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2006-07-2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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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진우기자] '21일째 파업, 생산손실 9만4천대, 파업손실 1조3000억원, 하청업체 손실 포함시 2조원' 현대차 노조의 만행(?)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수치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산업부 이진우 기자가 이 숫자들 속에 들어있는 허실(虛實)을 전해드립니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한 달 만에 파업을 접었습니다. 날짜로는 딱 한 달이고 일해야 되는 날 안한 걸 따지면 21일입니다. 노조가 파업하는 동안 만약 공장을 돌렸다면 9만4000대나 더 만들 수 있었고 돈으로는 1조3000억원 어치랍니다. 참고로 현대차는 매년 파업을 하고도 1년에 2조원 가량의 이익을 올리는 회사입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보죠.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안했으면 올해 현대차의 순이익은 3조원이 넘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파업손실 때문에 올해는 순이익이 1조원 쯤 줄어드는 걸까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파업을 했건 안했건 올해 이익도 다른 변수가 없는 한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연간 이익이 2조원 가량인 회사가 파업으로 1조원 넘게 손실이 나면 주가도 반토막이 나는 게 맞겠지요. 반대로 파업을 안한다면 주가가 50% 이상 올라야 되지요. 그러나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21일간의 파업손실이 1조3000억원이면 하루에 700억원 가량 됩니다. 올해 현대차 노조가 합의한 기본급 인상액은 7만8000원인데요. 그걸 8만원으로 올리자는 노조의 요구를 거절하는 바람에 파업이 연장될 뻔했습니다. 기본급 2000원 인상액을 연봉 총액에 반영하면 연간 7만원 정도구요. 근로자 전체로 따져도 40억원이 채 안됩니다. 회사 측은 그걸 절약하려고 하루 700억씩 손실이 나는 파업 연장을 불사했던 겁니다. 계산기만 두드려서는 절대 할 수 없는 판단이지요.
이렇게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생기는 이유는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차가 발표하고 언론들이 보도하는 '파업손실액'은 실제로 '생산차질액'에 불과합니다.
기업의 이익과 손실을 추정하는 직업을 가진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현대차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적게는 100억원 많게는 800억원 가량으로 추산합니다. 파업을 안했으면 현대차의 이익이 됐을 돈입니다. 파업기간 21일로 나누면 하루에 5억~40억원꼴인 셈이죠.
그러니까 회사 측은 임금협상 테이블에서 40억원 가량의 추가 지출이 예상되는, 기본급 2000원 추가 인상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겁니다. 파업을 하루 더 하더라도 해볼만한 모험이라고 봤다면 합리적인 선택인거죠.
현대차 파업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 수백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연간 순이익이 2조원이 넘는 현대차의 주가가 주식시장에서 그렇게 견조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매번 페달을 구르지 않아도 자전거가 저절로 굴러갑니다. 그때 몇초 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았다고 페달수에 바퀴지름과 원주율을 곱해서 '이만큼 손실'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과 비슷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기 위해 한 애널리스트의 계산을 그대로 옮겨드리죠.
"현대차가 파업기간동안 9만4000대의 생산차질이 있었는데 하반기에 5만대는 만회할 걸로 봅니다. 다만 그 5만대는 잔업이나 특근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추가 인건비가 500억원 정도 들겁니다. 파업으로 인한 직접 손실이죠. 나머지 4만4000대는 아마 못만들 수도 있는데 이걸 다 만들어서 팔 수 있었다고 해도 이익률이 5%정도라 이익은 350억원 정도입니다. 합쳐서 850억원정도가 실제 파업손실이죠."
또 다른 애널리스트의 설명입니다.
"현대차의 국내공장과 해외딜러 대리점에는 늘 수개월치의 재고가 있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배 위에도 늘 한달치 정도의 재고가 있습니다. 현대차가 한달째 파업을 했지만 미국의 현대차 판매 딜러는 예전부터 갖고 있던 현대차를 팔면 그만입니다. 조금씩 비어가는 그 딜러의 창고는 파업이 끝난 후에 또 채워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현대차 파업에 따른 실제 판매차질을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파업이 40~50일 넘게 계속되지 않으면 피해는 별로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9만4000대의 생산차질은 하반기에 모두 만회할 수 있고 다만 그중에 1만대 정도는 팔 수 있었는데 파업으로 시기를 놓쳐서 못 판 매출차질로 봅니다. 실제 손실은 그래서 100억원도 안됩니다"
현대차 직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복잡한 계산법을 굳이 옮기는 이유는 현대차 노조를 '1조원 넘는 회사돈을 허공에 날려버린 이기적 집단'으로 몰아가는 논리가 현대차의 노사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왜 현대자동차와 많은 신문 방송들이 그런 과장된 수치를 끌어들이는 지 이유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를 길들여야 하겠고 그러려면 여론을 움직여야 하는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국민들은 '1조원 손실'이라면 그냥 그런 줄 알고 큰 돈이라고만 생각하지 정말 그런 건지 굳이 따지지 않기 때문이겠죠.
물론 현대차 파업의 손실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파업 자주하는 근로자들이 만든 차가 온전할 리 없다는 해외 소비자의 인식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겁니다. 노조가 비난 받을만한 부분도 여전히 많고, 파업을 되풀이 하는 현대차 노조에 한번 쯤은 제동을 걸어야 하는 국가적 차원의 대승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치한 홍보전은 불신으로 점철된 현대차 노사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막을 아는 현대차 노동자들에게는 회사를 '언론을 동원해서 과장된 여론몰이를 일삼는, 아무리 봐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노조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줘야 하고 매년 이맘때만 되면 연중행사로 파업이 터지는 기존의 노사관계를 끊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현대차의 논리에 십분 공감합니다.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는 노조도 양보할 부분은 양보해야 한다는 여론의 지당함에 충분히 동감합니다.
그러나 그 수단이 과장된 데이터를 활용한 '속보이는 여론몰이'라면 그 구태의연함에서는 노조의 '습관적 파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차 노조가 워낙 강성이라 올해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내년에는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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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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