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군대란?] “Red Army(붉은 군대, Красная Армия - 쿠라스나야 아르미야)”는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 라는 의미로 러시아어의 정식 명칭은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ая Красная Армия”라고 한다.
원래 적위대(赤衛隊, Red guard)라 불리는 것은 1918년의 러시아 내전시에 볼세비키(러시아공산당)의 주도로 조직된 무장 세력을 말하며. 이후 1922년 “소비에트연방군”으로 창설된다.
“붉은 색”은 노동계급(working class)이 자본주의(capitalism)와 대항하여 투쟁에서 흘린 피를 의미하는데 1946년부터 소련은 공식적으로 소비에트의 군대(Soviet Army)라고 명명하였으나, 서방세계에는 냉전시대 동안에도 그들을 “붉은 군대”라고 불렀다.
[붉은 군대의 역사] 1918년 1월15일, 러시아 공산혁명이후 집권세력이 된 볼세비키는 그 때까지 있던 적위대를 모체로 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의 창설을 선포했다. 공식적으로는 1918년 2월 23일에 “붉은 군대의 날(Red Army Day)”이며 당시의 독일제국이 점령하던 Petrograd 와 Moscow에 진격한 날이며 승리한 날로서 붉은 군대의 창설 기념일이 되었다.
붉은 군대의 창설을 축하하는 스탈린 동무(믿으시면 코렁탕) 2월 23일은 소련연방의 주요한 국경일이 되었으며, 후에 “소련연방군의 날(Soviet Army Day)”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조국러시아를 수호한 날”로서 공식 국가 행사를 벌이게 된다.
공식적인 창설자는 1918년에서 1924년까지의 전쟁에서 인민위원장(People's Commissar)이었던 트로스키(Leon Trotsky)로 알려져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시절부터 트로츠키는 군사 부문을 책임지고 있었고, 레닌이 정치 지도자였다면, 트로츠키는 군사지도자의 역할을 맡았다.
여성의 전투참여는 '개념'이다. 창설 초기의 붉은 군대는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1차 세계 대전까지 서구에서의 부르주아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귀족장교계급”을 배척하고 “평등한 세상의 평등한 군대”의 이념으로 순수한 지원군의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지휘관들(officers)은 민주적인 선거의 형태로서 선출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미국의 독립전쟁에서도 나타났는데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고귀한 것이었으나,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서는 효율성이 의심된다.
평등주의자(공산주의자)들이 가장 표본적 계급사회인 군대를 개혁하여 민주화한답시고 군대의 계급제도를 없애 버림으로써 소련의 「붉은군대」가 20세기 최초의 계급 없는 군대가 되었고,
그리하여 하급자(부하)들이 어떤 상관과도 「계급장 떼고 맞짱 뜰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로써 공산주의자들은 「계급 없는 세상,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들의 이상을 군대에서까지 실현하기는 하였으나, 그 결과 상관이 부하 앞에서 눈치를 보아야 할 만큼 지휘관의 권한(지휘권)이 약화되면서 부대를 제대로 지휘할 수 없어 부대가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임무수행도 어렵게 되었다.
어쨌든 1918년 5월 29일에 이르러 “지원병” 개념이 없어지고 “징집병”의 제도로 바뀌게 되며 18세부터 40세까지의 남자들은 “붉은 군대”의 병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볼세비키는 그 유명한 “정치위원(military political commissars)을 군대에 배치시키는데 이것은 공산주의 군대의 기본구성이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의 김정일이 고위 군관급 회의에서 군지휘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야전사령관의 긴급작전 지휘권”을 그의 아버지인 김일성에게 승인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김정일은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아바이수령동지…기리니까니 전투현장에서 지휘관 동무들이 긴박한 상황에서 군대의 작전을 지시해야 하는디 고조…정치위원회의 결정을 기달리려구 있으면 벌써 적군놈들이 냅다 공격해버리면 우왕좌왕하다 다죽고 맙네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김일성은 갑자기 불 같은 호령을 하며 고함을 질렸다고 한다. 당시의 김일성의 말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뭐시기 개풀 뜯어먹다 옆구리 터져 죽는 소리하는 게야!!! 정치위원의 결정없이 군을 움직이게 하면 말이야….. 당장 너 놈의 머리위로 대포알이 날아오는 기야! 이따구 정책안을 기안한 놈 당장 끌고 오라우!!!!!”
사실 “Enemy at the gate”라는 영화를 보면 소련의 정치위원들의 역할을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제대로 군사훈련도 못 받은 무식한 노동자 농민들을 강제 징집하여 데려다가 기관포가 작렬하는 독일군의 진지 앞으로 돌격시키는 무모한 행위를 보면…게다가 붉은 깃발을 휘부르며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후퇴는 아군병사를 사살하는 정치위원들을 보고 있으면… 일본의 “반자이” 돌격은 감히 명함도 제대로 못 꺼낼 정도이다.
이것은 붉은 군대가 가지는 당시의 특성(군사훈련부재, 미숙한 지휘관, 공산당 정치위원들의 광기)에 기인한 것이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소련의 군부는 이를 통감하고 대대적인 군조직 보완과 전문화의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나치 독일군의 소련연방을 침공 시, 붉은 군대는 약150만명이었고, 계속되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1500만에서 2000만명까지 늘어났고(이때 700만에서 1000만명 가까이 사망) 종전 후에는, 약500만명까지 감소하고 냉전의 종결 시에는, 300만명 까지 축소 되었다.
초기에 150만명이라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들을 지휘하는 장교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였는데 (사실 정치위원이란 녀석들은 군인이기 보다는 빨갱이들이다.) 그나마 유능했던 재정러시아 출신의 장교들은 거의 대부분 숙청되었다.
이러한 전문 장교들은 그나마 군사지식이나 전투경험이 있는 필요한 존재들이었으나, 이들도 공산당 이념에 반대된다고 여겨지면 (이러한 판단은 정치위원이 한다.) 바로 권한을 박탈당하였다.
이러한 정치군인 조직은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대부분 “삽질”의 결과를 야기하기 마련이지만 볼세비키에게는 “군사적인 필요성(military necessary)” 보다 “정치적인 통제(political control)”가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에 “장교/군관”를 의미하는 “officer”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계급을 의미하는 부도덕한 말이라고 금기시하였으며 이 대신에 “지휘하는 사람”의 뜻으로 “commander”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였다.
게다가 장교들이 어깨에 붙이는 견장과 계급도 폐지되었다. 그리고 군대 직급이란 것도 순수하게 기능적인 직급으로 바꿨는데 예를 들어 “Division Commander” 또는 “Corps Commander” 이다. 1924년에 이르러 이러한 군대의 직급/계급 시스템은 “서비스 카테고리(service categories)”의 형태로 K-1(가장 낮음)에서부터 K-14(최고 높음)로 등급제로 보완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서비스 카테고리라는 것도 일종의 계급이며 지휘관으로서의 경험치와 능력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계급장” 이란 것은 이러한 카테고리를 나타내는 것이며 지휘관이라는 “직책(Position)”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쉽게 말하자면 K-2급 지휘관이 열명 있는데 열명 모두가 실제 일정의 군부대를 지휘하는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며 “장군”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실제 당사자가 어떤 직책을 맡았는 지를 표기하지 않으면 식별이 불가능한 불편함이 있다. “comrade deputy head of staff of corps” 라고 하는 경우, “사단 지휘부 수뇌의 대행자 동지”…라고 하면 뭐 하는 녀석인지 대략적으로 밖에 알 수 없다.
그런데 K-9 직급의 지휘관이 “연대를 지휘하는 사람(Regiment Commander)” 라는 직책을 가지게 되면, 모든 것이 명확해 진다. 우찌쨌던 이런 시스템은 일반인들에게는 서열관계를 파악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필자: 특히 영문자료를 해석하여 자료를 만드는 경우, 소련의 군관들의 실제 계급명을 정확히 파악하거나 주변인물과의 상하관계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거나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1935년 9월 22일에 이르러 이 골치 아픈 “서비스 카테고리(service categories)”는 폐지되고 개인별 계급이 도입된다. 새로운 계급은 폐지된 직급별 계급(titles)과 일반 계급(ranks)가 짬뽕된 것이었다. 당근 더 헷갈린다. 예를들어 중위 또는 대위(보통 중대장 또는 대대장이다)를 나타내는 “Lieutenant”라는 개인계급도 있어고 동시에 대대장을 나타내는 “Comdiv” (Комдив, Division Commander)라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기능별 계급도 섞여 있어서 정치위원들은 예를 들어 “여단2급정치위원(Brigade Commissar 또는 Army Commissar 2nd Rank)”라고 칭하고 기술병과는 예를 들어 “대대3급기술자(Engineer 3rd Rank 또는 Division Engineer)” 등으로….게다가 의무, 병참, 지원…등등…(헷갈린다….)
그래서 1940년 5월 7일, 11월 2일에 이르러 계급체계는 당근 재수정/보완되게 된다. (계속 삽질중)
1942년 10월 9일 군사위원회 시스템은 폐지되고 당근 위원회 계급들도 없어지게 된다. 1943년에 이르러 이러한 잡다구리한 계급은 통합되며 기능별 분류도 폐지되게 된다(비공식적으로는 일부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지만). 장교(Officer)라는 명칭도 공식적으로 사용되게 되며 견장이나 계급장이 서방의 것처럼 바뀌게 된다.
1943년경에 정착된 군계급과 명칭은 드디어 계속 유지되어 사용되게 되었다. 결국 초창기의 지원병 중심의 붉은 군대의 순수성이란 것은 완전히 소멸되고 서방의 것과 동일하게 “직업장교”에 의한 전문적인 군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소련의 전쟁삽화들,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슬프고 비장하면서 굳센 의지가 엿보이는게 특징적이다 [정치위원에 대하여] 정치위원(political commissar)을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군정치위원(Military political commissar)”을 말한다. 이들은 공산당에 의해서 임명을 받은 군관(軍官)들이며, 주목적은 군부대를 지휘하는 장군들을 감시하고 병사들에게 선전활동을 하는 것이며
우리나라로 치면 “국군정훈관”이 이러한 업무를 수행한다. Leon Trotsky에 의해서 소련 연방군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군대 내의 조직체계의 명령을 받지않고 오직 공산당에 의해서 지휘를 받는다.
영화/Enemy at the gate, 가운데 분이 그 유명한 "정치위원동무"이다. 이러한 정치위원 시스템의 실제목적은 군내부의 구데타(coup d'etat)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군부대의 지휘관이 당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이들에 의해서 즉시 지휘권을 박탈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거의 없었으며 정치 위원들의 주된 활동은 병사들의 사기진작과 이념교육 같은 정훈활동(propaganda)에 치우쳤다.
1942년 10월 9일자로 “정치위원”이라는 조직은 형식상 해체되었으며, “commissars”라는 그들의 직책도 “politruk(политру́к)”으로 바뀌게 된다. 이말은 정치지도자(political leader)라는 뜻이며 나중에는 “zampolit(заместитель командира по политработе)” 즉, 지휘관의 정치보좌 일꾼(deputy of the commander for political work)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그들의 권한(authority)이 변화되었음을 나타낸다. – 즉, “정치위원들은 더 이상 군사령관의 작전명령에 방해를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구소련연방이 무너지고 군조직 내에서 이들 정치위원들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어 지금은 “군의 정훈교육 담당관” 정도로 낮아지게 된다. 한마디로 “좋은 시절 다갔다!”….라고 볼 수 있겠다. (하긴 공산당이 무너진 마당에 쫓겨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겠지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2차대전은 결국 붉은군대의 승리였다. 베를린국회의사당을 점령한 소련군 >관심 있으시다면 계속 연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신)
리인액트를 하는 소..아니 러시아의 청년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한다면 당장 '코렁탕 오케이?'(ㅅㄹㅁ대부업체 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