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방송의 진행자가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유료 아이템을 결제하고 있다. 출처=유튜브
“전설 아이템 뜨면 1억!”
한 인터넷 방송의 진행자가 흥분한 표정으로 엔씨소프트의 대표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유료 아이템을 결제하는 장면을 생중계한다.
그는 “500만원을 투자한다”고 선언한 뒤 어떤 아이템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자', 즉 ‘캡슐형 유료 아이템'을 샀다.
현금 3만원에 살 수 있는 이 상자에서는 일반과 고급, 희귀, 영웅, 전설 등급 중 한 아이템이 미리 정해진 확률에 따라 등장한다. 그 중 가장 희귀한 전설 등급의 아이템 가치는 금전적으로도 상당해 아이템이 하나하나 나올 때마다 진행자는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40분쯤 지나자 진행자가 쏟아부은 500만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전설은커녕 영웅 등급의 아이템도 얻지 못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실망한 진행자는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순식간에 돈이 사라진다고 해 '순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확천금을 노린 도전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 게임에서 유료 아이템을 수백만원어치씩 결제하는 이들은 유튜브 등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들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진행하는 방송 중 올라오는 댓글에는 ‘도박’, ‘사행성’ 등의 단어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유료 아이템 결제 영상들. 이들 방송의 진행자는 미리 정해진 확률에 따라 등장하는 전설 등급 등의 고급 아이템을 얻으려고 수백만원을 소비한다. 출처=유튜브
◆'리니지M', 사행성 이유로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
리니지M은 지난 5일부터 사용자 간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 기능을 추가했다.
이에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유저 간 아이템 거래를 유도하는 행위가 사행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리니지M을 '청소년 이용 불가'(청불)로 지정했다. 이로써 리니지M은 거래소 기능이 있는 성인 버전과 기존 '12세 이상 이용가'의 2가지로 나뉘게 됐다.
게임위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에 따라 선정성과, 폭력성, 사행성 등을 위주로 종합 고려해 게임 등급을 분류한다. '전체 이용가'를 빼면 등급에 따라 게임을 할 수 있는 연령대가 제한되는 제약을 받게 된다.
거래소 기능 도입에 따라 게임에서 아이템을 현금으로 거래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게 게임위가 리니지M을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한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게임위 관계자는 “아이템 매니아와 같은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청소년 이용 불가로 지정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리니지M도 같은 이유로 '청불' 판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아직 거래는 활성화되지 않았으나 아이템베이와 아이템매니아 등 게임 아이템의 현금 거래를 중계하는 사이트들은 관련 게시판을 만들고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었다.
정확한 시세를 가늠하기 힘드나 아직 희귀 아이템이 많이 등장하지 않은 탓에 몇몇은 수천만원을 호가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의 예측이다. 이런 일확천금을 노려 적지 않은 게임 유저들이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상자를 사들이고 있다. 다만 원하는 아이템을 손에 넣을 확률은 상당히 낮아 상당수는 헛돈만 쓴다.
엔씨소프트가 공개에 자료에 따르면 전설 아이템을 얻을 확률은 종류에 따라 0.0004%~0.0007%다. 이는 로또(온라인 복권) 3등에 당첨될 확률(0.00002799238%)보다 높고 4등 확률(0.00136425648)보다 낮은 수준이다.
엔씨소프트가 공개한 '상자' 즉 '캡슐 유료 아이템'의 획득 비율. 출처=엔씨소프트
게임법에서는 사행성에 대해 ‘결과에 따라 재산상 이익 또는 손실을 주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세부 조항에서는 베팅이나 배당을 내용으로 하거나 우연적인 방법으로 결과가 결정되는 또는 경마와 경륜, 경정, 카지노를 묘사한 게임물로 규정하고 있다.
게임위 관계자는 “게임 사행성과 관련해서는 이용자에게 유해한 영향을 주는지 여부, 과소비를 유발하는지 여부를 두고 위원회 자체 판단으로 이용등급 심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게임사 기반의 민간단체인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도 사행성과 관련한 자체 규제를 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달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시행기준’를 마련해 캡슐형 유료 아이템에 대한 규제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위반하면 해당 회사에 권고와 위반사실 공표 등의 패널티를 주기로 했다. ‘아이템이 등장하는 확률을 공개해야 한다’, ‘유료 현금이나 꽝을 보상으로 주면 안 된다’, ‘등장하는 아이템의 가격이 유료로 판매되는 가격보다 낮으면 안 된다’ 등이 규제 조항에 포함됐다.
그러나 마지막 조항은 아이템이 게임에서 유료 판매하고 있을 때에만 적용돼 게임의 사행성을 막는 강력한 규제가 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산다. 아이템의 등장 확률에 대한 규제나 개인 결제 한도 등의 명확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5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움아트센터에서 열린 엔씨소프트 '리니지M '의 미디어 쇼케이스 현장. 리니지M 플레이 화면이 소개되고 있다. 엔씨소프트 제공
◆ 거래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에 기본요소
엔씨소프트는 지난 5월 미디어 쇼케이스를 열고 “리니지M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겠다”며 거래 시스템을 소개했다.
회사 관계자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에서 아이템 거래는 기본적인 요소”라며 “모든 아이템을 플레이어가 얻을 수 없기에 교환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가 거래소를 통해 이용자의 현금 결제를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이템 거래가 게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화폐인 ‘아덴’이 아니라 현금으로만 살 수 있는 ‘다이아’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덴과 다이아 모두 현금으로 얻을 수 있는 ‘화폐’이며, 거래소를 통해 오히려 다이아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캡슐형 유료 아이템은 모바일 게임의 비즈니스모델(BM)에 따라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게임산업협회의 자율 규제를 모두 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리니지M의 인기는 거래소 공개와 함께 날로 치솟고 있다. 청불 버전의 리니지M은 출시 이틀 만에 구글 플레이에서 최고 매출 3위에 올랐다. 1위도 기존 리니지M이 차지했다. 리니지M의 가입자는 이미 700만명을 돌파했으며, 하루 평균 매출은 9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