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여자 입장에서 새벽1시라는 시간에 나오기 힘들텐데
전화로는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면서 우리집 앞으로 나와준 친구를 보고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친구의 아버지는 워낙에 고지식한 분이셔서 만나서 이야기 하는 와중에 전화오고 난리도 아니었다
"새벽1시에 나오는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나도 이제 스무살이라구요" 라고 흐느끼는 부분에서 그 친구가 얼마나 그 아버지에게서 심한 집착을 받고 그 가운데 심한 억압을 느꼈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얹혀 살고 있다
아빠와 엄마는 어릴 때부터 이혼하셨고, 그 후에 아빠는 3번의 재혼과 이혼을 반복하셨다
나의 이복동생은 2명.. 한 명은 내가 알기론 낳아준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나와 띠동갑인 다른 한 명의 동생은 나와 같이 이 집에 얹혀 살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다 워낙에 무뚝뚝하시고 고정관념이 심하신데다 고지식한 성격이셔서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책에서 대충 이런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등대에서 각자만의 신호로 소통할 수 밖에 없어서 오해가 생기는 슬픈 존재라고
내 생각과 겹쳐서 말이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이었던게 기억이 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나는 그런 존재다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틀려서 생기는 오해들로 상처입는 것을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조금이라도 가슴 아픈 말을 들으면 마음 속이 너덜너덜해진 걸레가 된 것 같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때가 있다 바로 '오늘' 같은..
그렇게 몰래 숨죽여 울어온 지 벌써 20년.. 20년이다
내 학창시절 가장 부러웠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정말 착하고 마음씨도 좋으신 분들이었다
난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영화나 동화 속에서만 나오는 그런 좋은 부모님을 가진 그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내 사정도 조금은 알고 계셔서 나도 잘 챙겨주셨는데
지금은 모두 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날 낳아주신 엄마 아빠 두 분 다 살아 계신다
하지만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는 작년부터 사업이란걸 시작하셨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사업으로 인해 1억이란 돈을 날리신 모양이다
덕분에 그 아빠의 그 딸인 나는 집안에서 제대로 미움을 받고 있다
어릴때 아빠란 존재는 내게 그저 1년에 한 두번 볼까 말까 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만날 때마다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자" 라는 말을 했었지만 지켜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믿는다. 마음만은 정말 그랬겠지만 사정이.. 사정이 있어서 지켜지지 못한 거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만날 때마다 아빠는 내게 다정하셨기 때문이다 가끔 쓸쓸한 말들로 날 슬프게 했지만 그 마음 속 본심만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왜 날 이 곳에 이렇게 버린 걸까?
피는 진하지만 정작 아빠는 내게 멀고 먼 존재에 불과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졸업하자마자 대학은 고사하고 그 사업에 나까지 끼게 되어 7개월간 아빠의 밑에서 일을 했으나 받은 돈은 30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나는 스무살이다. 내 나이에 책임질 나이가 되었으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아니 사실 이해가 안간다.. 되든 안되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말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엄마.. 음 엄마는 좋은 분이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엄마로서의 엄마는 그닥 좋은 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엄마는 매우 좋은 분임에 틀림없다
내가 3살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계속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살아왔다
지금까지 엄마와 살았던 시간은 초등학교 2학년때 1년, 중학교 1학년때 10개월, 고등학교 3학년 때 4개월이 전부다
같이 살 때마다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그만큼 엄마와 내가 살아왔던 환경과 방식이 많이 달라서 맞지 않는다는걸 의미한다..
아빠와는 다르게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게 무섭고 서럽게 했다 딸인 나에게 가슴아픈 말들로 날 마구마구 난도질했다
울고 싶어도.. 엄마 앞에선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엄마와 같이 살았던 고3.. 자해는 그 때 처음 시작해서 엄마와 헤어지고 난 후에 난도질에 가까운 수준으로 해버렸던 것 같다
엄마와 내가 같이 쇼핑하고 거닐었을 거리를 엄마 혼자 다닐거라 생각을 하니 내가 참 몹쓸년같다
나외의 몹쓸 추억때문에 엄마만 괴롭힌 것 같아서 지금까지 연락을 못하고 있다
고3 봄에서 여름 엄마와 같이 살았을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너만 아니었으면 난 지금 일본에 가 있었을거라고 근데 넌 지금 이게 뭔데"
내가 안타까워서 한 말임을 지금은 이해한다. 내가 지금 또 연락하게 되면 이처럼 엄마 앞길을 막는 상황이 될 것 같아서 연락을 못 한 지 1년이 다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정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어렵게 이모의 연락처를 찾아 이모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이모는 다정한 분이시지만, 이렇게 제멋대로 자기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하는 내가 아니꼬울 수도 있다
난 스무살이고 현재 대학은 다니고 있지 않고 알바를 하고 있다.
대학을 가고 싶지만, 사정이 이래서 지금은 대학 생각을 접어두고 있다. 굳이 대학 뿐만이 아니라도 생각해야 할 것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알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집에만 있으면 이래저래 식구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돈달라는 소리가 하기 싫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용돈 달라고 하면 "그 아비에 그 딸"이라는 그 소리가 싫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알바는 시간대가 아주 적절해서 할 수만 있다면 오래할 생각이다
집에 도착하면 11시가 다되어가기 때문에 혹시라도 가슴 아플 소리 들을 염려는 거의 없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한때 너무 힘들어서 고등학교 때 자해를 한 적이 있다
가장 안보이고 은밀한 허벅지에 아주 그냥 난도질을 했다 하고나서 내가 완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정신이 있었는지 그때 찍은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도 한 지붕 안에 사는 할머니 힐아버지께 영원한 비밀로 남을 수는 없었다
난 결국 그 사실을 들켜버렸고, 두 분께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내 생애 가장 끔찍한 기억 중에 하나다.. 그 뒤로 안하겠다고 울면서 정신이 없어지기 전까지 빌었던 기억만 난다
이런 나지만 감사하게도 보석같은 친구가 있다
내 소중한 친한 친구 두 명은 모두 수능 준비를 해야 했기에 작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할 틈이 없을 뿐더러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께 들켰을 때처럼 날 쓰레기취급하며 더 이상 친구로 인정해주지 않을까봐...
언젠간 말해야지... 했던 날이 바로 '오늘'이 되었다
사실 말하기 앞서 너무 겁이 났지만 이 모든 사실을 말했다. 어느 정도는 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지만 내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힘들었다는 것과 자해를 했었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에..
말하고 나니 후련했다 더 이상 이런 사실들을 숨긴 체로 그 친구들을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두명의 친구 모두 이런 나를 이해해줬기 때문이다... 너무 고마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런 좋은 친구가 곁에 있어서 난 행복하다..
가족들이 하는 진심이 아닌 상처주는 말들에도 나약해지지 않는 내가 되게 노력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난 정말 행복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무살이 되어 보니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세상은 너무나 많은 슬픔으로 넘쳐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난 노력할 것이다 이 악물고 행복한 어른이 되고 싶다
최근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렇게 좋아하게 되는 사람도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 그렇게 그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
나에게는 그 오빠가 첫사랑이다. 며칠 전에는 영화도 같이 봤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된다는 게 이런 느낌이고, 공감할 수 없었던 사랑노래에 공감이 가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오빠와 함께 있을 때의 느낌은.. 봄이고.. 빛이고.. 영원이다...
근데 그런 오빠가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진창인 날 알면 어떻게 될까?
지금 난 대학도 안다니는 스무살의 알바생인데 이런 오빠가 날 좋아해 줄까?
하는 우울한 생각이 떠오르긴 하지만..
더 이상 포기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엉망진창인 채로 있고 싶지도 않다
그 오빠 옆에 있어도 어울릴 만한 내가 되고 싶다
이런 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는 생각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난 조금은 나아진 거라고 생각한다
2%부족하지만 거의 다 적은 것 같다
후련하다
그래도 우리 집안은 무너질 듯 위태하고
나는 막 사랑을 시작한 특별할 것 없는 스무살에
미래에 대한 갈피도 잡지 못한 고졸인 알바생이지만
친구의 말처럼 이 악물고 독해지고 강해지자..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많으니까..
실날 같은 희망을 가지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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