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코의 고성달님의 글입니다.
여지껏 학교에서 국사 시간에 배운 살수대첩에 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저는 왜 학교에서 강물을 쇠가죽으로 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의구심을 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쪽으로는 백지 상태인 제가 생각해 보아도 쇠가죽으로 강물을 막는다는것은 현재의 기술로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하는 고성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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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문이 남는 군사적 승리
군사적 식견으로 볼때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선뜻 이해되지 않는 군사적 큰 승리가 딱 2개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황산벌 전투에서 5만의 신라군이 5천의 계백군을 한번에 못몰리치고 질질 끌었다는 부분이고 두번째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입니다.
그런데 황산벌 전투는 저 나름대로 객관적 자료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병법에 기초해서 결론을 내린바 있습니다.
역사토론방에 몇차례에 걸쳐서 글을 올렸는데 보실분은 보시구요.
두번째로 의문이 살수 대첩입니다.
을지문덕이 청천강에서 수나라의 100만대군중 우중문이 이끈 30만 별동대를 청천강에서 수공(水攻)으로 몰살시켰다는 대목입니다.
흔히 강둑을 막았다는 그것도 쇠가죽으로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입니다.
또 당시의 시기는 겨울입니다. 겨울에 가죽으로 물을 막는다는 것은 더더욱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서 할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나라의 역사서나 중국의 역사서(수,당서)엔 분명히 고구려가 수나라를 2차례에 걸쳐서
물리쳤다는 기록이 나와 있으니 청천강의 을지문덕 살수대첩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구려가 수나라의 30만 별동대를 물리쳤을까요?
이것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는 군사메니아로서 접한 책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결론 : 수공(水攻)은 맞다. 그러나 그 수공의 水는 물이 아닌 고구려 水軍이다
이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저는 역사토론방에 삼국시대의 해전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고구려의 성공엔 수군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http://www.powercorea.com/zboard/zboard.php?id=history&page=1&sn1=on&divpage=1&sn=on&ss=off&sc=off&keyword=고성달(견적필살)&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05 http://www.powercorea.com/zboard/zboard.php?id=history&page=1&sn1=on&divpage=1&sn=on&ss=off&sc=off&keyword=고성달(견적필살)&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06 또한 신라가 통상적으로 삼국통일하는데에도 결정적 역할은 신라의 수군이었다는 것을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水攻이라하면 수군에 의한 공격이라고 해석해야 하는데 아마도 군사적 식견이 부족한 사학자들이
水攻이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상상을 하여 물을 막았다는 표현까지 유추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하작전때 고구려 수군(水軍)의 기습공격이 그 핵심
전통적으로 삼국시대 전투 방식은 산성에 은거한 농성전과 매복기습공격을 통한 보급로 차단과 유인섬멸작전이 있습니다.
그중에 살수대첩은 전형적인 유인섬멸작전에 속합니다. 상식적으로 현재도 군대가 강을 건너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역시 고대에도 똑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방어자 입장에서 공격하는 적이 가장 취약할때를 노리고 공격하는 것은 군사병법에서 상식입니다.
상식선에서 당시를 그려 봅시다.
청천강까지 도달한 수나라의 기마병(별동대)는 도하작전을 펼치기 위해서 배를 급조하였을 것입니다. 청천강까지 수나라군을 유인한
고구려군은 싸움에서 일부러 치고 빠지는 전략을 사용했으니 수나라 별동대는 전례에 비추어 도하작전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이미 그들 수나라 군사는 압록강을 도하한 경험이 있었기에 살수(薩水)를 도하하는 것은 더 쉽게 생각했을 지 모릅니다.
급조된 배로 청천강을 도하하는데 그 배엔 말과 병사가 뒤썩여 있는 형국으로서 그 상태로선 수상전을 할수 없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급조된 배로 도하하는 수나라군을 청천강으로 모두 끌여들인 상태에서 고구려 수군은 매복하고 있다가 일시에 나타나서 공격하면 그것이
수공(水功)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 고구려 수군은 더우기 전통적으로 싸움에 능한 수군이었습니다. 만반에 준비를
한 고구려 수군에 급조된 배로 청천강을 건너는 수군이 당할 수 없었슴은 불문가지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