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미도는 번역회사 이름이라고 말씀하시길래 ㅡ.ㅡ; 이미도님에 대해서 올립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외화 번역가 이미도 선생은 남자다. 많은 관객들이 이미자, 이미연, 이미숙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이미도 역시 여자일 거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모양인데, 다시 말하지만 그는 남자다. 아름다울 미(美)자에 길 도(道)자를 쓴다. ‘미국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미군 통역관이던 아버지가 미국을 동경한 나머지 그렇게 지었다 한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초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줄곧 미국말로 먹고살고 있는 미도(美道) 선생은 인생이 이름대로 풀린 보기 드문 케이스라 할 것이다(만일 아버지가 독일을 동경했다면 ‘독도’ 수비대가 됐을지도...).
무릇 성공한 사회인들의 라이프 스토리가 그러하듯 그 역시 우연한 기회에 이 길로 접어들었다. 1994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블루>로 데뷔, <레드> <화이트> 등 ‘색깔 있는’ 작품을 무리 없이 번역한 실력을 인정받아 그해 하반기부터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단골 번역가로 캐스팅되었다. 지금은 직배사 말고 다른 수입사 영화도 작업하는데 그가 번역한 영화가 많으면 한 달에 3편, 1년이면 40편, 10년간 총 400여 편에 이른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리 맥과이어> <글래디에이터> <반지의 제왕> 등 수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가 한 해 작업하는 40편이 그 해 외화 흥행 40위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고는 할 수 없지만, 좌우지간 많이 일치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유난히 대박 외화, 알짜 외화를 많이 하다보니 당연히 관객들이 그의 이름을 자주 볼 수밖에 없다. “ ‘번역-이미도’가 지배적으로 많은 것처럼 보이는” 첫번째 이유다.
또한 이미도 선생은 이 땅에 번역 실명제를 처음 도입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그런 점에서 그는 번역계의 문익점이라 할 만하다). 당시만 해도 프린트에 번역가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게 충무로의 관행이었다고 하니, 어느 날 우연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자막은 스크린 오른쪽에 있다), 처음 보인 이름이 이미도였을 것임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자고로 매를 맞아도 첫 ‘빳따’가 제일 아프고 보리밥 먹고 방귀를 뀌어대도 첫 방귀가 제일 지독하듯, 어쩌면 그때 남긴 첫인상이 “ ‘번역-이미도’가 지배적으로 많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 두번째 이유일 수 있다.
현재 외화 번역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이미도 선생 말고도 많다. 아니, 많다고는 할 수 없다. 한 10명쯤 된다. 간혹 영화사 직원이나 사장님이 직접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좌우지간 관객이 자주 보는 이름은 조상구, 김은주, 은주(일각의 오해와 달리 김은주의 오타가 아니다), 홍주희 정도일 것이다. 영화사에서는 이중 각 영화의 스타일에 어울릴 만한 번역가를 골라 의뢰한다. 개인 성향을 고려하기도 하고 '액션은 남자 번역가, 멜로는 여성 번역가' 하는 식으로 성 차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원칙보다는 그냥 마음 맞고 액수(!) 맞는 사람하고 단골 거래를 트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게 의뢰해 본 사람의 증언이다. 제2외국어 영화의 경우엔 돈 주고도 맡길 사람이 없어 문제다. 번역이라는 게 언어에만 능통하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보니 적임자를 찾기 힘들다. 꼭 필요할 땐 프리랜서를 쓴다. 가끔 일본영화를 번역하는 강민하씨만 해도 번역보다는 통역이 전문이다. 아니 그럼 그 많던 '구라파 시네마'와 '짱꼴라 무비'들은 누가 다 먹었을까?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 번역가 차지다. 이미도 선생만 해도 <비포 더 레인>이나 <와호장룡> 같은 영화를 번역했다. 오호, 3개 국어를? 웬걸, 영문 대본으로 번역하고 전문가의 감수를 받는 식이다.
내친 김에 비디오 번역에 대해 한 말씀하자. 흔히 극장판 번역을 그대로 쓰는 줄 아는데 자꾸 그렇게 속단해 버릇하면 못쓴다. 한 화면에 넣을 수 있는 글자 수도 다르고 심의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비디오 번역만 전문으로 하는 번역 업체나 프리랜서(혹은 알바)가 따로 있다. 그런데 간혹 ‘정확한 번역은 내 알 바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알바’가 있어 문제다. 그래서 최근 이미도 선생은 비디오 번역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끝으로 한마디 더. 현재 <야인시대>에 시라소니로 출연중인 조상구 사형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번역가로 입문하는 정식 코스 같은 건 없다. 대개 알음알음, 야금야금 이 바닥을 비집고 들어오거나 그냥 영화를 알고 영어를 알면 언젠가 세상이 그 존재를 알아주는 식이다. 상구 사형 역시 ‘까치’로 얻은 인기가 ‘까치까치 설날’처럼 어제의 일이 되어버린 배고픈 시절, 먹고살기 위해 번역을 시작했다. 비록 졸업장은 못 챙겼지만 동국대 영문과라는 출신 성분 덕을 봤다. 미도 선생이 ‘색깔 있는’ 작품으로 막 경력을 시작하던 그 무렵, 상구 사형은 이미 ‘성깔 있는’ 번역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글쓴이는 "넨장맞을"같은 창의적 욕설이 그의 솜씨라고 기억한다). <타이타닉> <레옹> 등을 번역한 그는 먹고살 만한 지금도 번역 일을 놓지 않고 있다. 같은 영화를 수십 번씩 돌려보는 것만큼 확실한 연기 공부는 없기 때문이란다. - film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