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충남 아산의 포장용 필름 제조업체 S사. 필름 제작 과정에서 나오는 열기로 후끈한 공장 안에서는 신입 직원이 선임자의 작업 설명을 듣고 있었다. 40대 초반인 그는 '신입사원' 글자가 등과 가슴에 새겨진 주황색 조끼를 입고서 필름을 감는 종이관을 규격대로 잘라 기계에 끼우는 법부터 원료와 제품을 옮기는 동선, 청소 도구 위치까지 하나하나 배우고 있었다.
이 회사의 박모 인사팀장은 "10년 전만 해도 신입사원을 뽑으면 거의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 지원했는데 점점 지원자 연령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40대는 물론이고 50대 지원자도 눈에 띌 정도"라며 "벌써 40대 지원자 수가 30대 못지않게 많아졌는데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만성적 구인난에 현장 인력 고령화까지 겹쳐 신음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50대 근로자 비중은 2009년 14.6%에서 2015년 21.5%로 급증했다. 40대 이상으로 보면 전체 중기 인력의 60%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30대 비중은 34%에서 28%로 줄었고, 20대 비중도 16.3%에서 11.9%로 감소했다. 현장 직원은 점점 고령화되는데 젊은 인력은 들어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종욱 서울여대 교수(경제학)는 "전체 고용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중기 현장의 고령화는 향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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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 기술 전수 안 돼…10년 뒤가 두렵다"지난 12일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건물용 배관 제조업체 S금속.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 20명의 평균 연령은 50세다. 가장 나이가 적은 직원이 41세다. 20~30대 직원이 최근 한두 명씩 들어왔지만 6개월을 못 버티고 퇴사했다. 한모 대표는 "납품 업체들이 요구하는 제품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기 어렵다"며 "지금 직원들 퇴직하고 나면 회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구 D화섬 윤모 대표는 "사람 구하기도 어렵고 업황도 좋지 않아 내 대(代)에서 사업을 접을 생각"이라고 했다.
충남 아산의 한 합성수지 필름 제조업체에서 중년의 신입사원들이 ‘신입사원’ 마크가 새겨져 있는 주황색 조끼를 걸치고 공장에서 기술 교육을 받고 있다. /신현종 기자문제는 직원 고령화가 국내 중소기업 제조 현장에서 기술 전수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젊은 직원들의 빈자리를 중·장년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메우고 있다"며 "생산 현장에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다 보니 20~30년 현장에서 익힌 숙련 노동자들의 '손끝 기술'이 사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부산의 한 선박 인테리어 업체는 최근 일본 크루즈선 수출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숙련된 기술 인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크루즈선에 화장실·침실을 세트로 만들어 납품해야 하는데, 길어야 3~4년 일하다 떠나는 외국인 근로자들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직원 200여명 중 외국인 노동자 30~40명을 빼고 20~30대는 서너 명에 불과하다. 이모 대표는 "외국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할 수는 없고, 젊은 직원들이 좀 더 들어오면 가르쳐서 회사를 더 키워볼 텐데 답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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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젊은 피 수혈에 안간힘젊은 직원 유치를 위한 중소기업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부산 기장군의 스팀 세척기 제조업체
에스제이이는 요즘 회사 내에 골프연습장과 잔디 축구장, 원룸형 기숙사 같은 복지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있다. 이 회사 유호묵 대표는 "젊은이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도록 대기업 못지않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 한다"고 말했다. 농업기계 생산업체
한아에스에스는 직원들에게 대학 학비를 지원하고, 전(全) 직원에게 해외 연수와 박람회 참가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독일과 일본처럼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습득한 기술 인력들이 창업에 나서고, 이들이 젊은 인력을 고용해 기술을 전수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어느 순간 그 고리가 끊어졌다는 지적이다. 서경란
IBK경제연구소 중소기업팀장은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을 높여 질 좋은 신규 인력을 끌어들이고, 중소기업에서 기술을 익힌 숙련 기술자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