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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손학규가 칩거에 들어갔다. 그토록 공들인 통합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자릴 복병 문재인에개 내준 그는 아마 허탈에 잠겼을 것이다.
2007년 3월9일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빗발친 비난을 감수했다. 대선 후보의 대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여당에서보다 야당에서 운신의 폭을 넓혔다.
두번에 걸친 당 대표를 지냈다. 당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구원투수가 되기도 했다.
2009년 10·28 수원 장안구 국회의원 재선거 땐 상주하며 이찬열을 도와 당선시켰다. 그 무렵 만석공원에 새벽같이 나와 벤치에서 아침 산책객들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2011년 4·27 분당을 국회의원 보선 땐 자신이 적지에 나서 승리의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각급 선거가 있을 때마다 범야권 단일화를 강조해 직접 <중재하기도 했다. 그가 훗날 야당 대선 후보가 되면 범야 단일화를 하기 위한 원려였던 것이다.
이런 그가 경선기간 ‘패거리 밀실담합’을 내세워 당 지도부, 특히 이해찬 대표를 성토했다. 이해찬과는 악연이 있다. 2005년5월8일 이해찬 총리 주재의 공장 신·증설 문제를 논의 도중, 손학규 경기지사는 자릴 박차고 퇴장했다. ‘정부의 기만적 입장 변화가 없는 한 참여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당시의 손 지사 성명서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위해 준비한 것 가운데 압권은 ‘100일 민생탐방’이다. 2006년 6월29일 경기도지사직을 떠나면서 바로 나선 이 민생탐방은 100일동안 전국의 민생현장을 돌며 체험하는 것이었다. 탄광 막장이며 수해복구 현장 등을 누볐다. 사진만 찍고 마는 것이 아니고 진종일 광원 등과 함께 곡괭이질을 했다.
손학규는 경선을 하는동안 각 시·도에서 줄곧 2위를 했다. 막판에 가진 경기지역은 1위에게 누적득표 과반수를 안주어 결선투표로 가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기대를 빗나가 여전히 2위에 머물렀다. 시흥 출신의 전직 경기도지사다. 짐작컨대 무척이나 섭섭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임양은 논설위원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614039
▲ 6일부터 3박4일의 일정으로 제주를 비공식 방문중인 손학규 고문이 7일 한라산에 오른 모습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손 고문은 대선 경선 당시 지지자들을 만나는 등 비공식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이후 숨고르기에 들어간 손학규 고문이 비공식 일정으로 제주를 방문해 개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손 고문은 6일 자신의 차량을 직접 배에 싣어 제주를 찾은 뒤 김우남 국회의원 등 당내 경선에 힘써준 지지자들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 이틀째인 7일 오전 8시에는 김상철 전 제주민예총 지회장과 함께 성판악 코스를 이용해 한라산 백록담 정상에 오르는 등 개인 일정을 이어갔다.
손 고문은 8일 모 종친회와 만나는 등 비공식 행사에 참여하고 9일 차량으로 제주항에 이동한 후 배편으로 목포를 향할 예정이다.
김상철 전 제주민예총 지회장은 "문 고문의 제주방문은 경선이 끝난후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라며 "별도의 공식행사 없이 개인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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