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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5월 미국은 전쟁 위험이 짙어지자 기존 항공모함을 개조시킨다.
기존항모보다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작전수행능력이 향상되ㅏㄴ 세척의 항공모함들이 건조되어
1936년 4월 4일 첫 항해를 시작한다.
미항모 요크타운의 기적은 산호해 전투에서 시작 된다
일본은 미국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이용해 자신들을 견제할것을 우려해 오스트레일리아 군사요충지인 포트모르즈비를 점령하기위해
인근 라바울을 점령하고 잇던 병사들을 포트모르즈비로 상륙시킨다.
그리고 경항공모함 쇼호(일)가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뉴기니의 동쪽해역에서 대기하고있었다.
미국은 매직암호해독기로 일본의 퍼플암호를 90%가량 해독하는데, 그사실을 알게된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서남태평양에서의 미국의 행진이 완전히 상실될것을 우려해 산호해의 결사적인 방어를 시작한다.
미 항공모함 함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바로 이 전투에서
미국 항공모함 전력을 상실시킬수있다고 생각하여 본토로 귀환중이던 대형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에게 산호해로
출동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1942년 5월 1일 일본이 툴라기 섬을 점령하고 그다음 목표인 포트모르즈비로 진격할것이걸
알게된 미국은 산호해 근처에 있던 요크타운과 진주만에서 남서쪽 해안에 있는 렉싱턴의 함재리를 발진시켜 이들에게 즉강대응을 가한다.
예상대로 미항모가 근처에 있따는걸 안 야마모토는 미항모를 찾는데 혈안이됬다.
하지만 적항모를 먼저 발견한건 미국이었고 5월 7일 아침 미국함대에 발견된 쇼호는 90여기에 달하는 함재기들이
내뿜는 포화속에서 30분간 분투를하다 11발의 폭탄과 7발의 어뢰를 맞고 불길에 휩쌓여 침몰한다.
일본의 상륙작전을 효과적으로 제압할수 있었지만 반대로 미항공모함들의 위치가 일본함대에 노출되고말았다.
일본 항공모함 함대와 미국 항공모함함대가 서로를 거의 동시에 발견하고 함재기들이 출격하기 시작했다.
쇼카쿠와 즈이카쿠에서 70기, 렉싱턴과 요크타운에서 80기의 함재기가 출격하여 곧바로 상대편 항공모함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함재기인 제로기는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미국함재기들보다 훨씬 뛰어낫고
일본함대의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뛰어난 회피기동과 강력한 대공포와로 미미한 피해를입었다.
그반대로 미국함대의 렉싱턴은 연료파이프를 직격당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고 항공모함 기숙력을 유출 시킬수없는 미국은 렉싱턴을
자침시켜 산호해 바다를 무덤으로 삼게된다. 그에 비해 요크타운은 폭탄한발이 갑판을 뚫고 폭발해 70명의 승무원이 전사했지만 살아남은
승무원들의 필사적인 진화작업으로 최악의 상황은 피할수있었다. 결국 제 17함대 사령관
프랭크 플레처 제독은 요크타운을 후퇴시키라고 명령, 이는 나중에 전쟁양상을 바꿀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를 가져다줄 현명한
후퇴로 기록된다.
일본은 요크타운을 침몰시키지 못하였지만
수개월간 작전에 투입하지 못할정도의 타격을 입혔다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생각한것은 피해를 당한
미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즉 일본이나 미국 모두 앞으로 오랜기간 전력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
향후 미국은 CV-6엔터프라이즈와 CV-8호네트 2척의 항모로 태평양을 지켜야 할것으로 보았다.
( 엔터프라이즈와 호네트) 4척의 대형항모가 건재하고 쇼카쿠와 주이카쿠는 작은 수리만 요할정도였기떄문에
반면 일본은 가가 加賀, 아까기 赤城, 히류 飛龍, 소류 蒼龍등 4척의 대형항모가 건재하고 쇼카쿠와 주이카쿠는 작은 수리만 요할정도였기
때문에 태평양에서 미국의 전력으로 일본을 막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지만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의 전함세력을 일거에 몰락시킨 일본은 산호해 해전을 분석한 결과 비록 적지만
미국의 잔존 항모 세력이 그들에게 유일한 위험요소인걸 확인하게된다.
일본 항모 아까끼
이런 이유로 야마모토(일 연합함대 사령관)는 사상 최대의 원정대를
조직하여 미국의 잔존 항모세력을 한 곳으로 모두 불러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고자
그는 그 결투장으로써 미드웨이 해역을 지목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계획은 미국 정보기관에
감청이되었다. 하지만 미국도 물러섬 없는 응전을 하기로 하고 미드웨이 해역으로 출진한다.
<니미츠 제독>
일본은 1942년 5월 26일 항모 4척이 주축인 대 함대를 출동시켜 6월 4일 미드웨이를 급습할 예정이었고
정보망을 통하여 일본 작전 파악하고있던 미국도 엔터프라이즈와 호네트가 주축인 제16기동부대를 5월 29일 미드웨이 해역으로
출동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이들 항모 2척과 미드웨이 섬에 주둔한 항공대를 항모 한척으로 계산하여도
일본 함대와 대등하게 맞서기는 역부족이라 판단한다. 하지만 태평양의 미군에게 더이상의 항모는 없었다.(건조중은 생략)
고심끝에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은 산호해 해전에서 치명상을 입고 진주만을 향해 돌아오던
요크타운에게 최대한 속력을높여 5월 27일까찌 귀환할것을 지시하고 진주만에 있는 정비부대에게도 명령을 내린다.
"요크타운이 함재기를 이 착함 할 수 있도록 수리하라 ! 단, 주어진 시간은 3일이다 !"
비록전쟁에서 개전후 최초로
적항모를 격침시켯으나 그에못지않은 중상을 입은 요크타운은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기 시작한다. 그때 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요크타운을 3일만에
전투가 가능하도록 살려내기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가했다.
그러나 기적은 연출되었고 밤낮없는 수리를 받은 요크타운은 감았던 눈을 뜨고 함재기 운용이 가능한 상태로 서서히 살아난다.
<수리중인 요크타운>
마침내 요크타운은 엔터프라이즈와 호네트의 제 16 기동부대가 출동한 다음날인 5월 30일
산호해 해전의 피로도 회복하지 못한체 다시 제 17기동부대를 이끌고 미드웨이로 진격하게 된다.
하지만 요크타운은 옷몸에 깁스를 하고 링거가 꽂힌 환자의 모습이었다.
항해중에서도 수많은 기술진이 함께 타고 계속 수리를 하고있었던 것이다.
<항해중인 요크타운>
부상병 요크타운은 조국의 부름에 망설이지 않고 부실한 몸을 추스르며 전선으로
달려나가게 된다. 이런 기적과도 같은 요크타운의 재 출동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요인중 하나가 되는데
미국 스스로도 불가능 하였다고 생각한 일인데 일본은 당연히 요크타운을 미국의
예상전력에서 제외하여 놓은 상태였을것이다.
<엔터프라이즈함 그리고 호넷 함을 뒤따르는 요크타운>
그리고 1942년 6월 3일 미드웨이
섬을 일본의 항공대가 선제공격하여 도륙함으로써
역사에 길이남을 일본과 미국의 건곤일척인 미드웨이 해전의 서막이 오른다.
그러나 섬이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일본의 의도를 미리 간파하고 있던 미국은
일본의 항공모함을 먼저 찾아 내기 위해 애썻고 그결과 미국이 일본보다 먼저 상대의 함대를
발견하여 쉴틈없는 계속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미드웨이섬,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호네트에서 연이어 출격한 뇌격기들을 주축으로
미국의 공격비행대들은 일본항모들을 향하여 무려 7번에 걸친 쉼없는 파상공격을 연이어 벌였으나.
대부분 격추되는 참담한 실패를 하게된다.
그리고 뒤늦게 요크타운에서
발진한 미국의 마지막 뇌경기비행대인 제 3 뇌격비행대대(VT-3)가
전투공역에 8번째 공격비행대로 나타나 일본 항모들을 향하여 돌진한다.
그러나 저속침투하는 이들도 바로 앞서 있었던
다른비행대의 공격과 마찬가지로 차례차례 일본의 제로기의 요격과 방공포의 화염에
차례대로 사라지고 만다.
3시간에 걸친 연이은 미국의 파상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내어
승기가 일본으로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음을 불사하고 계속하여 저고도로 침투하는 미국의 뇌격기 비행대를 막기위하여 일본의 방공수단들이
모두 수면을 향하여 내려왔던 바로 그순간,
엔터프라이즈 소속 급강하 폭격기 비행대가 고공에 나타나 순식간에 일본의 항모들을 덮쳤고
이 단한번의 공격으로 일본의 거대항모 가가와 아까기가 운명을 고하게 된다
< 침몰 하기전의 가가 의 모습>
<침몰하기전의 아까끼>
그리고
요크타운에서 출동한 제3급강하 폭격비행대 (VB-3) 가
마지막으로 전투공역에 나타나 인근에 살아남아 있던 항모 소류를 향하여 돌진,
단숨에 소류의 목숨을 끊어 놓는다.
만신창이 요크타운이
두번째로 잡은 일본의 항모에 소류가 이름을 올려놓게 되는순간.
소류에 대한 공격.. 워낙 이때 전투사진이 없기때문에
타임 매거진은 나중에 큰창고 건물에서 모형을 동원해 전투상황을 재현해서 사진을찎는다
처음 항공모함 4:3으로
개전한 미드웨이 전투가
불과 반나절만에 1:3으로 힘의 균형추가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요크타운의 예상 외 참전이 없었다면
이루기 힘든 성과로 봐도 무방할것이다.
이러한 대참사에서 간신히 벗어난
야마구치 다몽
제독이 이끄는
마지막 항모 히류가 남아 있었다.
당시 일본이 보유한 총 6척의 대형항모 중 ( 그중 4척이 미드웨이 해전참전)
순식간에 3척이 손실되었다면
작전을 취소하고 히류 만이라도 그 목숨을 보존해야했었다.
<항모 히류>
하지만 야마구치 다몽 제독은 복수심에 불타
앞뒤 안가리고 카미가제를 감행한다.
곧바로 잔여 항공 전력을 수습한 다몽제독은
즉각 미국 항모들을 찾아서 격침할것을 항공대에 명령.
그는 히류르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미국을 두들겨 부수고 싶었던 것이었고
히류와 요크타운은 전사에 길이남는 대격전을 펼치게 된다.
히류에서 출격한 일본의 공격 비행대는
소류의 목숨을 거둔 요크타운 소속의 제 3 급강하 폭격비행대(VB-3)가
사라진 방향으로 하염없이 날아간다.
그때까지도 일본은 미국이 몇 척의 항모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막연히 엔터프라이즈와 호네트의 2척이 이번 전투에 동원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을 뿐이라고 믿고 싶었을것이다.
드디어 일본의 공격 비행대는 미국 항모를 찾아 내었는데 바로 요크타운이었다.
일본기를 발견한 미국 방공전투기들이 악착같은 방어에 나서
많은 일본 공격기들이 파괴되었지만
3발의 폭탄이 요크타운의 갑판위에 정확히 명중하고 그중 한발은 기관실에
들어가 대폭발을 일으키고 엄청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다.
<불타는 요크타운>
일본도 미국도
(일본은 아직도 그들이 공격한 항모가 요크타운이라고 생각못함)
요크타운의 운명이 다하였다고 생각하였을 정도로
이번공격에서 요크타운이 입은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불사신인 요크타운은 참화를 당한 일본항모처럼 후속한 연쇄 폭발은 없었다.
<수리중인 요크타운>
더이상의 폭발이 없자
요크타운의 승조원들은 필사적인 진화에 나섬과 동시 응급복구에 들어가게되고
이들의 노력으로 파괴된 기관실이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폭탄에 의해 구멍 난 갑판도 이착함이 가능할 정도로
그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여기에 걸린 시간은 불과 1시간이었따고 기록되어 있다.
또 한번 요크타운의 기적이 이뤄지는 순간...
그들은 요크타운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모함으로 귀환하던 급강화폭격비행대와 하늘에서 교차하면서
또하나의 항공모함을 잡기위해 날아가고자한다
이들은 마지막 미국 항모를 잡으면 치열했던 해전을
역전시켜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안가 미국의 마지막항모( 일본이 생각하던 마지막미국항모) 를 찾아낸다.
그런데 ....
그게 ㅋㅋㅋㅋ
기적적으로 회복한 요크타운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본은 요크타운이 바로 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바로 그항모였다는것을 모를정도로
외관상으로 긴급 복구가 완료된상태...
많은 수가 요격당하여 추락하기는 하였지만 일본의 뇌격기들은 즉각 저고도로 내려와 공격에 나서고
그중 일부가 요크타운을 향하여 어뢰를 투하하는데 성공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저고도로 근접하여
내려와 공격을 가한 일본 뇌격기의 공격으로
2발의 어뢰가 정확히 요크타운의 허리에 강타하였고
흘수선에 타격을 입은 요크타운은 순식간에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플레처 제독은 부하들에게 함을 포기할것을 지시,
그 또한 요크타운에서 하선하여 근처 함정으로 옮겨 탄다.
그사이 엔터프라이즈와 호네트에서 출격한 미국의 공격 비행대가 후퇴하지않고 끝까지 저항하던
일본의 마지막 항모 히류를 찾아내고
히류는 격침 당한다.
이로써 일본은 전쟁 개시 후 태평양을 주름잡고 다니던
항모공격부대의 주력들이 순식간에 괴멸당하고 이후로부터 전쟁의 주도권도 내주어
수세적인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어진다.
그런데 20도나 기울어 침몰하고 있던 요크타운이
<기울어진 요크타운을 구축함 Humman 이 이끌고 천천히 진주만으로 향하는.>
마치 " 내 운명은 끝나지 않았다" 고 외치는 것처럼
다음날이 되도록 바다위에 떠 있었다.
사실 침몰을 멈추고 기울어진 상태로 떠 있는 자체가 기적이었다.
결국 요크타운에 올라가 조사를 한 기술진은
더이상의 침수는 없을것으로 판단, 침몰 하도록 놔두기로한 계획을
바꾸어 요크타운을 진주만까지 끌고 가 수리하기로 결정.
하지만
일본 잠수정이 요크타운에게 다가와 (I-168)
잠망경을 통해 7척 호위함들의 호위를 받아 견인되어 천천히 이동하는
요크타운을 발견한 잠수함은 서서히 미행에 나서며 공격할 기회를 엿본다
그리고 마침내 호위함들의 틈을 찾아 요크타운을 공격하기 좋은 측면에 서서
4발의 어뢰를 연속으로 발사한다. (어뢰의 간격을 촘촘하게 하여 맞으면 4발모두 명중이고 빗나가면 끝이다 식의 모아니면 도의 공격이엇다함)
2발의 어뢰가 요크타운을 빗나갓으나
1발은 견인하고 있던 험먼을 순식간에 두동강 내 침몰시키고
나머지 1발은 겨우 숨 쉬고 있던 요크타운의 측면을 정확하게 강타한다.
기울어 졌지만 침몰하지않고 기적처럼 버티던
요크타운은 금속히 옆으로 기울어 버리고 마침내 최후가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순간 침몰이 다시한번 멈추고 바다위에 떠 있었다.
요크타운의 이러한 처절한 사투는 신의 도움을 받는게 아닌가 할 의구심이 들정도로
기적적인 것 이었다.
산호해 해전과 연이어 참가한 미드웨이 해전에서 가장 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항공모함답게 쉽게 그 생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요크타운은 진정한 불사신의 모습으로 꿋꿋히 버텼으나
동이 터오는 6월 7일 새벽 05:00시
가뿐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태평양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성기의 CV-10 요크타운 항모 전투단>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장렬하고 장엄한 최후를 맞이한다.
<1943년 4월 15일 취역한 2번째 에섹스 급 항모>
하지만 당연히 이 위대한 항모의 이름을 미 해군은 저버릴수가 없었다.
항모에게 최초 계획된 함명인 본 홈 리처드 대신
요크타운 이름을 붙여 불사신의 이름을 승계시킨다.
이또한 미 해군 역사상 전투로 손실한 함명을 가장 빨리 계승시킨 경우에 해당될정도였다.
<바닷속에 묻힌 요크타운>
출처는 인터넷 여기저기 정보들을 짜깁기하기도하고 사진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편집인데 편집이라도 1시간넘게 걸리는군요....
글은 전부 제가 타이밍 했습니다. 자료수집하고 몇몇은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했습니다.
수집한곳이 방대하여 일일이 출처를 적지못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