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두산은 2013 한국시리즈 포스트시즌서 작은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가을 잔치의 가장 밑자리에서 시작했지만 상대적 열세라는 평가를 잇달아 뒤집고 있다. 준플레이오프서는 먼저 2패를 당한 뒤 리버스 스윕을 해냈고, LG와 플레이오프서는 3승1패로 완승.
사실 두산의 상승세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포스트시즌서 8경기나 이미 치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규 시즌의 서너배의 체력 소모가 있는 포스트시즌의 한 경기. 경기에 나서는 거의 모든 선수들이 부상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두산이다.
반면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자칫 불만이 쌓이며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두산은 포스트시즌 경기가 거듭될 수록 더욱 단단한 하나가 되고 있다. 삼성과 한국시리즈서도 원정 경기의 불리함을 딛고 1,2차전을 모두 쓸어담았다.
경기를 끝낼 수 있는 기회는 삼성이 많았다. 그러나 결정적 한 방은 나오지 않았다. 삼성의 미스도 있었지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두산의 기운이 만든 결과이기도 했다. 삐끗하면 경기가 끝나는 1사 만루 상황. 전진 수비하며 타자를 노려보는 두산 야수들의 눈빛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 기운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알 수 있다.
체력은 이미 바닥을 친 상황이다. 조그만 충돌에도 좀 처럼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은 이유다. 한 선수는 “솔직히 뼈 마디가 다 아플 정도다. 운전하다 뒤에서 받힌 것 처럼 온 몸에 통증이 있다. 대부분 선수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산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면 다른 선수들이 되고 있다. 공을 향해 몸을 던지고, 상대와 충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번 부딪히면 한참을 일어서기 힘들 만큼 통증이 배가 되는 상황. 적어도 플레이에 집중하는 동안 만은 두려움을 잊은 듯 몸을 사리지 않고 있다.
기적은 실체가 없다. 때문에 무엇이 이처럼 두산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선수들의 말 속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 한가지 있다. 그건 바로 ‘마지막’이란 단어다.
이 가을, 두산 선수들은 유독 마지막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가을 잔치 단골 손님이며 그 어느 팀 보다 두터운 선수층을 가진 것이 두산이다. 포스트시즌은 언제든 도전해 볼 수 있는 무대다. 하지만 그들의 포현을 빌자면 ‘지금의 우리들에겐’ 마지막 가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산 한 선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가 이 멤버로는 다시 야구를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더 이 순간이 소중한 것 같다. 나 말고도 많은 선수들이 조금 더 ‘우리’가 같이 야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이 한 명 뿐 아니라 정말 많은 두산 선수들이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단어가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선수도 있고 손시헌 이종욱 최준석 등 FA가 되는 선수들도 있다. 또 2차 드래프트나 신생 구단 KT의 우선 지명 등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함께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늘 지금 이 경기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경기를 하고 싶다는 절실함이 두산 선수들의 마음 한 켠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가을이 되면 참 많이도 울었던 멤버들이다. 늘 좋은 경기를 했지만 마지막 순간엔 언제나 주인공을 빛내주는 조연에 그쳤다. 누군가는 소리내어 울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용히 다가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물론 위로하던 선수의 가슴 속에서도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포스트시즌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 가을. 조금 더 함께 하기 위해, 그리고 이젠 승리의 눈물을 흘리기 위해 두산 선수들은 다시 아픈 몸을 일으켜 그라운드로 향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김수영(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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