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저(低)임금의 미스터리에 빠졌다. 경기가 점차 반등하고 고용도 나쁘지 않은데, 이상하리만치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임금 상승세가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계 소득이 오르면서 소비가 개선되고 덩달아 기업 생산도 증가하는 경제 선순환 구조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상하리만치 안 오르는 임금
10일 한국은행의 해외경제포커스 보고서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실업률은 2011~2013년 중 7.9%에서 지난해 6.3%로 1.6%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취업자 수 증가율도 연평균 0.9%에서 1.6%로 상승했다.
하지만 임금 상승률만큼은 금융위기 직후부터 2% 내외에서 큰 변동없이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완전고용’일 정도로 일자리 사정이 좋지만, 임금은 그에 비례해 오르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의 실업률은 4.6%로 금융위기 이전인 2001~2007년(5.2%) 수준을 하회했다.
그런데 명목임금 상승률은 고용시장이 호조를 보였음에도 오히려 내려앉았다. 올해 상반기 2.4%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1~2007년(3.2%)보다 0.8%포인트가량 더 낮은 것이다. 올해 상반기 실질임금은 0.2% 오르는데 그쳤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럽연합(EU)의 통계기관인 유로스탯의 자료를 보면, 최근 실업률과 임금 상승률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업률(9.5%)은 최근 3년인 2014~2016년(10.8%)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고용은 꾸준히 개선됐지만 임금은 반대로 움직였다. 1분기 명목임금 상승률은 1.4%로 최근 3년 평균 1.5% 대비 떨어졌다. 실질임금은 오히려 0.3% 하락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실업률은 2010년 이후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임금은 1% 미만의 낮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고용이 좋아지면 임금도 오른다는 ‘오랜 믿음’이 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위기를 거치며 기업들이 부쩍 몸을 사리면서 투자가 축소되고 기술 혁신이 더뎌진 영향이 첫 손에 꼽힌다. 이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둔화됐고, 기업이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추세가 지속되는 상황의 90% 수준에 머물렀다.
최기산 한은 미국유럽경제팀 과장은 “과거 경기침체기 때와 비교하더라도 최근 노동생산성 부진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일하는 노인이 부쩍 많아진 것도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저임금의 고령층 취업자 비중은 커지는 반면, 고임금의 중장년층 취업자는 감소한다는 것이다.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