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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247017
    작성자 : 중대장
    추천 : 69
    조회수 : 1633
    IP : 216.254.***.101
    댓글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9/25 12:19:53
    원글작성시간 : 2009/09/24 23:35:50
    http://todayhumor.com/?humorbest_247017 모바일
    돈(豚) (7)

    돼지들의 탄식을 해독하니, 이런 내용이었다 하오.

    "고맙다.. 맛있다.. 고맙다.. 슬프다.. 안녕히(혹은 섭섭하다).. 고맙다.."

    김씨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하오. 

    비록 본인의 호구지책이지만 돼지를 죽일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생명을 
    죽인다는 양심의 가책을 모면하기 위해, '죽음의 탄식'을 아무 의미없는 
    동물의 신음으로 규명하려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더이다.

    한갖 미물인 돼지가, 자신이 입에 물려준 싸구려 캐러멜 두엇을 씹으며,
    맛있다는 생각을 하고, 그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김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으며, 잠시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담담하게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돼지들을 생각하니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엄숙한 기분이 들더라 
    하더이다.

    그리고, 자신이 다시 칼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섞인 푸념을
    하며 소주잔을 단숨에 털어넣는 것이었소.

    김씨와의 대담은 이후에도 몇번 이루어졌으나, 비교적 무미건조한 설계상의
    이야기로 일관되었고, 그 후 김씨는 도축장이 완공될 때까지 전주 덕진동 
    외곽의 한 조그만 재래 돼지 도축장으로 취직이 되어 간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 후 제 2 도축장이 완공되었으나, 김씨는 한참의 세월이 지나가도 
    돌아오지 않았고, 나도 대전 대흥동의 상업지구 빌딩신축 현장에 나가 
    있느라 그쪽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소. 그렇게 하다 보니 이러구러 
    육년이 흘러버렸소.

    그러다가 그 전에 내가 김씨를 만났던 그 2 도축장에서 돼지를 훅크에 달아
    올리는 호이스트에 문제가 생겼다 하여 호출을 받았소. 

    나는 설계도면을 들고 도축장으로 향했는데, 설마했던 김씨를 바로 거기서 
    다시 만났던 것이오.

    김씨는 이미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려 노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늙어
    있었소만, 그의 안광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욱 맑게 빛나고 있었소.

    김씨는 돼지들이 들어가는 죽음의 문 울타리 밖에 서 있었는데, 옆구리에는
    커다란 누런 봉투를 들고 연신 돼지들에게 무엇인가를 뿌려주고 있었소.
    그것이 싸구려 캐러멜 이라는 것을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소.

    싸구려 캐러맬을 돼지들에게 뿌리는 그의 모습은, 흡사 임종을 맞은 
    신도에게 성수를 뿌리는 사제와 같이 엄숙하고도 경건했소. 

    백정과 돼지가 벌이는, 마지막 죽음의 작별의식이었소. 

    그의 표정은 더할나위 없이 평온하고 엄숙했으며, 김씨의 모습은, 
    마치 나같은 사람은 감히 근접하기도 어려운 그런 성스러운 것이었소.

    김씨를 나직하게 부르며 그에게 다가갔을때, 나는 분명히 볼 수 있었소. 
    돼지들이 김씨를 슬쩍 쳐다보는 그 순간을, 그리고, 그놈들의 그 쌍꺼풀 
    진 깊고 큰 눈매에, 주먹만한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것을 말이오.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지금에도, 그때 김씨와 "죽음의 탄식"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지오. 

    나의 머리가 이제 반백이 되어, 나도 언제 어느때인지 "죽음의 문"을 
    지나칠지 모르오만, 김씨와 같은, 삶과 죽음을 초탈한 그런 인물이 나의 
    죽음을 위로해 준다면, 그리고 나의 입에 싸구려 캐러멜을 넣어 달래준다면,  
    가는 길이 그렇게 섭섭하지만은 않으리라 사료되오.

    기술사로 공사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나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은퇴를 
    하게 되오. 

    나의 인생을 전부 바친 공사 현장에, 나도 김씨와 같은 그런 애정을 
    가졌었는가 하는 질문을 가끔 해 보곤 하오. 

    아니, 공사 현장이 아니더라도, 나도 그렇게 혼신을 다 바쳐 몰입해온 
    그 무엇이 있는가 한번 되돌아 보곤 하오. 아직까지는 딱이 짚히는 것이 
    없소만, 언젠가는 한가지 생각이 나리라 믿소. 언젠가는 말이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그랴.
    자자, 막잔 비우고 시마이합시다. 뭐? 2차 가자구? 까짓것 그럽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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