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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유를 눈팅한지는 언 2년가까이 됬습니다만, 글을 쓰거나 리플을 달지않기 때문에
아디를 만들어 놓고도 정말 몇달만에 로그인을 해서 글을 남겨봅니다.
사실 저에겐 이렇다 할 군대 얘기가 없고, 그 때문에 이 게시판은 더더욱 관련이 없다고도 생각이 되지만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1년이 지난 시간이 오늘이기에
여러분들과는 좀 다른 짧고도 너무나도 길었던 군대 얘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시기는 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2년 5월 말쯤이었습니다.
저는 2012년 4월달에 군대 지원병 모집에 지원을 했었고 5월22일쯤에 합격통보를 받았고 입영통지를 받았습니다.
입영날짜는 2012년 6월 4일...
저는 제 친구들보다는 늦게가는 편에 속했었지만, 갑자기 2주뒤에 들어오라는 통보를 받고나서
시간이 너무나도 적게 남았다는것을 실감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너무나도 야속했어요 ㅠㅠ 그러면서도 ' 드디어 가는 군대. 뭔가 달라져야겠다! '라는
마음을 품고 입영날짜 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간중에 군대복무중이었던 제 친구가 말년휴가를 나오게 되었는데, 저는 그 당시
군대에 대한 공포심도 있었고, 아무래도 그 친구가 제 친구들중에서는 가장 짬밥을 오래먹는 친구라고 생각해서
만나기로 했고,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말년의 포스를 풍기는 제 친구(심지어 말년휴가 복귀 후에 하루만 복무하고 그 다음날 전역예정)
에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놈'인 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습니다 ㅠㅠ
무엇을 물어봐도
1) 나: 군대. 어떠냐?
말년친구: 야 군대 별거없어 x밥이야.ㅋㅋㅋㅋ
나: .....
2. 나: 훈련가튼거는 어떰? ㅇㅇ
말년친구: 훈련별거없어.ㅋㅋ x밥이야 ㅋㅋ
나 : ..........
곧 민간인이 되시는 위대하신 말년님에게 군대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어떠한 답도 얻을수가 없엇어요 ㅋㅋ 다만 그 친구가 너무나도 부러웠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합니다.
심지어 얘는 제가 입대하는 전날에 전역이었습니다.ㅋㅋㅋㅋㅋ 전역하는 날의 친구페북을 보고 전 어둠에 휩싸엿엇죠 ㅠ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며칠뒤에 길었던 머리를 빡빡이로 밀고서 거울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군대에 들어가게 되는구나라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6월4일... 제 입대날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가야하는곳은 육군훈련소(논산) 였습니다.
그 전날밤엔 참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기도 하고 뭔가 아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말그대로 패닉이었죠.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입영통지서에 써져있는 지참해야할 물품들을 다 챙기고(시계 등)
부모님과 함께 논산으로 향했습니다. 제 입대시간은 오후2시였기때문에
그 전에 근처식당에서 밥을 먹고 들어갔는데.. 정말 아무맛도 없다는것이 무엇인지 그 날 깨달았습니다.
정말 아무맛도 나지않는 식사를 마친뒤에 입대식(?)을 하는 운동장에 모여서
그곳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선서 등 이것저것을 하고 난뒤에 부모님을 뒤로했습니다.
부모님... 특히 제 엄마는 이것저것 걱정이 많으시기도 하고, 아들이 자신의 품을 떠난다는 그 공허함에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도 참 눈시울이 뜨거웠지만, 울면 안될거같아서 꾹 참고, 휴대폰과 나머지 짐들을
맡기고 훈련소안으로 들어가게되었습니다.
바닥이 돌맹이들로 가득차있는 연병장에 집합을 하게 되었는데 뭔가 모를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것도 다 겪어야 하는거라 생각하고, 묵묵하게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훈련병의 고된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대배치가면 막내취급이 당연한 이등병(신병)이
그곳에서는 누구보다도 높아보였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짝대기조차 달려있지 않은 '훈련병이여서
그렇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이 되네요. ㅎㅎ
첫 날에는 물품을 보급받고, 신체검사가 주를 이뤘습니다. 정말 살벌하고
이것저것 낯선 환경이었지만, 이것또한 다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체검사를 받고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와도 다르지않은 평범한 얘기일거 같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겼습니다.
신체검사를 하는 도중에는 몰랐습니다만, 첫 날 1차 신체검사를 끝낸뒤에
저녁식사를 먹게 되었을때, 전 몸에 이상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수저를 쥐고 밥을 먹으려 하는 순간, 몸이 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느낌은 정말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날을 위해 들어가지 않는밥을 먹어야했습니다.
사람이 밥을 먹지않고는 살수 없으니까요 ㅠㅠ
그때만 해도 그냥 식욕이 없거나, 혹은 단순한 소화불량, 심리적 압박감에서 오는
일시적인 거부라고밖에 생각이 되지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기상을 한 뒤에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전날에는 몸이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 날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날 아침에도 똑같은 증상을 겪고나서야 저는 이게 단순하지 않다고 느꼇습니다.
점심식사때도 밥을 먹지 못한 시점에서야, 이게 진짜 심각한거구나 라고 확신을 하게됬습니다.
그 순간 정말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훈련소에서 4주일을 보내야하는데, 음식물을 먹을수가 없다는것
또 몸은 도저히 나아지려 하지않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그 날 점심시간이 끝난 이후에 이것저것 하는 도중에(군화 끈 묶는 법이라던가 바느질 하는 법 등등을 배우는)
분대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원인은 알수없지만 이 곳에 와서 물을 제외하고는 어떤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라고요
분대장님이 듣기에는 참 어이가없는 소리였을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도 누가 저한테 와서 이런소리 하면
변명소리라거나 약한소리라고밖에 안들을거 같았으니까요.
분대장님께서 '그게 말이 되냐?' 라고 하셨지만, 그 뒤로 제가 아무것도 먹지못한다는 것이
분대장님들 사이에서 얘기거리가 된것 같았고, 그 얘기는 소대장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날도 어느새 밤이 되었습니다. 그 날은 종교행사가 있다고 해서
불교,천주교,기독교,원불교(?)등의 신자들을 각각 모아서 종교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같은경우는 그 당시 믿음이란건 거의 없엇지만 교회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안가면 뭔가
양심에 가책이 될거같아서 교회로 향했습니다. 훈련병이건 자대배치 받은 군인이건
종교행사 = 식량 확보 라는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에 저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입소대 교회에서 목사님이 하는 말도, 그날 게스트(?)로 위문공연을 온 사람들의 노랫소리도
제 귀에는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눈앞에까지 와있다고 생각했고
그것만이 머리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 증상이 나을 수 있도록 빌었고, 혼자서만 싸워야하는
이곳에서 빠져나갈수 있게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그 생각뿐이 없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요.
그 날 종교행사가 끝이나고 야간에 보초를 서게 되었습니다(정확한 명칭을 제가 모르겠네요..)
그 도중에 참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내일이 밝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식으로 가서 과연 훈련소에서 무사히 나올 수 있을까?
수많은 것이 머리속을 휘져었지만, 결국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벗어날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날도 끝이 났습니다.
훈련소에 들어온지 3일차, 정확히 오늘 이 날짜가 되었습니다.
전 그 날 아침에는 아무것도 먹을수가 없어서 식판에 아무것도 담지 못했습니다.
분대장님이 그걸 보고 이것저것 묻고 따지셨고, 전 결국 그 날부터 관심사병이 되었습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전 항상 분대장님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질문이란건 '야 oo번 넌 이번에도 밥을 안먹냐?'라는 것이었지만요..
그 날은 적성검사를 하는 날이었고, 신체검사도 좀더 정밀하게 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심리상태도 알아보기 위해 설문지같은것도 작성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제가 소대장님 눈에 띄게 된건 생각지도 못했던 심리검사때 였습니다.
그 날의 기분탓이었는지 평소에 그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심리검사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위험등급에 랭크가 되었고, 그로 인해 심리적 불안감에 의한 일로 인해
소대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소대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면서 그동안의(이틀) 몸의 이상상태 등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심리적으로도 이것저것 있었기 때문에 결국 제 개인얘기하다가
전 울게되었고 소대장님은 본인에 대한 얘기도 해주면서 위로받았던 기억도 나네요.
제 심리적 상태에 대한 이상에 의해 불려간 면담이었지만 그곳에서 뜻밖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한것에 제 몸 상태에 심각성을 느낀 소대장님께서 저를 구국병원으로 데려가서
정밀검사를 해봐야겠다.라고 하신거였죠.
그렇게 훈련소 밖에 있는 구국병원(전 국군병원인줄 알았는데 구국병원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에 가게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전 X-레이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X-레이를 찍으러 기다리다가 찍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으셨던 의무병(맞나요?)분이 표정이 이상하시길래
찍고나서야 살며시 물어봤었습니다
의무병님께 여쭤보니, " 너의 몸에 가스(..)가 가득 차있다. 원인은 알 수 없다'
라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듣고나서야 저는 그곳을 나왔고
저와 같이 왔던 다른 훈련병이 군의관님께 얘기를 듣고있는 사이에,
저는 기다리고 있었고 그곳에 소대장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소대장님은 아무래도 이런건 흔치가 않고 제 몸상태가
심각하다는걸 알고 계셧던 건지, 조그맣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귀가조치를 받게 될텐데 그거는 기간이 있거든?
근데 넌 다 치료하고 들어오는게 좋겠다" 라고요.
제 앞에 있던 훈련소 동기(?)의 순서가 끝나고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군의관님이 진단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렴풋이 봣었는데 제 치료기간은 3개월이었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재입영을 해야하는것이었죠.
저는 그때까지도 정확하게 제 속에 어떤 일이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엇습니다.
군의관님이 3개월이라는 기간을 쓰고 얼마뒤에
군의관님의 컴퓨터로 저의 x-레이 결과가 전송되었습니다.
그걸 보신 군의관님이 의학책을 뒤적거리시다가, 이것저것 수정을 반복하시다가
결국에 () 개월이라고 되어있는 곳에 3을 없애시고, 아무것도 쓰지않은 상태에서
저에게 건네주셨습니다.
저는 그 의미를 몰랐기때문에 소대장님께 그것을 보여드렸습니다
소대장님이 그걸 보시고 " 이건 치료 다하고 들어오라는 뜻이야"라고 말해주셨습니다.
제가 받은 진단서에서는 아무런 숫자가 없었거든요.
귀가조치가 확정되었을때 소대장님이 휴대폰을 저에게 주시더니
부모님께 연락을 해서 사정을 알려드리라고 했습니다.
전 제 어무니께 전화를 했습니다. 어무니는 그때 빨래를 널고 계셧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지말자.라고 생각했지만 받았다고하네요.
그렇게 3일만에 다시 엄마목소리를 듣게되었고, 이러저러해서 귀가조치를 받게되었다고
설명을 하게되었고, 저는 그 날 귀가조치를 명령받았습니다.
그날은 입소대대에 있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 날만 지나면 바로 교육연대에 들어가서 그 다음날부터
육체적인 훈련도 받게되는 날이었습니다.
논산에서 저희집까지는 대략 4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하고, 교통편도 마땅치가 않았기에
소대장님은 어쩔수없이 하루 머무르고 내일 귀가해야겠다.라고 말하셨지만
제 엄마께선 바로 데리러 가겠다고 소대장님한테 말씀드려서
전 결국 그날밤에 귀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 전화를 한지 2시간30분쯤이 지났습니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저는 입소대대에서 벗어나
교육연대쪽으로 이동해서(입소대대 육교건너서.. 논산가신분들은 아실거같네요 ㅠ)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보급받았떤 모든것들을 반납하고, 그곳에 귀가조치를 받았다고 신고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귀가조치가 확정된 이후에 저는 소대장님의 말에 따라
사복으로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보내져야할 제 사복들을 보내기 전날에
다시 입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기하고 있던 중에 소대장님이 직접 제 귀가비용을 받아주시고
저에게 주시고, 또 엄마께 연락이 와서 그곳으로 향할때 직접 데려다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때 소대장님과 둘이서 차에 있었는데 소대장님께서 말씀하시더라구요.
"난 여태까지 많은 훈련병들을 봐왔지만, 넌 정말 상태가 안좋아서
가능하면 면제받았으면 좋겠다." 라고요
이 말에 저는 어떤말을 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직업이 군인이신분이 저런말을 하신다는건 그만큼 심각해서일수도 있지만
그만큼 걱정을 해주신다는거라고도 생각이 됬습니다.
그렇게 차를 달리고 달려서
3일만에 훈련소 입구앞에서 전 다시 엄마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대장님에 대한것도 엄마께 말씀 드렸습니다.
엄마와 소대장님이 얘기를 하고 있었고 저는 묵묵히 듣고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소대장님께서 엄마께 "oo는 치료가 끝나도
면제를 받았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참 걱정하시는 어조로 .
그렇게 두분의 얘기가 끝나고 전 소대장님께 경례를 드리고
3일이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을 겪고나서야 훈련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파란만장한 3일간이었습니다.
====================== 훈련소 뒷 이야기 =========================
- 그 뒤로 저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정밀검사를 한 결과
'대장 전체가 마비'되었다는 진단을 받게되었습니다. 원인은 알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총 21일을 입원했는데 19일이라는 시간을 금식했습니다.
병원에서 말하는 '금식'은 말그대로 물조차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중에 정말 이것저것 치료를 받게 되었고 내과에서 치료하다가
내과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차원이란걸 알게되어 전 외과로 옮겨지게 되었고
결국 외과에서도 최후의 수단인, 수술을 하게되었습니다.
대장이 아예 움직이지 않는 증상이었기 때문에 결국 전 대장의 전체를 잘라내게 되었고
그 부작용은 말로 할수가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화장실을 가는 기계인거죠.
수술 초기에는 밥을 한끼만 먹엇는데도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횟수는 9번이 넘었습니다.
수술을 한지는 지금 300일이 넘었지만, 제가 화장실을 출입한 횟수는 거의 2천번에 육박하지 않을까 생각이되네요.
아무래도 장기하나가 아예없기때문에 소화기관의 부담은 말로할수가 없고,
치료기간동안의 금식, 수술이후에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지기도 하고,
아무래도 먹는것도 제대로 먹을수가 없어서 일반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합니다.
뭔가에 고도로 집중할수가 없는 현재이고, 일반인이 평범하게 하는것조차 저에게는 너무나도 힘든것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수술 이후에 11개월이라는 시간을 죽만 먹고 버텼고,
수술초기에는 약조차도 받아들일수가 없는 몸이어서, 감기에 걸려도 그냥 몸으로 버틸수밖에 없었고
체력또한 극히 저하가 되어있어서 초기에는 50m만 걸어도 숨이 찼습니다.
또한 바깥에 나가서 활동하는거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라 1년이라는 시간을 방안에서만
거의 보내고 있습니다.
이게 언제 나아질지는 저도 모르는 일이지만, 한가지 느끼는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것
11개월동안 먹엇던 죽을 넘어서 이제는 약소하게나마 밥을 먹고 있다는 점,
힘들지만 재활치료도 꾸준히 하고있다는 것으로 희망감을 가지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3일이었지만 너무나 길기도했고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미 이것만해도 정말 스압이 대박일거 같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이 안에 들어있으니 길긴 할거같네요.
일기장에 쓰면 과연 몇페이지나 쓰게 될까요 ㅠㅠ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오늘을 기념해서
감사의 말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특정인 이름을 쓰면 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분이 현직군인이신거같아서..
"소대장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그곳에서 나와서 이 자리에서 있는것도 소대장님께서 신경써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만날 연이 있다면 그때 다시한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 1시간30분을 쓴 초 장문의 이야기를 끝냅니다.
혹시나 모르지만 읽으신분들..고생하셨어요..
다들 생기시길.. 핫
모두들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하루 되시길 ^.^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