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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누리꾼이 연예인을 죽이는 방식에 대한 고찰이란 재목
시사in 의 고재열의 독설닷컴: http://poisontongue.sisain.co.kr/1106에
있는 글 칼럼인데 한번 읽어볼만한것 같에 퍼왔어요....
시간에 많이 지나 조금 흐릿한 사건이지만 얼마전 들국화가 컴백 했길래... 좋은 글 같아서요..
일단 기자가 기자를 비판한것이라서 흥미롭습니다...
4년 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연예인 죽이기'의 메카니즘은 그대로네요.
그때 저는 '네카시즘'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인데, 네티즌들이 편협한 정보로 유명인을 매장시키는 것을 비판한 말이었습니다.
가수 전인권씨가 새롭게 '네카시즘(네티즌과 매카시즘을 합친 합성어로, 제가 만든 말입니다)'의 피해자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이은주를 사랑했다" 이 한마디에 사람들이 갑자기 전인권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죄는 아닐 것인데, 우리는 왜 갑자기 이토록 전인권을 미워하게 된 것일까요? 우리가 전인권을 갑자기 미워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전제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전인권은 이은주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혹은 전인권은 이은주를 사랑할만한 사람으로 부족하다.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죽은 이은주에게 누가 되는 사실이다)의 전제를 받아들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인권은 이은주와 사귄 사실을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특히 이 전제는 전인권이 책 판매를 위해서 열애설을 흘렸다는 혐의를 덧씌우게 됩니다). 별로 설득력 있는 전제도 아니지만, 우리는 이 전제를 너무도 쉽게 받아들이고 갑자기 전인권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전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지금 이 글의 목표입니다. 그것은 '전인권 죽이기'의 궤적을 되짚어보면서 참전용사(기자들)들의 행태를 분석하면 간단하게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전제의 부당함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전제는, 굳이 반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법적으로 따져도 이혼남인 전인권은 결격 사유가 없습니다. 그 대상이 젊은 여배우였건, 그 여배우가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었건,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에 우리가 기분 나빠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음 전제는, 전인권은 이은주를 사랑한 사실을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으로 특히 자서전 출간을 앞두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얄팍한 상술이라는 것입니다.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면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것입니까? 만약 4년 동안 사귀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전인권은 충분히 참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연인의 미래를, 여배우인 연인의 현재를 위해서 그는 기꺼이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 이 전제에 달라붙는 소전제는 상대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부터 우리는 망자의 결함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인권이 이은주의 나쁜 점을 얘기했습니까? 그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의 하나인 사랑을 했고 그는 그 사실을 얘기 했을 뿐입니다. 말한 시점을 문제 삼는 분도 있습니다. 자서전이 출간되는 왜 이 시점에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책을 팔기 위해서 일부러 스캔들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 지금이냐? 답은 간단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기자들이 전인권에게 이은주와의 관계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전인권이 책을 냈다는 소식에, 저를 포함해 많은 기자들이 악다구니처럼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어렵게 인터뷰 약속을 잡았습니다. 인터뷰를 한 대부분 기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은주와의 관계를 캐어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름다운 사이'임을 설명하던 그가 어느 순간, 감정에 바쳐서인지 '사랑했노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음, 전인권의 사랑고백을 책 판매와 연관시키는 것은 억측일 뿐입니다. 전인권의 자서전 <걱정말아요, 그대>는 이은주와의 관계를 담은 책이 아닙니다. 열아홉, 그가 음악을 처음 시작했던 때부터 되짚어 음악과 함께 인생을 되짚어보는 책입니다. 이은주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면 머리말에 '은주가 있다면 '애쓰셨어요. 전인권 만세' 문자 하나 왔을 텐데…' 정도입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전인권은 출판사에 자신의 책을 '19세 이상 구입가'로 하자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책의 앞부분 절반은 대마초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적어놓은 것인데, 이것이 청소년들에게 잘못 읽혀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인권이 라이프' CF가 나간 후로 전인권은 나름대로 요즘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입니다. 그는 스스로 거리낌이 없도록 판매연령에 제한을 두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 사정을 알고 보면, 우리가 전인권을 미워할 이유가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토록 전인권을 미워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전인권 사랑고백 기사의 유통경로를 추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유통경로는 전인권에 대한 우리의 '절대증오'가 어디에 근원을 두는 것인지를 설명해줍니다. 맨 처음 '전인권 사랑고백'을 보도한 곳은 인터넷 뉴스공급업체 <뉴스엔>이었습니다(6월 15일 20시 56분,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만약 '전인권 사랑고백'이 기사 그대로 알려졌다면 우리가 전인권에 대해 무조건적인 악의를 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기사는 따뜻한 어조로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했음을,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음을 풀어냈습니다(전인권이 이은주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는 사진은 이후 전인권이 이은주의 애정을 증명하기 위해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둔갑하게 됩니다). 이 기사에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전제가 없습니다. <뉴스엔> 기사가 나간 후 곧바로 <마이 데일리>에 비슷한 기사가 나가게 됩니다(6월 15일 21시 04분 32초). <뉴스엔> 기사의 기본 내용에 약간의 전화인터뷰 내용이 곁들어진 기사였습니다. 이때 제목이 약간 이상하게 나갑니다. <이은주와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었다>라는 것으로, '이 기사는 스캔들 기사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웅변하게 됩니다. 두 시간여 후에 <스타뉴스>에서도 기사가 나오게 되는데, 이은주 전 소속사의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합니다. 기사의 제목은 <전인권 얘기 말도 안돼...은주어머니 너무 충격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이 기사가 전하는 내용은 크게 3가지입니다. '전인권씨 이야기는 말이 안 된다', '고인의 어머니는 몇 시간째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정신을 놓을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다', '고인이 하늘에서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이은주 전 소속사 관계자의 말 때문에 전인권이 보여준 문자메시지에 대해 오해가 생깁니다. 전인권이 최초 인터뷰한 <뉴스엔> 기자에게 이은주의 문자메시지를 보여준 것은 이은주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은주 전 소속사 관계자의 말 이후에는 전인권이 이은주도 자신을 좋아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문자를 보여준 것으로 알려지게 됩니다(저도 최초 기사를 확인해 보고서야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타뉴스>는 네티즌 반응을 별도 기사로 전하며 <네티즌 경악 "전인권 고백은 이은주를 두번 죽이는 것">라는 제목을 붙입니다. 부정적인 네티즌 반응이 보태지면서 전인권을 향한 분노는 '침묵의 나선형'을 그리게 됩니다. <스타뉴스> 기사를 시작으로 '전인권은 이은주를 사랑하면 안 된다', '전인권은 이은주를 사랑한 사실을 말하면 안 된다'라는 전제가 형성되게 됩니다.
<스타뉴스>의 네티즌 반응 기사는 이후 전인권 관련 기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인권 기사 관련 댓글에 비난이 많이 올라 온 것을 보고 쓴 것인데, 이때를 계기로 '샤우팅 마이너리티(적극적인 소수)'가 '사일런트 메이저리티(소극적인 다수)'를 제치고 지배적인 여론을 형성하게 됩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초딩적인(오해 없으시길. 학업에 열심인 이 땅의 선량한 초등학생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다. 정신연령이 지극히 저렴하신 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필자 주) 것이었습니다. 전인권이 나이가 많은, 배가 나온, 애가 둘이나 달린 이혼남인, 지저분하지는 않지만 조금 너저분한(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4번의 구속 경력을 가진(대마초로) 남자가 아니었더라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아니면 이은주가 고인이기 때문일까요?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했다는 사실, 그 사실을 말했다는 사실은 이은주의 숭고함을 훼손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다른 연애 기사였다면, 단순히 누가 누구를 사랑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상대방 쪽은 아니라고 하더라(네티즌은 어이없어 하더라) 정도로 끝났을 이야기가 전인권이 몹쓸 짓을 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집니다. 곧 이어 <연합뉴스>에서도 비슷한 어조의 기사가 나오게 됩니다(6월 15일 23시 15분). <전인권, '故 이은주와 나는 레옹과 마틸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역시 이은주 전 소속사의 입장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의 부제는 <이은주측 "도대체 말이 안나온다"며 극구 부인>이라는 것으로 연합뉴스는 <스타뉴스>와 마찬가지로 네티즌의 부정적인 반응을 실었습니다. <스타뉴스> 기사와 <연합뉴스> 기사를 기점으로 대세는 '전인권 죽이기'로 기울게 됩니다. 이은주 어머니의 반응(이것은 실제 반응과 일치합니다)과 이은주의 반응(이것은 알 수 없습니다)을 대변했다고 자처하는 이은주 전 소속사 관계자의 말이 서서히 우리 모두의 입장이 되어 갑니다. <연합뉴스> 기사 역시 '왜 하필 전인권이 책 출간을 앞두고 이런 기사가 나오느냐' 등의 부정적인 네티즌 반응이 실립니다. <연합뉴스> 기사가 전인권에 대해서 부정적이라는 것은 기사의 표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기사는 '가수 전인권이 지난 2월 사망한 영화배우 故 이은주와 "4년 동안 남녀 사이로 사랑했다"고 주장해 연예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첫 보도가 나간 지 불과 2시간 후인데, '파문'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간 전인권은 이은주와 나이를 초월해 우정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기에 이 같은 고백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우정이면 나이를 초월한 아름다움인데, 사랑이면 '충격'이라는 것입니까?).
두 기사 이후, 전인권을 다루는 기사의 어조는 대체적으로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랑한다는 쓸데없는 말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전제를 따르게 됩니다. 이 기사들을 짜깁기한 오프라인 언론의 기사들이 다음날 아침 신문에 등장하는데, 대부분 이 전제를 따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랑고백 때문에 전인권은 하룻밤 사이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립니다. 이제 '공공의 적'이 된 전인권에 대한 공격성 기사가 거침없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전날 전인권 기사를 썼던 연합뉴스 기자는 이튿날 이은주의 측근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확실하게 전인권을 '부관참시'합니다. <이은주 유서 속 '언니', "은주를 두번 죽게 했다" / 영화기획 하 모씨, "은주는 사귀던 남자친구도 있었다">라는 기사인데, 전인권을 거의 스토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인권 측의 반론도 전혀 듣지 않은 이 기사는 가히 '전인권 죽이기'의 백미기사였습니다. 전인권에 대한 공격적인 기사가 범람하게 된 것은 엔터테인먼트 저널리즘의 경쟁심리도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전인권 특종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언론사들이 더욱 거칠게 '전인권 죽이기'에 나선 것입니다. 오히려 전인권의 사랑고백을 최초 보도한 <뉴스엔>은 <순수의 열정을 간직한 전인권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자, 그 누구인가>라는 칼럼 등을 통해 전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습니다. 전인권이 네티즌 검색순위 1위에 오르자, 너도나도 전인권 관련 기사를 쏟아내는데, 연애칼럼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도 이 '전인권 죽이기'에 동참합니다. 이들은 '전인권이 경솔하게 행동했다, 물의를 일으켰다, 이은주에게 피해를 주었다'라며 전인권을 질타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전인권이 이은주를 사귀었다면, 이것이 이은주에게 꼭 누가 되는 사실로만 봐야할까요? 이은주의 가족 입장에서라면, 이은주가 전인권과 만나는 것이 탐탁지 않은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전인권의 조건은 가족이라면 수용하기 힘든 내용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불쾌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의 입장이라면, 이은주가 전인권을 만났다는 것은 이은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계기도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여자 연예인처럼 쭉쭉빵빵한 꽃미남 연예인이 아닌, 혹은 잘 나가는 재벌가 2세가 아닌, 음악 빼면 볼 것 하나 없는 중년의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은주의 자아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요?
'네카시즘'과 관련해 요즘 기자들의 병폐를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일부 기자들 중에서는 인터넷 클릭 수에 연연해 댓글을 보고 '넷심'의 향배에 따라 기사의 방향을 정하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전인권 관련 초기 기사들이 이런 초딩적인 '넷심'의 준동에 부화뇌동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상의 과정을 되짚어 보았을 때, 전인권은 겉보기에는 네카시즘에 의한 희생양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언론의 상징조작에 의한 피해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의를 일으킨 것은 전인권이 아니라 전인권 기사를 함부로 쓴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전인권을 훈계합니다. 이걸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자는 시간을 줄여 주저리주저리 써 보았습니다. 참고로 제가 이 글을 쓴 것은 전인권이 한국 록음악의 이정표가 되는 중요한 가수라고 판단해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닙니다. 그의 음악적 성취, 혹은 그의 인간적 됨됨이가 이 글의 출발점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 전인권을 위해서 쓴 글입니다. 저는 전인권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썼을 뿐입니다. 자신에 대한 스캔들을 뒤로 하고 여행에 나선 전인권은 '더 이상 추해지기 싫다'라는 말과 함께, 짧은 해명을 남겼습니다. '나는 당당하다.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비극적이게도 이제 그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토커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한 죄' 혹은 '사랑을 발설한 죄'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는 왜 전인권에게 돌을 던져야 하는 것일까요? 돌을 던지기 전에, 전인권의 말을 제대로 들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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