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힘든 이야기가 간혹 있습니다.
1. 7급 공무원이 1급까지 급속 상승했던 이순신 장군.
(이 분이 승경도 놀이를 좋아한 건 이유가 다 있죠. 승진이나 파직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승진이 너무 빨라, 삼사(감사원)에서 지적했죠.
하지만 왕이 요구했고, 삼사도 태클 1번 밖에 걸지 않은 이유는...
그냥 장군인데, 배도 만들고, 돈도 벌어오고, 보급로 구축이나 판옥선이란 세계 최초의 제식화된 전투용 선박과 화약무기를 이용한 전투 교리(학익진)도 만들 줄 알고, 훈련도 시킬 수 있는 인물이어서이죠.
(전투도 잘한다는 건, 나중에 밝혀진... 죽기 몇 년 전에나 알려진 사실이고.)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오전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 넘게 1:133으로 혼자 싸웠고,
이순신이 탄 대장선에서 사상자 2명...이란 사실 때문에 21세기 영화 '명량'마저 '조선 수군이 전투로 너무 많이 죽어' 고증 오류가 되고,
노량해전에선 레이더도 없고 노젓고 바람 타느라 배의 위치 잡는게 까다로운 시절,
500여척의 배(그것도 조명 연합군. 말도 안통하는 애들 데리고!)를 가지고 야간 전투, 매복&기습&몰아가기 전투하느라... 아침 8시(!)에 돌아가셨죠.
먼치킨은 있어요. 믿기 힘들지만 그냥 믿어요...
2. 세종어제 훈민정음...이란 말이 있죠.
'대놓고 나 혼자 만들었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디 믿기지 않는 이야기이죠.
그런데... 그거 가지고 누구하고 아가리 파이팅(말싸움이 아닙니다... 이건...)했는지 아셔야합니다.
최만리 (집현전 부제학)
오늘날로 치면, 정년 보장되는 2급 공무원(정규직).
1급 공무원(비정규직)은.... 다른 직위와 겸직이라.
이 사람이 집현전 실질 업무를 책임지던 사람입니다.
거기에 이 사람이 살던 시절은 은퇴연령 지난 공직자, 금수저 집안이라 일 안해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을...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범죄를 저질러도, 비리를 저질러도 죽을 때까지 부려먹는 세종대왕' 시절이죠..
이 시절의 집현전 부제학은 실무 능력이나 업무 장악력이 없었다기 보단... 그냥 정치판의 괴수(!)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거기에 이 사람, 조선 519년 동안 218명 나왔다는 정부인증 공식 "청백리"입니다.
(2급 공무원인데, 월급 100만원 밖에 안 줍니다. 그런데 아무리 캐도 비리를 저지른 흔적이 없어요... 생각해보세요.)
왕이라고 해도, 이런 신하하고 아가리 파이팅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냥 이 시절의 집현전은 UNTOUCHABLE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밑의 직원들은 꼬장꼬장한 아저씨 (40대에 죽었으니...) 밑에서 머리 하얗게 되도록 시달리는 겁니다.
2. 그런 최만리가 훈민정음 프로젝트를 알고서 한 말이 뭐였죠?
최만리 왈: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훈민정음)를 창조하시나이까...
이 사람 목이 안 달아난 건 정말로 유능한 신하 및 공식 청백리라 가능한 겁니다.
(짐작이 잘 안가신다면... 현 한국 대통령 앞에 가서, 노동개혁이 야비하고 상스럽고 무익하다는 이야기를 해보세요...)
아마 10년 넘게 직접 개발했음이 분명한 프로젝트를 아랫 사람이 이렇게 깐다고 생각해보세요.
해고로 끝났다는 건 정말 많이 참은 겁니다...
이런 성깔 가진 책임자가 있는 집현전이라면, 공식적으로 훈민정음 개발에 참여한 인원은 없다고 여겨도 좋을 겁니다.
3. 세종대왕은 직접 개발했을까.
실록은 참 좋죠. 방대한 대사가 의혹을 다 없애주니까요.
"설총이나 나나 백성을 편하게 하자는 것인데, 너는 감히 설총은 옳고 임금은 그르다고 하느냐. 그리고 너희들이 운서(韻書: 어문학)를 알기나 하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개더냐?
만일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아니하면 누가 바로잡겠느냐. 그리고 새 문자를 '새롭고 기이한 하나의 기예(技藝)일 뿐'이라고 했는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요약: 아무 것도 모르는 놈이 내 앞에서 아는 척하냐?
물론 세종대왕이 까는 대상이 조선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조직의 실무 책임자라는 건...
최만리 죽고서... 정부 공식 인증 청백리에게 왕이 글 한 줄 안 써줬다는게... 얼마나 삐졌는지 잘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결론: 세종대왕은 언어학 덕후, 덕질 대상을 비판하면 죽을때까지 원수진다...)
4. 그럼 집현전 학사들은 뭘 했을까.
이런 부하 데리고서 비밀 프로젝트 벌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죠.
(X맨이니까...)
했다고 여겨진 일은 딱 하나입니다.
외국어 발음 교정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라고 불러!)
5개 국어하는 신숙주를 요동에 사는 언어학자에게 Q&A하러 셔틀질을 시켰죠.
최만리 입장에서 이건 납득할 수 밖에 없는게... 어떤 면에서는 표준어 제정작업이라 집현전 입장에선 하는게 당연한 일입니다.
5. 훈민정음 창제 때, 언어학 덕후 느낌이 스며들어 벌어진 일
- 지역/시대마다 다른 한자어 발음이 멸종
(입말이 아니라 글말을 통일했습니다. 선비 한정으로 한국어는 완성되어버렸죠.
그 증거로 한국 한자음은 99.9% 1자 1음입니다.
일본 DQN 네임이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몰라서 명함 돌리는 문화를 보세요.
세종대왕은 대왕 맞습니다)
- 중세 동아시아 언어의 음가 추정이 가능
두 번째가 나름 재미있는데... 덕후스러운 집착으로 음가를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중국어/몽골어 음가 추정이 가능한 이유는 '조선의 외국어 교본'인 노걸대 언해본 때문이죠.
솔직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이걸 등재 안하고 뭐하는 걸까요.
중세 기준에서 보면, 이건 진짜 국제음성기호로 각국 언어를 기록해놓은 겁니다.
(아니, 훈민정음 혜례본은 각 글자의 발음 방법 및 음가를 기록해놓은 책이었죠.
오늘날 사람들이 훈민정음을 높이 사거나 다른 언어를 표현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음성기호로 쓰는 것이 세종대왕 개인적인 개발 목적이기도 했으니까.)
해외 언어 학자들이 알아서, 한글날 기리는 이유가 이겁니다.
훈민정음과 노걸대 없었으면 알파벳도 아닌 이 동네 글자 발음 변화를 어떻게 추측할까요.
(언어학 박사 학위 취득하는데, 누가 발음 방법까지 혓바닥 어디 굴리고, 입술 어떻게 움직이라고 기록해 놓은 정석 책 던져줬다고 생각해보세요...)
2007년에 몽골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몽어 노걸대를 보고 갔죠.
14세기 몽골어, 만주어가 어떤 발음이었는지 파악하려면 노걸대를 읽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만주어와 중국어는 명청 교체기에 4000만명이 죽어나면서 서로 발음 방법이 심각하게 변했죠)
결론: 훈민정음 혼자 만든거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