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17일자 연예면 기사에서 음원차트를 석권한 ‘무한도전’ 음반 '기현상'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만드는데 평균 1시간 정도 밖에 안된 허접한 노래들이 ‘무한도전’이라는 인기 오락프로그램에 힘입어 음반시장을 장악한 것은 아무리 봐도 '비정상'이요, 음악인들을 씁쓸하게 만든 '이변'이라는 겁니다(<작품성 필요 없어, TV가 밀어주면 돼>, A19)
조선일보는 장난기 가득한 가사들로 채워진 '냉면'(명카드라이브)과 '영계백숙'(애프터쉐이브)같은 음반들의 성공은 TV 연예오락프로그램의 홍보와 포털의 인기검색어 등에 힘입은 바 크다고 깍아 내리면서, 대중평론가의 입을 빌어 "차곡차곡 단단하게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음악 관계자들에게 이건 일종의 '쓰나미' 같은 사건"일 수밖에 없다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 기사는 MBC간판 예능프로인 ‘무한도전’ 까대기에만 너무 급급한 나머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거나 예능현실을 무시한 억지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어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는 지적과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 출품된 음반들의 성공을 폄하하기만 했지, 그 수익금이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기부된다는 것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가 무려 3만장이나 나갔다고 비판한 ‘무한도전’ 앨범 판매실적에는 불우이웃돕기에 뜻을 같이한 네티즌들의 공감과 적극적인 동참도 한 몫 했다는 것을 -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 간과한 겁니다.
또 "작곡·작사하는 데 다 합쳐 30분, 녹음엔 1시간30분이 걸렸다"며 조선일보가 "1시간만에 뚝딱 만든 노래들"의 대표로 거론한 '냉면'의 경우, 곡을 작곡한 E-TRIBE(이트라이브)가 당초 남성듀오 원투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지만 ‘무한도전’ 팀의 요청을 받고 고민 끝에 박명수, 제시카의 남녀 듀엣곡으로 다시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조선일보 이승우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무한도전'의 히트곡 '냉면' 뒷 이야기>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백보양보해서, 조선일보 주장처럼 ‘무한도전’ 노래들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졌다 해도 그로써 작품성을 논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예술작품이 복잡한 제조공정을 거쳐야 하는 상품도 아닌 터에, 어떻게 창작에 드는 시간의 길이로 작품성을 일률적으로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전세계 아티스트들이 이 기사를 읽으면 아마 모두들 배꼽잡고 쓰러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음반 하나 만들 때 2~3개월씩 걸리는 김동률이나 윤상같은 가수들과 ‘무한도전’ 앨범의 '효율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지적이 많습니다. 김동률이나 윤상같은 이들은 1CD에 10곡이 넘는 곡을 혼자서 작업해서 앨범을 내기 때문에 시간이 길 수밖에 없지만, 이번 ‘무한도전’ 앨범은 여러 명의 뮤지션들이 원래 있던 곡을 수정.변형해서 녹음했기 때문에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무한도전’ 음반이 3만장 팔린 것을 원더걸스의 '텔미' 음반이 4만8000장 팔린 것에 견주며 "믿기 힘든 기현상 내지는 비정상"이라고 깍아내린 데 대해서도 네티즌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후크와 이미지로 승부하는 '텔미'에 비해 ‘무한도전’ 앨범이 못한 것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네티즌들 중에는 듀엣가요제 노래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이번 앨범을 구입했다는 이들도 많습니다. 조선일보는 지금 이들의 음악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하다는 것일까요?
‘무한도전’ 앨범의 성공을 순전히 TV 밀어주기와 포털의 인기검색어 탓으로만 돌려 질타하는 것도 평소 네티즌들을 얕보고 무시한 조선일보의 오만 아니고선 나오기 힘든 시각이라는 반응입니다. ‘무한도전’에 2주 동안 4시간 노출된 것 가지고 홍보의 힘이니 포털의 힘이니 하는 건 우습지 않냐는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최소 5인 이상의 아이돌들을 각개격파 식으로 방송3사의 연예프로에 두루 내보낸 기획사의 앨범은 무조건 대박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론에 할 말이 없어집니다.
바르게 말해서, 이번 ‘무한도전’ 앨범의 성공은 어떤 형태로든 욕 먹을 일이 아닙니다. 이트라이브의 말마따나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이 원하는 코드를 적절하게 취합"해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 '비정상'입니까? ‘무한도전’ 덕에 타이거JK나 윤미래 등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재조명되고 인지도가 높아진 게 '기현상'입니까? 나아가 여기서 얻어진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겠다는 게 그렇게 '씁쓸한' 일입니까?
조선일보는 마치 저질스런 ‘무한도전’ 음반들의 빗나간 흥행 때문에 좋은 노래들이 빛을 못 본다는 식으로 오도하고 있지만 그러나 ‘무한도전’이 아니라도 실력있는 가수들의 노래가 비주얼과 물량공세를 앞세운 아이돌그룹의 후크송 따위에 밀려 빛을 못보고 있는 것이 요즘 가요계의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애오라지 ‘무한도전’에만 모든 책임을 덧씌워 손가락질 해대는 것은 결국 상대가 MBC이기 때문에 무조건 무작정 무차별 까고 보는 것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노기 띤 목소리에 조선일보가 뭐라 답할지 궁금해집니다. / 문한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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