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이 그린 유교적 이상 정치체계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설계였습니다.
타 커뮤니티에서 역성혁명이 왜 없었을까라는 게시물을 보며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만 삼봉의 이상국가는 재상중심제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와 행정의 일체 시스템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실질적인 정치와 행정은 모두 재상이 중심이 되어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거죠.
그리고 왕의 역할은 그 재상을 뽑고, 스폰서쉽 하는 것.
여기에서 왕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재상을 뽑으면 결국 전제군주제와 다를 것이 없다는 모순이 발생하는데요....
삼봉은 바로 여기에 두겹 세겹 치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 둡니다.
사실 삼봉의 재상중심제 모델에서 왕은 전제군주로써의 왕보다 더 이상적이고 완벽한 권한을 갖게 됩니다.
지식, 학식, 애민, 도덕적인 측면에서 보증된 완벽한 모든 정책의 책임자로써의 왕이기 때문이죠.
왕은 철인(哲人)이 되어야 합니다.
어찌보면 삼봉이 이성계를 보며 그렸던 왕의 모델은 니체의 항상심을 가진 철인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왕의 하루 일과까지 법으로 규정해 감히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끊임없는 수양과 공부를 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성리학적 군자에 근접한 철인을 만들려 했거든요.
왕인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왕.
지식측면, 성품측면, 애민의 마음까지 끊임없는 자기수양과 자신을 돌파하려는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완성되는 유교적 성인, 군자의 위를 왕으로 생각한겁니다.
이를 통해 왕의 이상이 재상을 통해 펼쳐지는 정치가 유교적 최상의 결론이 되어 행정으로 펼쳐지는 모델을 그린거지요.
왕과 재상의 서로 다른 생각(정치)이 하나의 의지가 되어 행정으로 전환되면 이는 자연스럽게 철인이며 군자인 왕의 절대의지인 것이고, 재상에 의해 법에 근거한 엄정한 행정집행이 이뤄지는 유교적 이상향.
왕위는 철저하게 준비되어 이어져야 합니다.
삼봉은 왕의 사랑을 받는다고, 일개 귀족이 힘을 쓴다고 만들어지는 세자의 위와 왕위계승이 아니라, 철저하게 교육받고 준비된 후보로 성장한 그리고 충분히 평가된 자가 왕위를 이어받는 시스템을 설계하려 했습니다.
왕이 바뀌고 재상이 바뀌어도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 것이 정도전의 이상이었습니다.
맹자의 왕도 바꿀 수 있다는 이론을 넘어, 왕은 바뀌어도 성리학적 이론이 통치하는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 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꾼것이죠.
철인으로써의 왕이기 때문에 편애하는 마음이 설령 있더라도 최종적으로 다음 위를 결정하는 것은 재상 이하의 시스템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그걸 다시 왕이 보증하는 틀을 짜려 한 것이죠.
또한 왕족의 권한을 한량에 가까운 위로 격하시키고 명예만 주어 병권과 정치력을 포함한 모든 실권에서 멀어지게 하고 왕은 외척을 포함한 모든 왕족이 사적으로 접해선 안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 했습니다.
절반의 성공은 이뤘지만, 절반에 그쳤기에 그 부작용은 더 커진거구요.
삼봉의 이상은 이방원 같은 전제적 왕권을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국가를 이상향으로 삼은 사람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모델일 수 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이 대부분 수용한 정도전의 정치 행정체계는 개인감정을 넘어 당시 시각으로 완벽에 가까운 모델이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하고, 태종이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반증도 될겁니다.
이 모든 것은 성문화 된 법으로 규정되어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삼봉은 위에 언급한 시스템을 모두 성문법으로 규정하여 마치 톱니가 맞아 돌아가듯 운영되는 국가를 이상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는 철인으로 완성된 왕 조차도 성문법의 테두리를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촘촘하고 치밀한 설계였죠.
왕의 권한이 법을 넘는 순간 조종을 무시하고 조선이 세워진 역사와 당위성을 부정하게 되는 지독한 자기부정의 덫에 빠질 수 밖에 없거든요.
누군가 다른 마음을 먹고 다른 짓을 하려해도 모두 성문화 된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재단되고 평가되고 걸러질 수 있는 시스템을 그린거고, 이 역시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겁니다.
정도전이 십수년 또는 수십년 더 살아 경국전을 보강하고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만 만고불변의 진리, 역만없.
덕분에 태종이 조금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선초가 되었고, 이 때 잡힌 기반은 왕과 국가가 아무리 못났어도 600년을 갈 수 있는 강력한 기틀을 세우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세종이 왕위에 올랐고, 우리가 한자 대신 한글이라는 전무후무한 문자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도 했지요.
선조라는 못난 찌질이 덕분에 인류사에 다시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이순신 이라는 제독이 우리 역사에 이름 새기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돌고 돈다는 말이 사실이길 바랍니다.
역성이라는 어휘는 현대에 맞지 않지만, 이 시대에 재현된다면 그 정당성은 모두 민중에게서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이지러지면 차고, 차면 기우는 것처럼 조선왕조를 통해 얻은 지혜와 폐단의 반면교사 모두 우리에겐 교훈이 되겠지요.
선조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 역사가 독이 될지 반면교사의 약이 될지는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어려운 숙제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