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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오유 글자수 제한이 좀 빠듯하네요...
원래 써놓은 분량을 오유에서 커버를 못하길래 나눠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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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과 그림자 -2-
“솔루즈, 그럼 이따가 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공주는 그녀의 호위대장에게 평소에 하던 약속을 하고는 의무적으로 그녀의 백성을 만나기 위하여 계단을 내려갔다. 솔루즈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녀의 운명이, 그녀가 원하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겪었어야할 수 많은 구속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자기 자신은 그런 운명에 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위안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운명을 비꼬거나 그녀를 비웃지는 않는다. 얼마나 그녀가 계속해서 아파해왔는지 알기에 솔루즈는 오히려 그녀의 곁을 더더욱 멤돌면서 그녀를 지켜주려할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모두들 그녀의 미모와 신분을 찬양하며, 그리고 그녀가 차기 왕위를 이을 왕위 계승자라는 것에 그녀를 찬양하며 그 어떤 사람도 공주가 괴로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렇기에 솔루즈는 더더욱 그녀에 대한 마음이 깊어져갔다. 자기 자신이 아니면, 그녀의 마음 속을 보듬어 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그 마음은 커져갔고, 그녀의 마음을 감싸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남은 것은 공주가 자기에게 의지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강제로 그녀를 안지는 않는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 한, 그녀를 먼저 않을 일은 없을 것이다.
∀
솔루즈는 크리스탈 왕국의 호위대장을 맡고 있는 젊은, 아주 미래가 유망한 유니콘이었다. 그에게 크리스탈 왕국은 그가 사랑하는 고향이자 집이었으며, 간혹 그곳을 떠나 캔틀롯으로 가는 날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는 자기의 고향 크리스탈 왕국을 사랑하였다. 물론 지금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하나뿐인 세리아 공주였지만, 그는 공주와 왕국 모든 것을 사랑하였다. 그 둘은 그가 마음을 두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던 어느 날, 솔루즈는 대장으로서 의무를 잊지 않은 체 궁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왕국의 변방 쪽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동안 왕국을 위협하는 그 어떤 외침도 없었기에 호위대장이라는 직책은 있지만, 나라를 지키고 또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군대는 그렇게까지 규모가 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솔루즈에게 이 왕국은 모든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항상, 경비를 서지 않게 된 장소중 하나이지만 여전히 드넓은 왕국을 한 눈에 모두 바라볼 수 있는 궁전의 꼭대기에 매일 밤 올라와 왕국의 전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대장?”
솔루즈 휘하의 한 젊은 병사가 밤하늘을 향해 눈빛을 계속 쏘아대는 그의 상사에게 말을 건다. 이 젊은 병사는 처음엔 군인, 군대라는 것에 대해서 선망과 낭만을 품고서 자진 입대를 하였지만, 생각보다 평화로웠던 그의 고향과 그를 날마다 괴롭히는 인력 부족, 그리고 그에 따른 잦은 불침번 초소 경계로 인해 내가 왜 이 곳에 와서 이 고생을 하는가 하고 자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괴감에 빠져 있던 젊은이였다. 그런 그에게 그의 상사인 호위대장 솔루즈는 한 때 군인으로서의 또 다른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 자기 자신의 눈으로 군대가 어떤 것인지 느낀 뒤에는 그저 저 사람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궁금할 따름이었다.
“자네는 훌륭한 군인이란 어떤 이를 이르는 것인지 아는가?”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빙 돌려 말하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상사이기에 젊은 병사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한다.
“그야 전투에서 가장 높은 훈공을 올린, 전쟁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틀렸다. 훌륭한 군인은 잘 싸우는 군인이 아니라 잘 지키는 군인이다. 잘 죽이는 군인이 아니라 경계를 늦추지 않고 적군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 군인이다. 그래야 전우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솔루즈의 말에 젊은 병사는 사실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듣고보니 제법 맞는 말인 것 같아서 거기에 더 이상 토를 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젊은 병사의 눈에 솔루즈는 그저 하염없이 지평선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뿐이었다. 적군이라는 것이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것은 솔루즈와 젊은 병사의 부모와 조부모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며, 사실 역사적으로 누군가가 이 왕국을 공격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따라서 군대라는 것은 이 나라에 있어서 더더욱 형식적인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도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젊은 병사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었으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대외적으로 위협적인 움직임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솔루즈는 다시 단호하게, 군인으로서 군인답게 대답해 주었다.
“만일 그 혹시 하는 상황이 아무도 모르게 닥쳐온다면, 그럼 어떻게 할 터인가? 언제 생길지 모르는 불안으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일말의 만약을 위해서 군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말하자, 그 젊은 병사는 더 이상 말이 없어졌다. 솔루즈는 그 병사를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경계에 임하였다. 아무런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무리가 많은 것이었지만, 그가 사랑하는 고향과 사랑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몸의 피로함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그 젊은 병사가 되돌아 가지 않았던 것인지 뒤에서 다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대장.”
하지만 무엇인가 달랐다. 이번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엇인가 평범한, 일반적인 포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무엇인가에 의해 크고 길게 울리면서, 듣는 이의 마음 속 들키고 싶지 않은, 찔리고 싶지 않은 한 쪽 구석을 찌르는 듯한, 마치 간지럽게 마음 한 켠을 살살 긁어오면서도 기다란 손톱의 날카로운 끝으로 가장 아픈 곳을 비수처럼 찌르는 듯한, 마치 뱀과 같은 목소리였다. 마치 사과를 권하는 에덴 동산의 뱀같은 목소리에, 솔루즈는 미처 고개를 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건 마치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을 때 누군가가 쳐다보는 듯한, 그런데 정말 어떤 무서운 존재가 있을까봐 미처 쳐다보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꺼림찍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정말 이 나라가 정말 무너진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솔루즈는 그 말에 용기를 내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크리스탈 왕국의 군복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포니는 솔루즈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으면서 그의 앞에 분명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비어있는 첨탑의 경계 초소 안이 갑자기 흉물스러운 비웃음과 경박한 웃음소리로 가득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초소 안의 촛불이 갑자기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춤을 추는 듯 혹은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몸짓을 하듯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흔들리는 촛불 뒤로 길다란 그림자도 뒤따라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초소 안의 그림자가 요동을 치더니, 마침내 그 그림자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떨어져 나와선 기다란 뱀, 어쩌면 용의 그림자와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촛불이 멈추었을 때, 모든 그림자는 사라지고 오직 그 기다란 그림자. 용도 아닌, 뱀도 아닌, 그저 흉물스러운 기다란 짐승의 그림자만이 홀로 있을 뿐이었다.
솔루즈가 정신을 차리고 그 그림자를 바라보았을 때, 마치 그 그림자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듯 했다. 느낄 수 있었다. 그림자이기에 오직 검은 그늘만이 있고 눈동자도, 눈꺼풀도, 눈썹도 무엇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자가 자기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넌... 넌 도대체 뭐냐?!”
난생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공포에 겁에 질린 솔루즈는 되려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며 최대한 겁먹지 않은 듯 그림자를 향해 소리를 쳐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오히려 더더욱 겁먹은 듯 나약해 보였다.
솔루즈가 호통을 치자 그림자는 아주 잠깐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멈춰서 있다가 갑자기 벽을 타고 날아가듯 올라가더니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림자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마지막 하나 남아서 춤을 추던 촛불은 꺼져버렸다.
완전한 암흑,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그 가운데에 마치 악귀가 비웃는 듯한 깔깔깔 소리.
그리고 갑작스럽게 촛불이 켜졌다. 좀 전의 그림자 괴물에 의해 빼앗겼던 그림자들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와 있었고, 모든 것은 갑자기 정상적으로 되돌아온 듯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괴물의 인기척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좀 전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었다. 눈앞보다 더 가까이, 코앞보다 훨씬 더 가까이.
거울이 없기에 보이지 않았지만 솔루즈는 느낄 수 있었다. 그 그림자는 자기의 몸 위에 앉아있었다. 그의 발굽에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올라와선, 목을 사다리삼아 한 뼘 한 뼘 서서히 올라오더니, 그림자로 이루어진 입이 움직이는 것이 솔루즈의 피부를 통해서 느껴졌다. 그리고 마치 바로 옆에서 귓속말을 하는 듯, 아니, 마치 귓속에 있는 무엇인가가 귓구멍 안에서 직접 말하는 듯, 좀 전에도 있던 그 공포스런 목소리가 이번엔 귀에서부터 시작되어 머릿속을 찌르는 듯 들려왔다.
“혼돈.”
그 말은 바로 좀 전에 솔루즈가 물어보았던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이어서 또 다른 말을 했다.
“혹은, 디스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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