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년을 다닌 유치원 졸업이다.</p> <p>담임선생님은 내가 봐도 특별할 만큼 성실하고 열정이 넘치는 좋은 선생님이고,</p> <p>우리 애나 다른 친구들에게 충분한 관심과 사랑과 마음을 쏟았다 생각한다.</p> <p> <br></p> <p>졸업식 행사에서 선생님은 아쉬움과 슬픔에 울먹인다.</p> <p>아무런 관련도 없는 나조차도 괜신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p> <p>그런데 아이들은, 아이들은 마냥 즐겁고 신나 보인다.</p> <p>선생님이 아이들 좋아하는 만큼, 아이들 또한 선생님을 참 좋아하고 잘 따랐던것 같다.</p> <p>그런데 이놈들은 우는 선생님 무색하고 서운하리만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p> <p>왜 이럴까?</p> <p> <br></p> <p>아이들은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p> <p>좋으면 웃고 싫으면 운다.</p> <p>감정을 잘 억제하지도 못하며, 억제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p> <p>즉, 아이들은 선생님과의 이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닌 것이다.</p> <p>그렇다고 이들이 냉정하거나 매정한 것은 또한 아니다.</p> <p>이들 만큼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으며</p> <p>이들만큼 순수하고 진실하며 뜨거운 놈들이 어디 있으랴?</p> <p> <br></p> <p>감정을 억제할 생각도 능력도 없는 순수하고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이</p> <p>자신을 보살펴주고 교감하며, 자신이 좋아하고 고마워하던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은</p> <p>슬픔감정을 느끼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할 수 있다.</p> <p>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그렇게 감흥도 슬픔도 없어 보인다.</p> <p>왜 그럴까? </p> <p> <br></p> <p>슬픔을 상실에서 오는 아픔 감정 정도로 규정한다면 이는 너무 포괄적이고 단순하면서도 막연하다.</p> <p>슬픔이 그런것이라면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있는 감정이다.</p> <p>놀고 있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빼앗거나 숨겨보면 금방 그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p> <p> <br></p> <p>이별에서의 슬픔도 그와 마찬가지로 상실에서 오는 감정상태다.</p> <p>아이들이 이별에서의 슬픔이 없는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p> <p>이별에서의 슬픔이 무엇에 대한 상실로부터의 감정인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p> <p>즉, 이별을 통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가?</p> <p> </p> <p>이별에서 오는 슬픔은 그 사람에게 쏟은 자발적 성의(마음씀, 신경씀, 맞춰줌, 헌신, 정신 쏟음, 길들여짐)의 크기에 비례할 듯 하다. </p> <p>아이가 누군가와 교감하는 방식은 어른의 그것과 다르다. </p> <p>아이는 누군가와 가까워 지고 싶으면 그냥 가까워진다. 쉽게 가까워 진다. </p> <p>처음보는 그자리에서도 특별한 어려움이나 신경씀 없이 쉽게 가까워 지고 쉽게 놀고, 그렇게 쉽게 헤어진다. </p> <p>서로를 이해하거나 맞춰주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p> <p>그렇게 서로 적정한 타협선에서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p> <p>딱히 쏟은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별해도 그렇게 손실이 아니다. </p> <p>또한, 아이들은 자신과 쉽게 교감할수 있는 대상이 넘쳐나며 또한 앞으로도 충분히 풍부할 것으로 낙관하며 예측한다.</p> <p>또다시 또다른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또다시 그들과 거리낌 없이 가까워지고 즐기며 놀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p> <p>그래서 이별에도 그렇게 아쉬울 것도 없는가 보다.</p> <p> <br></p> <p>어른은 다르다. 어른은 누군가와 가까워지는데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하고 많은 정신을 쏟아야한다. </p> <p>교감수준으로 신뢰를 구축하는데에는 신경도 써야 하고, 때로는 포기를 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p> <p>그렇게 자신의 정신과 시간을 쏟은 대상과의 이별, 즉 더 이상 교감할 수 없음은 분명 큰 손실이자 슬픔이다. </p> <p>또한 어른에게는 누군가와 또다시 가까워 질 기회도 별로 없다. </p> <p>이제 그들에게는 예전처럽 쉽게 별로 교감 기회가 충분히 있지 않다. </p> <p>교감수준의 신뢰를 만들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p> <p>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그러나 충분히 합당한 예측이다. </p> <p>따라서 어른의 지금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은 아이의 그것에 비해 더 아쉬운 것이 아닌가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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