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밍밍한 사이다일 수 있습니다.)
저녁에 광역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이었습니다. 승차한지 얼마 안되어서 비니를 쓴 남자가 탔습니다.
곧장 제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별스럽지도 않게 제 어깨를 몸으로 꽝! 치며 앉더군요.
왜이러나 싶어 쳐다봤지만 그 쪽은 날 힐끔 봤을뿐 패블릿 게임에 열중하더라구요.
저도 여기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음악이나 들으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는 점점 내 어깨를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밀어댄다기 보단 아예 밀어내려고 하는 것 있잖습니까.
편하게 가고 싶었나보죠. 혹 내가 자리를 너무 차지하고 있었나 싶어 의자를 몇번이고 확인했습니다.
그가 확연히 내 쪽 의자로 넘어와 날 밀고 있더군요.
뭐지 이건? 싶었지만 적당히 쭈구려가자 싶었습니다. 다투기에는 피곤하기도 하고, 작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쭈구려 앉느라 창에 댄 제 어깨가 점점 차가워지는 겁니다.
네, 한겨울이니.. 창가의 습기에 제 야상점퍼는 물론이고 안에 입은 티까지 젖었더군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어졌습니다.
물론 그 시점은 이미 1시간 여는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집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그의 얼굴을 제대로 한번 쳐다본 뒤에는 이상한 오기가 생기더군요.
30대 중반쯤 되었을까요? 일평생 배려라곤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그 옆얼굴,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따귀.
따귀에 심술이 붙었다고 해서 살이 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마른 축이었지만 푹꺼진 뺨을 화로 채웠더군요.
제가 쳐다보는게 열받는다는거죠.
옆사람에게 문제가 생겼다는건 알아차렸지만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건 전혀 중요치 않은 부류의 인간으로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가, 맞닿은 어깨에 더욱 힘을 주는게 느껴졌습니다.
소심한 저는 다시한번 그의 어깨가 어디있는지 보았고, 그제야 그의 잘못이 1시간째 이어졌다는걸 되새기게 되었고,
힘껏 밀어내어 내 자리를 확보한 뒤, 의자에 똑바로 앉아 정자세를 잡고 버티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힘겨루기가 이어지다 그가 절 노려보더니 제 어깨와 팔을 완전히 밀어버렸습니다.
팔꿈치로 밀어버리더군요. 네, 제 자리로 넘어온 그 팔꿈치로요.
자세를 고쳐앉으며 물었습니다. "뭐하시는겁니까?"
그러자 "너는 뭐하는데 ㅆㅂ" 이라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반말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부터 밀어대길래 나도 좀 밀어봤다."
"밀긴 니가 밀었지 ㅆㅂ"이라고 답하더군요. 욕을 또 하길래 저도 욕을 시작했습니다.
"어지간하면 조용히 갈랬는데, 창문에 옷이 다 젖어서 내 자리 찾은것 뿐이라고, ㅅㄲ야."
"ㅅㄲ? 욕을 해? 너 몇살이냐?"
"욕도 반말도 네가 시작했다 ㅅㄲ야."
대화가 이렇게 진행되니 씩씩거리다 갑자기 짐짓 차분한척 말을 시작하더군요.
"넌 니가 참았지? 내가 참은거야. 봐라 내가 어떻게 앉아서 왔는지." 라며 과장해서 얌전하게 앉아보이더군요.
그래서 전 "그럼 그렇게 가든가 이제." 하고 제대로 앉았습니다.
그렇게 2분 지났나; 또 조용히 욕을 내뱉더니 쩍벌과 어깨밀기를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헛웃음짓고 다리와 어깨를 함께 밀어버렸습니다.
바로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더군요. 한대 칠듯 손도 오르락내리락.
전 그대로 앉아 031-112를 누른 뒤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두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 ㅆ발새ㄲ가 보자보자 하니까!!" 라고 하길래 "조용히 해라, ㅆ발새ㄲ야. 쪽팔리지도 않냐?"라고 했고,
"진짜 미친ㅅㄲ네 이거, 내가 참고 왔다고! 내가!" 라고 하길래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말고 쪽팔리니까 얌전히 좀 가자, 미친ㅅㄲ야." 라고 했습니다.
계속 같은 말로 되받으니 열받아서 어쩔줄 몰라하더군요.
그러다 괜히 "니가 쳐다보면 어쩔건데?"라고 하길래 "넌 거기서서 어쩔건데?" 했더니 멍..
그래서 이번엔 제가 먼저 "서서 그러지말고, 꺼져라. 이제 빈자리 많네."라고 권하니
"니가 뭔데 꺼지라마라냐?" 하길래 "그래? 그럼 계속 서서 가면 되겠네." 하니 또 멍..
그렇게 멍하니 서서 조용한 혼잣말로 계속 욕만 중얼거리다 뜬금없이
"ㅆ발ㅅ끼가 대체 교육을 어떻게 받은거지? 어?" 라고 큰소리치더군요.
나이차도 얼마 안나는 것 같은데 무슨 이런 황당한 소리가 나오지 싶어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 터뜨리며 "어떻게 봐도 너보단 잘 받았겠지..;" 했는데 이게 카운터펀치였나 봅니다.
갑자기 완전히 조용해지더니 빈자리 가서 앉더군요.
그 뒤로는 별 일 없이 도착 잘해서 제가 먼저 내렸습니다.
집에 와서 동생에게 이야기하니
"나이먹고 양아치하고 싸운게 뭐 자랑이냐."길래 "그러네."하고 방에 들어와 사이다게시판에 글쓰고 앉아있습니다ㅋㅋ
그래서 다 쓰고나니 좀 부끄럽네요.
그래도 이렇게 욕해가며 싸워본건 나름 인생 처음 일이라 되려 시원한 점도 있고해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