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초등학교 5학년때 컴퓨터가 생겼다. 그 전까지는 친척집 아니면 친구집에서 컴퓨터를 했는데,
컴퓨터가 생기고 난 뒤 부터는 줄곧 집에서만 컴퓨터를 했다. 어느 누구의 집도 가지 않고.
게임은 그 전에도 많이 했었지만 동냥게임이라는게 사실 눈치가 굉장히 보인다. 너네집에 놀러가고 싶다 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곧 컴퓨터 한번만 하게 해줘 라는 말로 비춰질 수도 있을거라는 걸 어린시절에도 알았으니 말 다했지 뭘.
컴퓨터를 사고 난 뒤부터는, 여기저기서 게임을 복사해왔다. 시디라는 매체가 있긴 했지만 1.44 플로피디스켓 세통정도를 사서
이게임 저게임 복사해오고 집에다 깔고 반복을 하다 보니 디스켓은 항상 모자랐고 항상 고장났었다.
삼국지였던가 퍼스트퀸이였던가 심시티였던가 하여튼 그 많은 게임들을 복사해 집에다 설치하고 나면, 굉장히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었다.
그 때 당시에 죄의식을 느꼈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때는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았다. 나 뿐만이 아니라 아마 대부분이
그랬을 것으로, 정품시디를 사는 것은 굉장히 대단한 일이었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나 불가침영역처럼 느껴졌던 시절이다.
나는 많은 게임들 중에서 유독 심시티2000을 좋아했다. 전력선을 놓고 도로를 세우는 것을 넘어 건물을 올리고 구획을 정하고 수십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은, 소풍날 나를 보며 곤란해하는 아버지가 백원짜리 두어개를 내 손에 쥐어주는 현실과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아버지 어머니 몰래 숙제가 끝난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심시티를 했다. 비록 삼십분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였지만 그 시간이면
아파트단지 하나가 생기고 철도구간이 생겨나고 다리가 몇개씩 세워지는 엄청난 시간이였다.
당시 나는 친구들과 게임잡지를 돌려가며 봤었다. 게임잡지라는게 사실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광고문구 하나부터 독자엽서 한글자까지
꼼꼼히 읽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잡지 광고에서 봐 버리고 말았다. 심시티 2000의 도시를 그대로 불러와 헬기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심콥터' 라는 게임의 존재를.
2면짜리 광고만 봤을 뿐인데, 나는 욕망이 생겨났다. 이건 꼭 가져야 한다고. 학교에서 심콥터 심콥터 노래를 부르니 한 친구가 그렇게 하고싶으면
자기 삼촌에게 말해서 받아다 줄테니 디스켓 한통을 달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건 '심콥터' 였다. 디스켓에 불법으로 (당시에는 불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다운받는 그런 종류의 게임이 아니였다.
디스켓에 휘갈긴 글자로 심콥터라고 쓰여있는, 그런건 보고 싶지가 않았다. 두꺼운 패키지박스와 정품시디롬, 메뉴얼이 갖고싶었다.
학교가 끝나면 세진컴퓨터랜드에 들러서 항상 심콥터 패키지를 이리만지고 저리만졌다. 직원이 와서는 '그건 이만삼천원이야' 라고 말했을 때
나는 어쩔 줄을 몰라서 그냥 '네' 하고 대답하고 패키지를 놓길 반복했다.
우리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다. 항상 어머니와 술을 드시고 나를 앉혀놓고 왜 우리집이 가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 모종의 그 사람이 너무나 싫었다. 어린 마음이, 그래도 '심콥터' 의 존재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가슴속에서 말을 하기에, 나는 언제나처럼 술을 드시는 아버지 앞에 가서 심콥터의 이야기를 꺼냈다.
공부를 잘 할테니 이런 게임을 사주면 안되겠냐고.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술을 드시는 아버지는 화를 낸 적이 없기도 했지만, 의외로 차분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 게임이 없으면 공부를 안하겠다는 이야기냐?'
그건 아니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나에게 들어가서 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심콥터가 매우 가지고 싶었다. 그걸 사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백배 천배로 늘어나 나는 그자리에서 울면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끝내 아버지는 심콥터를 사주지 않았다. 그 해 크리스마스에도 다음해 크리스마스에도.
그러는동안 나는 크리스마스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고 우리 집 컴퓨터가 세 번쯤 바뀌는 동안 나는 심콥터의 존재를 잊어갔다.
그러나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 종종 헬기를 타고 내가 만든 도시를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세진컴퓨터랜드가 있던 자리는 피씨방으로 보습학원으로 삼겹살집으로 끝내는 헬스장으로 바뀐 지금에 와서도, 나는 가끔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그 자리를 보며 피식피식 웃곤 한다. 맞아 그땐 그거 진짜 사고싶었어 라고 말하며,
이천만원짜리 차를 끌어도 일억짜리 집이 있어도 삼백만원짜리 컴퓨터가 있어도 나는 이만삼천원짜리 심콥터를 끝내 가지지 못했기에
세진컴퓨터랜드가 있던 그 자리를 지날때마다 아쉬운마음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어찌하지 못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