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최윤정기자>
△시작하며=결자해지의 마음으로 글을 쓴다. 15일 밤부터 소용돌이 친 '전인권 파문'을 보면서 너무나 처참할 따름이다. 이제는 전인권이 고 이은주를 사랑했다는 이유 때문에 유족들이 고소를 검토중이라는 기사까지 보도되고 있다. 고 이은주의 가족은 물론 절친한 친구들, 그리고 전 소속사와 팬들도 모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전인권 옹호'나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사실 전달'을 위해 딱 한가지만 부탁하고 싶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좀 더 담담한 마음으로 돌아볼 것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인권 파문'으로 치닫게 된 일련의 경위를 정리한다.
△6월9일=조선일보가 '세상과 부딪치기 보다 끌어안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가수 전인권의 자서전 '걱정말아요, 그대' 출간 소식과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책 머리말에 한 줄 적어 넣은 "은주가 살아있다면 '애썼어요, 전인권 만세' 문자 하나 보냈을텐데"를 인용하며 전인권과 고 이은주의 남다른 친분이 짤막하게 언급돼 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다 아는 사실. 세상을 떠난 이은주에 대한 전인권의 안타까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고 그게 전부다. "은주가 문자 보냈을텐데"라는 말에 팬들이 발끈할 이유는 없었다.
△6월10~14일=전인권의 책 홍보를 맡은 측에서 담당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출간소식을 알렸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기사를 필두로 전인권의 책 출간소식이 짧은 기사로 여러 매체에 보도됐다. 또 전인권 인터뷰가 연일 진행됐다. 홍보담당은 전인권의 매일 밤 공연과 주말 지방공연을 제외하고 인터뷰 시간을 여러 매체에 배정하느라 골머리를 앓을 만큼 '전인권에 대한 매체들의 높은 관심'에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전인권은 14일의 경우, 무려 6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뉴스엔도 인터뷰 요청을 했고 뉴스엔과의 인터뷰는 15일 오후 2시 서울 삼청동 초입의 북카페 야외 뜰에서 진행됐다.
△6월15일 오후 2시=전인권을 처음 만나는 기자에게는 '52세의 로커' '자유분방한 야성의 가수' 같은 이미지가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다소 대하기 어려운 인터뷰 상대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전인권은 최근 이어진 인터뷰에서 연일 받았을 비슷비슷한 질문에도 성심껏 답변을 들려줬다. 전인권이 뉴스엔 기자에게 고 이은주가 보냈던 문자메시지를 공개한 것은 "은주가 살아있다면 문자 하나 보냈을텐데"라고 책 후기처럼 쓴 한 줄짜리 때문이었다. 전체 인터뷰 중 이은주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일부분이었다.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전인권의 대화법은 자유로웠고 계산된 틀이 아니라 종횡무진 달렸다. 전인권은 마치 아이처럼 여전히 기쁜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서글픈 마음으로 이은주의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전인권은 공개한 것처럼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였고 "은주 때문에 문자보내는 것을 배웠다.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은주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인권은 이 자리에서 "사랑했다" 앞에 "서로"라고 강조하거나 "우린 남녀간의 사랑이었다"는 말을 절대 한 적이 없다. "지울래야 지워지지가 않는다"는 말로 여전히 보관된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은주의 죽음을 더 애통해했던 것이지 "이것이 연인의 문자였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받은 선물도 태엽을 감으면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인형같은 것들이었다. 만약 전인권이 다른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사랑의 징표'라는 표현을 했을 법도 하지만 선물 얘기는 이은주의 세심하고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남녀간의 사랑'으로 몰고가려 했다면 적어도 목걸이나 반지 얘기라도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전인권은 이 자리에서 "그럼 이은주에게 선물한 것은 없냐"는 질문에 "딱 한 번, 핸드폰을 생일선물로 줬다. 그런데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 바꾼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었는지 모른다"고 답했다. 과연 유족들이나 팬들이 분노하는 것처럼 전인권의 사랑고백이 '남녀간의 은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이런 모습이 가능했을까.전인권은 분명 '전인권식 문법'으로 "(은주를) 사랑했다"고 말했다.수많은 팬들이 고 이은주에게 죽음 이후에도 식지 않은 사랑을 보내듯이.
다만 전인권은 "그런데 왜 이제 이런 (사랑) 고백을 하느냐"는 질문에 "어떤 오해를 불러올까봐 그동안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은주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나도 편안해지고 싶다"고 말했다.서로가 서로에게 열렬한 팬으로서 "친구 이상의 친분을 나눴다는 게 무슨 죄인가"라는 말과 함께.전인권은 또 "나도 이제 시간이 흘렀으니 말 좀 해야겠다"며 "외로워서 잊어야겠다"는 농섞인 말도 덧붙였다. 말 한마디가 아니라 대화의 앞 뒤 맥락을 생각하면, 너무나 빨리 세상을 떠난 '사랑했던 후배 이은주'에 대한 아픈 마음의 표현이었다.
△6월15일 오후 6시○○분=뉴스엔은 전인권과의 인터뷰 기사 1탄을 포털사이트에 전송했다. '전인권,(이)은주를 사랑했다'는 제목으로 전인권이 공개한 문자메시지,이은주를 사랑했다는 고백, 이은주를 위해 쓴 시나리오의 영화화가 그녀의 부재로 무산된 것, 고 이은주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 언젠가는 발표할 계획이라는 것 등 주로 고 이은주와의 남다른 친분관계를 다룬 내용이다.
△6월15일 오후 9시20분=인터넷 매체 마이데일리가 이날 밤 전화인터뷰를 통해 '전인권, 이은주와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마이데일리는 앞서 뉴스엔에 보도된 것을 전인권에게 확인하며 '어떤 사랑'인가를 질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6월15일 오후 9시20분 이후='남녀간의 사랑이었다'는 표현을 둘러싸고 전인권에게 사실을 확인하려는 각 매체 담당 기자들의 전화통에도 불이 나기 시작했다. 전인권은 이중 일부 매체와 전화통화를 했다. 전인권의 한 측근은 "어떤 종류의 사랑이었냐는 질문에 전인권은 남자이고 이은주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럼, 남녀간의 사랑이냐'고 (전인권이) 대답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표현은 사랑의 에로스를 의미하면서 이은주의 가족과 전 소속사 측이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소동을 겪은 전인권은 연합뉴스와의 뒤이은 전화통화에서 '레옹과 마틸다'를 예로 들며 자신과 고 이은주의 관계를 '정의'하기도 했다.
△6월16일0시 이후=전인권은 자신의 핸드폰은 물론 매니저, 홍보담당자 등에게 모든 (매체의) 전화를 받지 말라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실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고 '추악한 사랑' '무책임한 폭로' '스토커식 폭로' 등으로 묘사되며 '전인권 파문'이 됐기 때문이다. 전인권의 사랑고백이 '아름다운 고백'이거나 '용기있는 고백'이라고만 단정지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팬들이 '이은주를 사랑했다'는 것은 문제가 안되고 그녀의 곁에서 열렬한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은주를 사랑했다'는 전인권만 문제가 되는 까닭 또한 짚어야 할 사안이다. 직접 얼굴 한 번 마주하지 않은 팬들도 그녀를 사랑하는데, 곁에서도 지켜본 전인권은 그녀를 사랑하면 안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고 이은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전인권 죽이기'로 잘 못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유족들이 전인권 고소를 검토중이다"라고 보도한 스타뉴스 등은 '사랑고백'의 당사자인 전인권이 어떤 뉘앙스로 사랑을 고백했는지, 직접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6월17일=오마이뉴스는 '은주 죽음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는 제목으로 지난 14일 가졌던 전인권과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기사 서두에는 인터뷰 이후 벌어진, 소위 '전인권 파문'에 대한 고민이 적혀 있다. 하지만 16일 어렵게 이뤄졌다는 오마이뉴스와 전인권과의 전화통화가 말해주듯 전인권의 사랑고백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고 이은주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이자 가슴 아픈 추억이다.
△맺으며=전인권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은주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적어도 전인권을 '추악한 늙은이'로 오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난하는 팬들이 있을지언정, 어쨌든 '아름다운 고백'일 수 있었던 전인권의 사랑고백은 뉘앙스의 미묘한 오해와 한 쪽 방향으로만 치닫는 분위기 속에서 쉰 둘의 록커를 '주책바가지'이거나 '무책임한 스토커'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전인권과 고 이은주가 남다른 친분을 나눴다는 것의 진실은 오로지 두 사람, 전인권과 이은주만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는 표현의 애매함이 비난의 대상이 될지는 몰라도 전인권은 "은주를 사랑했다"고 고백했을 뿐이다. '전인권 스타일 문법'을 설령 모른다쳐도, "순수하고 진실된 이야기에 감동하던 그녀를 사랑했다"는 고백이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고 이은주를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전인권은 그녀를 사랑하지도 말았어야 했고 사랑했다고 해도 입 밖으로 사랑했다는 말도 꺼내지 말라고 한다면 그건 '사랑의 이기심' 아닐까. 한국 록 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던 쉰 둘의 로커를 '사랑했다'는 말 한마디로 '추악한 남자'로 만들어버린다면, 그건 매체의 폭력이고 인터넷에서 자행되는 또 하나의 ‘왕따 사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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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씨와 처음 인터뷰한 기자가 쓴 글인것 같습니다.
저도 전인권씨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실망했었어요. 그런데 기사를 읽고나니 괜한 오해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