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종교가 지식을 꽉 잡고있던 중세시대도 아니고 ㅋㅋㅋ
대학 안가고도 출판사 '사이언스북스' 등의 교양도서만 봐도 자연과 세상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범신론은 커녕 유신론을 고수한다면
저로서는 우주만물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기를 게을리하는 사람으로밖에 납득이 안됩니다.
대체 왜 그걸 자연과 우주 그 자체를 관측해서가 아닌 소설가들이 만든 등장인물의 대사들에서 궁리하는 걸까요?
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다윈의 진화론이랑 생물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기초를 이해는 해놓고서 입을 여는건지 의문입니다.
생명체는 엄밀히 정의하자면 화학물질의 집합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수많은 화학물질간에 작용하는 복잡계의 원리를 아직 다 파악못했을 뿐입니다.
영혼요? 내세요? 안타깝지만 인간은 심장이 멈추면 죽습니다.
기계또한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으면 작동을 멈추죠.
앞으로의 미래는 '인간은 좀더 기계 같아지고 기계는 좀더 인간 같아질 미래'라고 합니다.
그정도로 생명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서 점점 더 인간의 의지대로 생체를 운용할수 있을거란 얘깁니다.
기계는 점점 더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며 우수해질테고요.
인간은 아직 작동원리를 몰라서 설계도를 만들지 못한 복잡함 그 이상의 복잡한 생체기계일 뿐입니다.
특히나 현재로선 뇌가요.
생존에 유리했던 두뇌의 발달이 이룩해온 관념과 지식들 중에서도 현실개선에 도움이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종교입니다.
앞으로 종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본능적인 경쟁 속에서도 필요에의한 화합을 추구할 수 있다면 사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전 그걸 문화라고 봅니다만 아직 모를일이죠.
그리고 종교의 발생원인 중 가장 큰 이유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서의 고통입니다.
종교는 마약과도 같으니까요.
만약 무언가를 숭배할 정도로 스스로의 나약함을 느끼게된다면 소설가들의 등장인물 말고
차라리 전 과학기술로써 수명을 연장시키며 기계부품으로써 신체부위들을 대체할 수 있다는
레이커즈와일과 같은 현실적인 지성인을 교주로 모시고싶네요.
주변사람들이 믿으니까 동조해주거나 침묵하는 지성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wing it
달콤한 우정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얼굴을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보고
옆에서 엿보지 마라.
성철 스님의 주례사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결혼하기를 원해놓고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할 걸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이 결혼 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지고 이리 저리 고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논꼽 만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덕보겠다는 마음이 살다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30%주고 70% 
덕보자고 합니다. 
둘이 같이 살며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십중팔구는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 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줘야겠다고만 
다짐하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제가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그리고 번복되는 어제의 각오는 잊은 채 
시시한 욕구를 채우려고 너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비웃었지.
굳은 다짐으로 쓰여졌던 약속의 증서는 휴지조각으로 버려지고 또다시 내일을 외치며 도대체 언제쯤 관둘지 모르는 그 공허를 외치며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거적으로 덮어놓고선
남이 쌓아올린 탑을 남들에게 뽐내는 역겨운 대리만족을 넘어, 마치 그 주인이라도 된 양 허세를 부리는구나.
부끄러움은 잊은지 오래-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당당하다.
검은 밀물은 매섭게 밀려드는데 모래성은 높아져만 간다.
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어째서 시궁창에서 한심한 꼴로 허우적대는가.
그래놓고 후에 가서 이상의 날개는 현실에 의해 꺾이어졌다는 되지 않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인가.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데 어째서 뒷걸음질만 치는가 - 바로 뒤엔 절벽있는데
지금 네가 즐기는 그 쾌락이 죄 많은 너의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그리고 수십배는 더 고통스러울 죄 없는 어머니의 소리없는 오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 어째서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퇴보를 반복하는 것인가. 
.
.
.
들어라.
하루의 절반을
눈물로 지워본 적이 없는 이들아.
또한
들어라.
노력없는 희망만큼이나 
또 절망적인 것은 없음을 아직 모르는 이들아.
언젠가는 가장 비참하게 찢길 오만과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나태로 찌들어
이제는
끝없이 내일만을 되뇌이는
그 검은 입으로
감히 
너의 꿈을 모욕하지 말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