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베오베에 다단계에서 도망쳐 나온게 자랑이라는 글을 보고
저도 옛생각이 나서 몇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분처럼 글을 재미있게 쓸 자신도 없고해서,,
저는 제 경험을 토대로 다단계에 끌려간 분들이 가장 많이 유혹에 넘어가는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한번 경험하셨던 분들이나,
잘 알고 계시는 분들은 굳이 읽으실 필요 없으십니다...^^;
제가 친구넘 덕분에 다단계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은 2002년 이었습니다..
월드컵 열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고,
저는 군대 제대후 1년간 휴학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한창 복학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어느날 군대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됐을 친구녀석이 전화를 해서
다급한 목소리로 ..... 블라블라...
똑~~~~같습니다.. 이런 유치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이제는 알려질대로 알려져서 더이상 속을 사람이 없을것 같았던
케케묵은 방법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데 많이 놀랐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단계 회사에 가게 된 저는...
목이 뻐근하도록 네트워크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듣게됐습니다..
저는 특이하게도 1주일간의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고
당당히 걸어 나왔네요..
(탈출 무용담을 기대하셨던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라고 해서 저는 서울까지 차비 말고는
돈을 한푼도 안들고 갔기 때문에 (당연히 지갑도 없었습니다)
빌리는 명목으로 밥도 다 얻어먹었구요..
아리따운 여자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분들과 같이 강의를 듣는다는건... 전혀 괴롭지 않습니다..
(저 공대나온 남잡니다...
저기,, 혹시 사내연애도 가능한가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합숙을 해야했던 잠자리도 당시 단칸방에서 자취하던 저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쨌건,, 교육 첫째날...
저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이 20명 정도 됐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기수라고 할 수 있겠죠.. 02 - 128기.. 정도??
말안해도 잘 아시겠지만 모두 똥씹은 표정들입니다..
"흥~! 내가 그딴 말에 속아서 다단계를 할거 같아?"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게 다 들릴 정돕니다..
오만 인상 다 쓰고,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지만
안절부절 못하고 옆에 서있는 친구넘들이 불쌍해서(라기 보다는
입구를 떡 하고 버티고 서있는 덩치들이 무서워서)
마지못해 교육을 듣고 있는....
첫째날은 별 특별할게 없는 네트워크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지겹도록 듣습니다.
둘째날...
난데없이 제품설명회를 하네요..
삼겹살 장판, 불판, 음료수 별의 별게 다 있더군요..
소개해주면서 항상 강조를 합니다..
"우리회사는 회원들에게 물건을 팔거나 팔라고 시키지 않는다." 고..
믿거나 말거나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확인해볼려면 회사를 들어가야 하니..
남는시간에는 또 강의를 듣습니다..
강의하면서 또 강조 합니다..
"우리는 절대 세뇌시키는게 아닙니다.."
세뇌시키는게 아니라는 말을 세뇌시킵니다..
셋째날..
제가 진정 얘기하려고 하는게 바로 셋째날과 넷째날입니다..
지금까지의 전문(?) 교육자들이 주구장창 읊어대는 단방향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피교육자들이 나서서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는 조금은 특이한....
교육이 시작됩니다..
자...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을 홀리느냐....
말끔하게 생긴 여자사람이 앞으로 나섭니다..
입사(?)한지 두달쯤 됐다는 새내기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여자사람은
저하고 같이 교육을 받고 있는 누군가를 끌고온 친구인겁니다..
뜬금없이 집안얘기가 시작됩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이름모를 지병과 끝없는 구타에 시달리는 어머니,
망나니 오빠와 철없는 어린 동생들...
세상이 지긋지긋하고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한줄기 빛이 보았노라.. 자신은 꼭 성공하여
다이아몬드가 되겠노라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립니다..
(그래.. 넌 꼭 성공해라.....)
짧게 요약해서 이렇지만,, 그 여자사람...
정말 말 잘하더군요... 어쩌면 크게 되실 분을 몰라본건지도..
이 밑도 끝도 없는 신파극이 끝나자
분위기는 숙연해집니다..
감수성이 예민하신 여자사람들... 여기서 홀라당 넘어갑니다..
지금껏 부모님이 주신 용돈과 학비로 난 얼마나 여유롭고 철없이 살았는가.. 생각이 들었을겁니다.
경기가 어렵다는데.. IMF로 실직하신 아버지 생각도 났을겁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던데... 그래! 나도 이제 부모님을 위해서 뭔가 할때가 온거야..
이것이 바로 기회야..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겠지요..
신파극은 여러 명 계속됩니다..
저를 오게 했던 친구녀석도 하더군요..
(그래. 역시 넌 사기꾼은 못하겠다....짜샤)
목요일 신파극이 끝나고 사회자가 묻습니다..
"아직까지,, 저희와 함께 하기로 결정 못하고 계신 분 계십니까??
한번 손들어보시죠.."
헉!!! 뒷통수를 한대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껏 너무나도 친절했던 사람들..
지나가면서 "저희와 함께 해요", "XX씨하고 같이 하고 싶어요..",
"XX씨한테 기대가 커요"... 등등,,
정상적인 사회생활 도중에는 도저히 주고받지 못할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들,,,,,
당시에는 웃으면서 얼버무렸지만
웃는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예의상 거부의사를 확실하게 하지 않은 것이
그들에게는 묵시적인 동의였던 것입니다..
시작할때는
"안하는게 당연하지만 한번 들어보고 결정해라.." 였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하는게 당연한데 안하려면 이유를 대라..." 라는
교묘한 흐름이 되어버렸던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결정한 사람 손들라는게 아니고,,
결정 못한사람더러 손들라니요...
정신을 바짝차린 저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슬며서 손을 들었습니다..
"손을 들었다가,,, 끌려나가서 땅에 묻히는거 아닌가?
이제 본색을 드러내려나...."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눈치를 보고 있던 몇명이 따라서 들더군요..
8명.... 20여명 중 8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하기로 결정한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강압적이지는 않지만
인정에 이끌려서, 빼도박도 못하게 될
그물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처음 왔을때 똥씹은 표정들이 다들 사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전 신파극때문에 눈물을 흘린 자국들이 있고,,,,,,,
사실 4일정도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돌아다니다 보면 정도 들것이고,,
최소한 나를 해치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들고나니
한결 편안~한 표정들입니다..
다행히 손을 들었지만, 별 일은 없었습니다..
아직 더욱 강력한 카드가 남아있었으니까요..
제정신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던 많은 분들..
여기서 확실히 넘어갑니다..
바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용어는 정확히 기억이 안납니다..)
사람들의 강의 입니다..
말로만 듣던,,,
한달에 천만원씩 통장에 꽂힌다는... 바로 그.. 사람들..
저도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유가 좔좔 흐르는..
뭔가 고급스러우면서 우아해보이는
아리따운 여자사람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입장합니다..
포스가 있더군요..
여지껏 봐온 사람들하고 뭔가 다르긴 다릅니다..
그 분께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불우했던 어릴적..
가난해서 받았던 차별과 놀림..
눈물겨운 학창시절..
남자에게 버림받고.. 낙태도 했더랬습니다..
영화속 비운의 여주인공들이 세상엔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그런 고생들을 감당했을까요....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성공을 했답니다..
통장에 한달월급으로 천만원이 꽂힌날,, 온가족이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답니다..
이 시크한 여자사람은,,
천만원을 하루만에 다 써버리면서
그동안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던 구질구질한 자신과 영영 작별을 했답니다..
지금은 얼마나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여유롭다 못해 사치스럽기까지 한 삶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면서,,
이래도 안넘어올래?? 이래도 안할래?? 라고 유혹합니다..
"잠깐!!
난 그런 얘기를 듣고싶었던게 아니라구..
남들하고 똑같이 들어와서 어떻게 살아남아서
어떻게 성공을 하게 됐는지... 그 과정이 듣고싶었단 말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쯤....
그 여자사람이 저를 지목하면서,,
같이 하기로 결정하셨냐고 묻더군요..
만 4일이 지나도록 얼굴에 쥐가 나도록 똥씹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제가 특이해보였나 봅니다..
저는 질문을 몇가지 하고,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회원들에게 물건을 팔지 않는다...
물건을 팔라고 시키지도 않는다... 그런데 제품소개는 한다..
도대체 이 회사의 수익원은 뭐냐?"
둘째는 "나는 입사 이전 얘기와 성공 이후 얘기보다는
입사 후 성공하기까지의 과정 얘기가 듣고싶다.."
였습니다....
또 조용히 끌려가는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질문은 두개였으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회사와 제가 가진 노하우를 쉽게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업 기밀입니다.."
음.. 분명 틀린 얘기는 아니네요..
또한 궤변이기도 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한테 그것도 모르고서
이 일에 인생을 걸라는 얘기냐??
난 안해!!!!!!!
저는 이때 이렇게 결정을 내렸지만,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금요일 최종적으로 다시 입사 안할 사람을 묻는 순간..
저를 포함 3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 3사람은 그날 밤,,,
중간 관리자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집요한 설득을 당합니다..
그결과,, 토요일날....
가방을 들고 그들과 영원히 작별을 고한 사람..
저를 포함 단 2명 이었습니다...
정말 달콤한 유혹과 끝없이 이어지는 세뇌들..
그런 고통을 견뎌내고,
당당히 그곳을 빠져나온 저는
큰일이라도 한듯,, 의기양양해서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인생은 역시... 그렇게 쉽게 살려고 하면 안되는거야..
값진 땀방울만이 나를 살찌우게 하는거지..
두고봐라... ㅋㅋ
7년이 지난 지금....
그친구는 다단계 그만두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저보다 더 좋은 회사다니면서 돈도 더 많이 벌고 있습니다....ㅠ.ㅠ
역시 인생은 불공평해 Ssi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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