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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허경영 'Call Me' 기자회견장을 가다
2009.8.14.금요일
살다보면 소위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운 경우가 간혹 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본지가 하는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업무의 와중에 흔치는 않지만 그러한 딜레마가 발생하곤 한다.
가령 5월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우심방 대정맥부근에서 혈액이 유턴을 하는 바람에 본 편집장이 사상 유래가 없었던 딴지일보의 매일 업데이트를 대내외로 선언하며 진짜로 일보가 되어버린 현재의 상황. 혹자에게는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딜레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업데이틀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퇴근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리고 취재대상과 관련하여 필자에게는 또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그것은 바로 허경영 총재.
본지로서는,
그분을 지지할 수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분을 말릴 수도, 말리지 않을 수도 없다.
본지가 허총재를 발굴, 소개, 분석했던 기사가 그동안 십여 개에 이르며, 지난 2007년에는 무려 3시간에 걸쳐 블럭버스터급으로 이뤄진 자칭 킬리만자로의 이너뷰도 있었다. 필자가 왜 킬리만자로의 이너뷰라 표현하는지는 읽어보면 안다.
그와의 이너뷰는 왠지 재밌을 것 같다고?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한참을 고뇌하다가, 결국 필자는 8월 12일 수요일, 허총재님의 음반 발표 기자회견장으로 가기 위해 배낭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 허경영이라면 이제 더 이상은 그를 들먹일 필요가 없다 할 것이겠으나, 가수 허경영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결과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가수 허경영을 알현하러 간다는 설레임 때문인지, 노래 한 소절이 절로 입에서 맴돈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된들 또 어떠리~♬
허경영 총재(비록 최근에는 각종 재래언론들이 그분을 일컬어 '허본좌'라는 명칭을 쓰는 게 대세인 것 같다만, 본지로서는 대세 따위 알 바 아니다. 본지에게는 마치 그 옛날 만주에서 개 타고 말 장사 했다던 소시적 농담과 유사한 대구를 이루는 에쿠스 타고 황소를 지고 다니던 민주공화당 총재 허경영이 있을 뿐이다.)의 기자회견은 원래 3시 예정이었다. 당일 오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워낙 차가 밀리는 바람에 많이 늦고 말았는데, 3시 20분쯤 허총재님의 비서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 아, 많이 늦으신다구요?"
"네, 차가 좀 많이 밀리네요. 죄송합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아, 일개 취재진을 위해 공식 일정까지 뒤로 미뤄버리는 저 관대함. 그리고 왠지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것 같은 이 기분...
기분이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싫다고 할 수도 없다.
결국 본지 때문에 현장의 다른 기자들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 먼저 시작하시라고 간곡한 말씀을 드린 후, 필자는 3시 40분이 되어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기자회견장은 강서구 화곡동의 어느 빌딩 지하.
대한민국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반영한 듯한 적절한 안내문이 눈에 띈다.
이것도 어쩌면 일종의 편견이겠지만, 기자회견장 출입문의 비주얼이 매우 그로테스크한 것이 오늘 회견장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듯 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기자들.
그리고 마치 프리미어 리그에서 공격수의 어림없는 헛발질에 난색을 표하는 관중처럼, 머리를 감싸쥐고서는 그분을 응시하는 어느 처자의 뒷모습 역시 오늘 회견장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것만 같다.
환하게 웃는 표정의 허총재와 나머지 두 분. 우측 양복차림의 남성이 허총재의 비서실장이다.
미리 말씀드리건데, 이번 기자회견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은 좌측 빨간티의 청년이다. 그룹 '뷰렛'의 이교원이라는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로, 문제의 '콜미'란 곡을 작곡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가 그를 주목해야 한다고 한 이유는 그때문만은 아니다.
당일 취재현장의 분위기는 그의 표정변화를 통해 모든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꽤 순조로왔다. 물론 필자가 조금 늦게 도착한지라 그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회견장의 분위기는 마치 시국선언이라도 할듯 엄숙했다.
이 세 분들도.
그리고 아마도 허총재님의 경호실장쯤으로 보이는 이 분 역시.
기자들만이 열명 정도 있었던 밀폐된 스튜디오 공간임에도, 무려 두 시간여를 부동자세로 버티고 서서, 혹여 땅굴파고 기어 올라올 지도 모를 테러 세력을 예의 주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매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분도 어딘가 마음 한편은 틀림없이 나처럼 고독했을 것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나왔던 허총재님의 모든 말씀을 굳이 본 기사에 구구절절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 내용은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므로.
예전 인터뷰에서 보다 조금 추가된 것이 있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운명철학적 비판 약간과, 최근 허총재가 출연했던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에 대해 비난성명을 냈던 몇몇 시민단체들에 대한 허총재님의 분노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자신의 노래가 이 시점에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였다.
"간이 안 좋아? 그럼 내 노래를 들어."
"장이 안 좋아? 그럼 내 이름을 불러봐."
"키가 작어? 그럼 내 노래를 들어."
"조루야? 그래도 내 이름을 불러..."
뭐, 대략 이런 내용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친구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알고 있다. 지금 저 친구가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필자는 본지 필진들 중에서도, 무표정하기로 유명하다. 각하의 라디오 방송을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끝까지 경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동북아시아에서 필자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허총재의 이너뷰나 기자회견에는 필자가 가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데 그분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과연 독자들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저 고독의 몸부림을!!!
아마, 경험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웃고 있는 것 같지만, 저 친구는 지금 혀를 베어 물고 있는 중이다. 틀림이 없다.
지난 2007년도의 이너뷰에서, 필자는 후반까지 정말 잘 버티고 있었다. '영혼복제' 이야기가 나와도 담담했고, '이혼수당' 얘기에는 오히려 눈을 반짝였더랬다.
하지만, 아뿔사.
그때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위의 기사 발췌로 대신한다.
이제 필자는 더 이상 허총재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간간이 찰라바이러스며, 예술이 곧 정치다라고 하는 솔깃한 말씀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먼저 사람을 살리고 볼 일이었다.
아아 이 안타까운 몸짓들.
그리고 마침내 찾아 오고야 만...
해탈, 아니 탈수의 순간.
필자는 솔직히 그의 바지춤 상태가 몹시도 궁금했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상 카메라 앵글을 밑으로 내릴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 와중에도, 4면이 벽인 스튜디오에서 언제 튀어 나올지 모를 적들을 대비해 오직 시야 확보를 위한 눈동자의 움직임만 허락할 뿐, 한치의 미동도 용납하지 않았던 이 분.
그는 분명 지옥을 맛본 적이 있는 불사의 용병 출신이리라.
기자회견 중에 필자도 한 가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산삼, 녹용에 비할 바 없이 그렇게 몸에 좋은 노래라고 하니 필자는 문득 이런 궁금증이 떠올랐던 것이다.
"허총재님, 그럼 이 노래를 들으면 정신질환에도 효과가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우울증, 조울증 뭐 이런 모든 정신질환에도 당연히 효과가 있지."
그러자 또 궁금한 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허총재님은 왜..."
순간, 먹이라도 발견한듯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그 분.
미안하지만, 필자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자를 용서할 수 있으리라. 4면이 꽉 막힌 곳이었으니까.
이후, 마침내 허경영의 '콜미'는 모인 기자들 앞에 그 정체를 드러냈고, 허총재님의 이른바 무중력 댄스 시범도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굳이 필자가 왈가왈부할 필요 없어 보인다. 이미 포탈 검색 1위에 오른 바 있고, 온갖 가요차트에서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을만큼 '콜미'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만간 뮤직뱅크나 MTV에서 허총재를 만날 날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아직 '콜미'를 감상하지 못한 독자라면 아래 티저 동영상을 감상해보시라.
이상이다.
필자가 딴지에 신삥 수습기자로 입사를 했던 해가 2000년도였으니, 이제 대략 10년차가 된다.
그 10년 동안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전문기자 호칭을 받은 영역이 몇 개 존재한다. 故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 복원 기획을 했을 때는 고화백 전문기자로, 성인용품 벤치마크를 통해 남로당을 창당했을 때는 어둠의 흑기자로, 최근 '읽은 척 매뉴얼'을 연재하면서는 문학 전문기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허경영 전문기자.
좋다고 할 수도 없고, 싫다고 할 수도 없다.
딴지 편집장 너부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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