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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247562
    작성자 : ghettoparty
    추천 : 33
    조회수 : 2809
    IP : 125.131.***.19
    댓글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9/30 14:34:21
    원글작성시간 : 2009/09/30 12:02:55
    http://todayhumor.com/?humorbest_247562 모바일
    패밀리가 떴다(2)
    문래는 그날 밤 잠을 뒤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것인지,
    창녕 조씨 가문의 24대 장손으로써 조상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것은 아닌가 생각에 또 생각을 거듭했다.
    조문래 그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병적일 정도로 강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받아오던 가정교육의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창녕 조씨의 시조인 어르신이 누구라고?'
    '조계룡(曺繼龍) 어르신입니다.'
    '아간시중공을 지낸 조상님은 누구더냐?'
    '......조...'

    한대, 두대, 세대. 이십대, 백대.
    문래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머리에 완전히 새겨질때까지 혹독한 체벌을 견뎌내야만했다.
    그의 종아리에는 인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흔적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진해질수록
    조상에 대한 자부심은 커져만 갔다.

    '패밀리가 떴다.'
    이름도 정말 요상스럽다. 패밀리라는 단어 말고도 가족, 겨레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새로운 것, 외국의 것만 찾으려 하고 우리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통탄하기만 하다. 이 꼴을 아버님께서 살아계시더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그는 이런 저런 생각속에 잠이 들었다.




    "여보, 일어나셔요."
    벌써 아침인가 보다. 밤새 잠을 뒤척인 문래는 충혈된 눈으로 마누라를 바라본다. 마누라는 벌써 이부자리를 개어놓고 아침밥상을 차려 놓았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향긋한 봄나물들이 상에 올려져있었다. 문래는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덜렁 올려놓고 아무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마누라는 그런 문래를 새침하게 바라본다.

    "여보, 저 그 이장님댁 서울 가는거 있잖아유..."
    마누라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그 방송국 양반들한테 물어보니께 ... 나두.. 나두 같이 가도 된다고 하드만유...? 나도 같이 가도 될..."
    "시끄러! 집놔두고 어딜 쏘아다녀! 밥이나 묵어!"
    마누라는 잠시 주춤하더니 지지않고 대든다.

    "나도 서울구경 해보고 싶단 말여유. 이런 기회가 없으면 평생 서울을 언제 가본당가. 이장댁 사모님이, 서울가먼 두르라고 고운 스카프도 한장 사준다 했당께유."
    "조씨 가문 맏며느리가 가문을 팽개치고 어딜 돌아다닌단 말야!"
    문래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마누라의 언성이 높아진다.

    "이제 조씨, 조씨 그만 좀 하세유. 조씨가 밥먹여 줬슈? 나, 이집 시집와서 득본거 하나도 없어유. 징글징글하게 시집살이만 모질게 했지, 그놈의 조씨는 찾으면 떡이 나와유. 밥이나와유. 아주 이제 조씨가 좆같구먼요!"

    문래가 그 말을 듣고 격분하여 밥그릇을 마누라에게 던졌다. 간신히 마누라를 피해 날아간 밥그릇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그 위에 누런 밥알이 어지러히 흩뿌려져있다.

    "그래 좆같으면 나가면 될거아냐!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 말을 들은 마누라의 표정이 충격으로 일그러진다. 이내 고개를 떨구고 닭똥같은 눈물을 뚜욱뚝 흘렸다.
    더이상 꼴보기가 싫은지 문래는 농사일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박차고 나간다. 

    사실 문래도 미안한 마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곱디 고운 처녀가 쥐뿔도 가진 것이 없는 농부에게 시집왔을때부터 그녀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가며 살았다. 40년 세월의 흔적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있었고, 그녀는 동년배보다 10년은 더 늙어보였다. 신혼여행 한번 가본적 없는 불쌍한 마누라. 하나뿐인 남편에게 고맙단 말, 미안하단 말 들어본 적 없는 마누라. 사랑한다고 해본 적도 없었다. 그녀를 생각해서라면 문래도 서울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창녕 조씨의 자존심이 있지 절대 그럴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이구 문래 왔구먼잉!"

    마을 주민들이 논에 도착한 문래를 반갑게 맞아준다. 봄철 모내기가 한창인 논에는 활기가 넘쳐있다. 표정이 일그러진 문래를 제외하고 마을주민들은 다들 표정이 아주 밝다. 무슨 일인지 이렇게 밝은 적은 없는 것같다. 밝은 표정의 이웃들을 보면서 문래는 더더욱 화가 났다.

    "아이구 내일이면 그거 촬영일이라면서?"
    "그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재석이. 유재석이 오는거 아녀!"
    "그러게 말여. 내 평생 유재석이를 볼줄 누가 알겄어!"
    "아이구 조용히 혀..."

    눈치가 빠른 윗집 할머니가 떠드는 이들을 제지한다. 어제 다같이 모여 문래와 한바탕 한것을 잊었냐는 듯 그들에게 소곤댄다. 알겠다는 듯 주민들은 조용히 해주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주민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즐겁게 일을 했다. 한바탕 웃음 소리가 들려오며 힘든 것도, 자식걱정도 그순간만큼은 모두 잊는다. 문래는 나지막이 생각한다.


    '그놈들이 오는게 내일이란 말이지.'




    (계속)


    *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실제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창녕 조씨인 분들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 이 작품은 3,4부작입니다. 곧 완결될 것 같습니다.
    * 부족한 글솜씨인데도 베스트 보내주셔서 정말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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