 또 그대로 따라가고. IT 업계는 특히 심한 것 같다.
노상범: 진짜 문제다. 문제는 정부 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IT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모두 반성해야 돼. IT 쪽 노동자들은 모래알처럼 서로 결집력이 없었다.
빈꿈: 제발 좀 뭉치자. OKJSP도 좋고, IT 개발자 협동조합도 좋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단체도 좋겠다.
노상범: 모여서 정책을 위한 화염병을 던져야 한다.
빈꿈: 그런데, 예를 들어 의원실에 전화해서 무어라 말해야 하나. (웃음)
박기일: SW 정책에 신경 써 달라고 해야지.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