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 돌입한 전효숙 사태가 기대되는 이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임명동의안을 둘러싼 1라운드 공방에서, 한나라당은 전효숙 후보자가 현직 재판관 신분이 아니라는 사실과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 헌법 111조 4항을 들어 전효숙 후보자에 대한 심사적격을 문제 삼았다.
즉 전효숙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청문회 개최는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한나라당이 법문을 입법의 취지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했지만, 헌법 111조 4항의 적용에 대해 법조계에서조차 엇갈리는 해석을 내놓자 부담을 느낀 듯 정면공세 대신 우회적인 접근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22일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 요청안을 국회에 접수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 헌법재판관 임명부터 다시 시작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절차적 하자를 치유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는 1라운드의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이 앞서 "헌법재판관을 먼저 지명해 인사청문 절차를 밟고, 다음으로 헌재소장 임명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한나라당 측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일부 헌법학자들 역시 같은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요구에 따라 실현된 이 '절차적으로 정당한 방식' 조차 비상식적인 근거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므로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한나라당의 입장에 의하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되어서 처리불가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인사청문회는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종결되지 못해서 처리불가하다는 것이다.
탁월한 창의력에 의해 고안된 이 순환논리를 따르면 세상에 내일 아침이란 것은 없다. 내일 아침이 되려면 해가 떠야 하는데, 해가 뜨려면 내일 아침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나라당이 인사청문회 요청을 거부하고 의사일정을 지연시키는데는 치밀히 계산된 바가 있다. 10월 11일부터 국회의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는 '다음주 아홉 번째 날'이나 '내달 37일'처럼 일정상 불가능하게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법정기한인 30일 이내에 인사청문회가 개최되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권으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 측에도 마지막 카드가 남아있는 셈이지만, 이것을 의식했는지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일방적 임명이 있을 시에는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해당 재판관이 속한 재판소에 정당성의 심판을 청구해보겠다는 수준 높은 유머는 높이 평가할 만하나, 대통령 탄핵 사태 때와 같이 자해행위가 되지 않을지 심히 우려가 된다.
한나라당은 논리적 해명 없는 의사일정 지연행위에 대한 비난여론이 드세지자 부담을 느꼈는지 지난달 29일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전효숙 후보자의 헌재소장 임명에 찬반의견을 가진 다수의 법학자들과 법조인들이 참여했다. 흥미롭게도 이날 열린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이 애초 제기한 쟁점인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전효숙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이 되어서는 안 되는 새로운 이유들이 급부상했다. 새로운 반대의견 요지의 첫째는 재임말기의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재판관은 다음 정권의 정책 수행에 지장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효숙 후보자가 이미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선 이상 공정한 직무수행을 하여야할 헌법재판소장으로서의 자질이 훼손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최초 국회에 상정될 당시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말기였던 사실에는 어떤 변함이 없으므로, 이제와 대통령의 재임 시기를 새삼스럽게 논하며 인사청문회 개최를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스스로 문제를 정치적 쟁점화한 한나라당이, 자신들에 의해 뜻하지 않게 정쟁에 휘말린 전효숙 후보자가 향후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따지는 것 역시 수긍이 가지 않는 태도이다.
마지막으로 위의 거론된 주제들은 모두 절차적 정당성 여부와는 거리가 먼 실체적인 논점들이고, 그러한 실체적 논점들을 토론하기 위해 법률이 예정한 절차가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논리의 치명적인 허점이다.
한나라당은 청문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의제들을 청문회 개최 거부사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사태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나라당은 마치 "일단 반대하자"는 강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반대가 필요한 시기는 정해져 있지만 반대의 이유를 고안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일 반복되는 반대 선언과 함께 전효숙 후보자의 자진 사퇴만이 해결 방안이라고 한나라당은 주장하지만 사실은 간단명료하고 공정한 방법이 아직 남아 있다.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개최하면 된다. 그곳에서 한나라당은 전효숙 후보자의 헌법재판관 임용을 반대하거나 자질을 불신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사태추이로 미루어보아서는 기상천외하고 따끈따끈한 반대 이유들이 새로이 더 탄생하고 혁명적인 법이론이 제안되는 광경까지도 기대가 된다.
어쨌든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한 자리가 바로 인사청문회 아닌가? 그러니 한나라당은 최선을 다해 반대하라. 스스로 신봉해 마지않는 절차적 정당성이 충족되는 방식으로. 바로 인사청문회에서.
2006-10-0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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